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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바르드나제 폭탄선언이 미·일·유럽에 미칠 영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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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사임파문」동서질서 “혼선”우려/강경 득세땐 관계 멀어질 듯 미국/「2+4조약」비준 타격 가능성 유럽/고르비 방일 지장줄까 걱정 일본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의 사임에 서방의 우려가 크다. 당장의 현안인 페르시아만사태 해결과 손질단계의 미소 군축협상이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구 동독주둔 소련군 철수,앙골라사태,아프가니스탄사태 등의 마무리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그보다도 심각한 것은 페레스트로이카(개혁)로 가능했던 미소 관계개선과 국제정세 완화가 소 강경보수파의 회귀로 후퇴할지도 모른다는 장기전망이 대두되고 있다. 특파원들을 통해 현지 시각을 정리한다.<편집자주>
▶미국<문창극 워싱턴특파원>◀
셰바르드나제 소 외무장관의 전격적인 사퇴발표에 미국은 커다란 충격을 나타내고 있다.
페르시아만사태,전략핵무기감축,유럽질서의 재편성 등 현안 외교문제는 물론 탈냉전시대에 소위 새로운 국제질서를 구축하기까지 미국과 가장 긴밀한 협조를 해왔던 장본인이 갑자기 물러남으로써 이러한 정책들의 장래가 하나같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공식적인 반응은 그렇게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
베이커 국무장관이나 피츠워터 백악관 대변인은 『소련이 정치·경제의 개혁과정에서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상황이 어려움을 인정하고 있으나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소련의 대외정책에는 변화가 없다』는 말을 인용해 미소간의 협조는 계속될 것이라는 희망을 피력한 바 있다.
그러나 행정부의 비공식적인 반응이나 전문가들의 분석은 훨씬 비관적이다.
지금과 같이 미소가 급속하게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은 다분히 셰바르드나제의 친미·친서방 노선에 힘입은 바 크기 때문에 셰바르드나제의 퇴진은 어떤 형태로든 미소관계에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하버드대 러시아연구소장 울람 교수는 『소련이 경제적 사정 등으로 미국이나 서방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뒷힘이 없다』고 분석하면서도 『그러나 내부의 강경론자들의 압력 때문에 서방과 지금보다는 거리를 유지하려 할지 모른다』고 전망하고 있다.
즉 아무리 소련의 대외정책 기조에는 변화가 없다 하더라도 인물교체로 인해 지금보다는 훨씬 소원한 관계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물론 소련에서 보수세력들의 입김이 아무리 거세지고,심지어 고르바초프까지 실각하는 최악의 사태가 오더라도 독일통일을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라는데 많은 전문가들은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미 상원외무위 조제프 비든 유럽소위 위원장은 『이미 합의된 전략무기협정등 잠정적인 합의안들도 이행이 늦어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은 당장 페르시아만 사태에 악영향이 올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셰바르드나제가 퇴임연설에서도 밝혔듯이 그의 페르시아만 정책에 대한 소 내부의 반발과 비난이 컸던 만큼 그의 퇴진으로 지금까지 전폭적으로 미국을 지지하던 소련의 노선이 바뀔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유재식 베를린특파원>◀
독일의 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지는 셰바르드나제 소 외무장관의 사임을 「청천벽력」으로 표현했다.
셰바르드나제의 사임에 대한 독일측의 1차적 반응은 충격과 당혹감으로 가득차 있다.
그러면서도 독일인들은 이번 사태의 진상이 과연 무엇인지를 파악하느라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만일 셰바르드나제의 이번 사임이 고르바초프와 이미 사전 협의를 거친 것이라면 이는 20일 콜 독일 총리의 말처럼 「대국민 환기용」이며 이는 소 페레스트로이카나 현재의 대 서방 외교노선에 큰 변화를 초래하지 않는 이른바 「충격요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소련문제 전문가들의 분석처럼 만약 이번 사태가 개혁파와 보수파의 권력투쟁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는 「종말의 시작」(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지)이며 독소관계는 물론 동서관계 전반에 중대한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많은 독일인들은 우려하고 있다. 디 벨트지의 논설위원 뢰벤슈테른 같은 이는 「다음은 고르바초프일까」라며 소 권력구조문제를 신중히 제기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21일 디터 포겔 대변인을 통해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대독 외교정책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희망사항」을 공식발표했으나 본의 정가에는 우려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독일측이 단기적으로 특히 우려하고 있는 것은 소련이 독일통일을 국제법상으로 인정하는 「2+4조약」을 아직 비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그동안 소련이 독일의 통일을 「허용」해 준데 대해 일종의 통일비용형식으로 많은 경제적 지원을 약속한바 있는 독일에 또다른 추가부담을 의미할 수도 있는 것이어서 독일측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구 동독영토에 주둔하고 있는 약 36만명의 소련군 문제도 독일로서는 부담이 되고 있다.
