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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생겼다 없어졌다, 신비한 한강발원지…'용' 품은 명소 8곳

중앙일보

입력

전남 고흥군 용암마을에 있는 용 동상. 이 마을에는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서린 바위가 있다. 2018년 개통한 탐방로 '미르마루길'을 걸으면 바다와 바위가 어우러진 절경을 볼 수 있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전남 고흥군 용암마을에 있는 용 동상. 이 마을에는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서린 바위가 있다. 2018년 개통한 탐방로 '미르마루길'을 걸으면 바다와 바위가 어우러진 절경을 볼 수 있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달력이 2024년으로 바뀐 지는 한 달이 지났지만, 갑진년(甲辰年) 새해는 음력 설날인 2월 10일 시작한다. 알려진 것처럼 갑진년은 ‘푸른 용의 해’다. 상상의 동물인 용은 신성한 존재를 상징했다. 그래서 왕의 얼굴을 말할 때는 용안(龍顔), 왕의 옷을 이를 때는 용포(龍袍) 같은 표현이 쓰였다. 길한 기운을 받으려는 마음에 지명에도 용을 끌어다 썼다. 그 전통이 전해져 지금도 용이 들어간 지명이 1261개나 남아 있다. 용이 들어간 지명 중에서 여행 목적지로 가볼 만한 8곳을 추렸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운이 깃든 명소들이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비룡승천의 기운 - 계룡산

계룡산 삼불봉에서 관음봉, 천황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용이 꿈틀대는 듯한 형상이다. 천황봉에는 군사 시설이 있어서 출입할 수 없다. 최승표 기자

계룡산 삼불봉에서 관음봉, 천황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용이 꿈틀대는 듯한 형상이다. 천황봉에는 군사 시설이 있어서 출입할 수 없다. 최승표 기자

계룡산 동학사에서 올려다본 마루금. 원래 눈이 많이 내리는 산이 아닌데 올겨울은 이례적으로 설경이 자주 연출되고 있다. 최승표 기자

계룡산 동학사에서 올려다본 마루금. 원래 눈이 많이 내리는 산이 아닌데 올겨울은 이례적으로 설경이 자주 연출되고 있다. 최승표 기자

계룡산(鷄龍山·845m)은 닭 볏을 한 용의 형상에서 이름이 기원했다. 계룡산에 닭이 알을 품은 듯한 ‘금계포란(金鷄抱卵)’의 지형과 용이 하늘로 오르는 ‘비룡승천(飛龍昇天)’의 산세가 어우러져 있다고 한다. 남다른 풍수 덕분에 예부터 하늘에 제를 올리는 산이었고, 그 전통이 이어져 여전히 무속인이 많이 드나든다. 현재 계룡대가 자리한 ‘신도안’에 이성계가 도읍을 정하려고 계룡산 자락에서 1년간 머물기도 했다. 계룡산국립공원 최대석 자연환경해설사는 “조선 시대 예언서인 『정감록』의 영향과 남다른 기운 때문에 계룡산 일대에서 신흥종교가 융성했다”며 “최대 130개가 넘었다”고 말했다. 계룡산은 높지 않아도 웅장하다. 삼불봉(777m)에 올라 관음봉과 천황봉 방향의 능선을 보면 마치 용이 꿈틀거리고 있는 듯하다. 올겨울 계룡산에는 유난히 눈이 잦다. 1월 25일 동학사를 출발해 삼불봉까지 올랐었는데, 강원도 고산지대 뺨치는 설경이 펼쳐졌다. 아마도 용의 해이어서일 테다. 용은 구름과 바람과 비를 몰고 다니는 상상의 동물이다.

한강 발원지 - 검룡소

한강 발원지 강원도 태백 검룡소. 국가지질공원 지질 명소로 지정됐다. 중앙포토

한강 발원지 강원도 태백 검룡소. 국가지질공원 지질 명소로 지정됐다. 중앙포토

검룡소(儉龍沼)는 1987년 국립지리원이 인정한 한강 발원지다. 강원도 태백 금대봉(1418m) 자락 800m 고지에 자리한다. 검룡소에서 서해까지 한강 물길이 약 514㎞에 이른다. 서해에 살던 이무기(검룡)가 용이 되려고 강줄기를 거슬러 올 여기에 머물고 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검룡소는 전설처럼 신비하다. 산에서 흘러내린 계곡물이 지하로 스몄다가 물길이 막히면 다시 솟아오르는 과정을 거친다. 1억5000만년 전 백악기 시대에 형성된 석회암 동굴이 소 아래 있어서다. 하루 2000t의 지하수가 샘에서 솟구치고, 수온은 사계절 영상 9도를 유지한다. 모래와 자갈이 물과 함께 소용돌이치면서 암석을 깎아 만든 돌개구멍(포트홀)도 볼 수 있다. 태백산국립공원검룡소 주차장에서 약 1.5㎞를 걸으면 검룡소가 나온다.

산방산의 머리 - 용머리해안  

헬기에서 내려다본 제주 산방산과 용머리해