▶일본<방인철 동경특파원>◀
일본정계는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의 전격사임 표명사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주시하고 있다.
가이후(해부준수) 일본 총리는 21일 경단연 평의회에서 셰바르드나제의 사임 표명에 대해 『걱정스럽게 주시하고 있다. 일소 관계는 변할 수 없다』고 말해 소련 국내에 혼란이 일어나는 사태로 발전할 것인지에 우려를 나타냈다.
일본 외무성도 이날 셰바르드나제 사임의 배경,그리고 일소 관계와 국제정세에 미칠 영향에 대해 중간분석을 하는 등 신속한 대응을 보이고 있다.
일본 외무성 분석에 따르면 셰바르드나제 장관의 사의표명 배경에 군부와 보수파의 압력,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정권 핵심내부에 불협화음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사태는 심각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일본 외무성은 이에 따라 앞으로의 정세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 「24시간 태세」를 갖추고 정보수집에 들어갔다.
특히 야코블레프 대통령위원회위원도 은퇴의사를 밝혔다는 소문이 전해져 이에 대한 사실 여부 확인을 서두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셰바르드나제 장관등 개혁파 브레인의 잇따른 사의표명으로 보수파가 세력을 잡을 경우 고르바초프의 신사고 외교에도 상당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으며,내년 4월로 예정된 고르바초프 대통령 방일에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나카야마(중산태랑) 외무장관도 21일 오전 각의가 끝난 직후 간담회에서 셰바르드나제 장관의 사임배경을 설명,『국내 보수파에 대한 분노』와 함께 『보수파에 대항하는 개혁파의 대응에 불만을 나타낸 것』으로 풀이하는 한편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중추에 대한 비판도 담고 있다고 전했다.
셰바르드나제 장관은 지난번 독일통합에 대한 대응문제로 군부등 보수파로부터 비판받자 사의를 표시한 적이 있다.
때문에 이번에도 『대통령을 돕기 위한 제스처가 아닌가』라는 낙관적 분석도 가능하다고 한 외무성 간부는 전하고 있다.
그러나 20일 밤부터 21일 새벽에 걸친 그의 연설내용이 점차 분명해지고 야코블레프의 은퇴의사도 드러나자 사태가 심각하다는 비관론쪽으로 기울고 있다.PN JAD
PD 1990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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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 2361
GO 데스크의눈
GI 한남규
TI 지도자를 바꿀 행동권과 의무/한남규 외신부장(데스크의 눈)
TX 요새 우리는 매일 혁명의 시대를 실감하며 살고 있다. 기존의 질서와 이데올로기의 급전이 계속되고 있다. 기술혁신 또한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모든 체계와 조직의 생리가 급변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정세중 유럽의 경우만 보더라도 가위 현기증을 일으킬만큼 변화무쌍이다. 소련제국은 이미 붕괴됐다. 종전 소련블록 동구는 심지어 알바니아까지 포함,민주화로 돌아서고 있다. 독일은 통일을 완료하고 구주공동체(EC)는 미소에 버금가는 강대세력으로 규합되고 있다.
질서재편은 필연적으로 그에 맞는 주역의 탄생을 수반한다. 작년과 금년 우리는 국제무대에서 부산한 지도자 교체를 목격해오고 있다.
지난달 보수적인 영국에서 사회 밑바닥으로부터 자수성가한 젊은이(47세) 존 메이저가 총리로 탄생했다. 역시 보수색채가 강한 아일랜드에서는 여성대통령(메리 로빈슨)이 나왔다.
동구 폴란드에서는 조선소 노동자 출신의 장년(48세) 레흐 바웬사가 수년간의 노조돌풍 끝에 최근 대통령에 올랐고 작년엔 54세 극작가 바츨라프 하벨이 체코 대통령이 됐다.
비록 71세로 나이는 젊지 않지만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는 27년간의 옥고끝에 자유인으로 개선,백인정권을 상대로 흑인 참정권 쟁취의 거센 도전을 벌이고 있다.
중남미 니카라과에서도 전 독재자 소모사에게 피살된 남편의 정치적 뜻을 펴겠다는 비올레타 차모로가 놀랍게도 집권 다니엘 오르테가를 눌러 활기넘치는 국제사회 지도자교체에 더욱 다양성을 가미했다.
아시아에서는 30여년간의 통치로 싱가포르의 오늘을 가져온 이광요가 물러나고 40대 오작동이 부총리에서 후임총리로 올라섰다.
이밖에도 구질서에서 신질서로 전환하면서 이루어진 주역교체는 계속될 것이다.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으로 동서 냉전종식의 길을 연 고르바초프도 소련 사태발전 여하에 따라서는 새로운 질서와 여건에 맞는 지도자에게 대통령 자리를 물려주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며 미국에서도 2차대전 세대인 조지 부시 역시 다음 선거때면 새 세대의 도전에 봉착할게 분명하다.
범세계적 현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같은 지도자 교체에 있어서 주목되는 점은 대부분 기존리더보다 젊어지고 있는 점이다. 젊어지고 있다는 것은 물론 새 지도자들이 대부분 생리적으로 젊어지고 있음을 말하지만,비록 나이가 젊지않은 예외의 경우들에 있어서도 의식이 매우 젊은 지도자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구질서속 고정관념의 지도자는 퇴장하고 있는 것이다.
미 정치학자 제임스 바버는 정치지도자 유형을 네가지로 구분했다. 지도자로서 자기 일에 얼마나 열성적이냐를 따져 「적극적」「소극적」으로 분류하고,지도자의 역할에 대한 적성과 만족정도를 보아 「긍정적」「부정적」으로 나눴다. 이같은 기준분류에 따라 지도자는 「소극·부정적」유형,「소극·긍정적」유형,「적극·부정적」유형,그리고 「적극·긍정적」유형 등 네가지로 나뉜다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오늘날처럼 역동과 도전,그리고 과제가 함께 하는 변화의 시대에 맞는 주역은 「적극·긍정적」지도자다.
이러한 지도자는 설령 자연연령은 늙은 경우가 있을지라도 정신적 젊음,의식의 젊음,사고방식의 젊음에 충만한 인물이다.
바버가 이 유형에 포함시킨 미국의 지도자 프랭클린 루스벨트,해리 트루먼,존 케네디가 격변과 새 시대에 「젊음」으로 도전했듯이 오늘날 국제사회에 등장하고 있는 새 지도자들도 새로운 사고와 도전의 인물들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새로운 사고와 신선한 도전은 현실안주 타성에서 보면 위험한 것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의 전환,테크놀러지·정보의 혁명 등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는 시대는 고정관념에 얽매인 정신적 노령화를 허용할 수도,해서도 안된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많은 욕을 먹고 있는 곳을 대라면 정치·언론이라는게 일반중론이고 당사자들도 자조·자성적 태도를 안보이는 것은 아니다.
정치가 고정관념에 얽매여 경직화 돼있고 이 점을 번연히 알고 있는 언론이 좌시,동조하고 있다는 비난이 만만치 않다.
하긴 세상이 숨가쁘게 돌아가는 데 우리는 언제적 40대 기수고,언제적 3김이며,군출신 득세의 연장인가.
우리네 지도자의 경우 「적극·소극」「긍정·부정」유형을 들먹일 필요조차 없는 별항적 존재들이고 좀더 심각하게 말하자면 전체 민주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까지 조성케하는 위험스런 존재들이라고 비난해도 할말이 없게 됐다. 국내외의 급변을 외면,국회가 개회돼도 허구한 날을 빈집으로 팽개쳐 놓은 게 이들이고 그 밑의 차세대 정치인들마저 공천에 목이 매여 제대로 고개도 못들고 있는 형상들이다.
하긴 이기적이고 정략적인게 정치인의 본질이며 정의이기는 하다. 이들에게 자퇴를 되뇌는게 번지수를 잘못 짚는 일이다. 차라리 물러앉힐 지도자가 버티고 있으면 이들을 퇴장시킬 행동권과 의무는 유권자에게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을 지도자·유권자들 양쪽에 충분히 주지,계몽시켜야 우리도 혁명의 시대에 뒤처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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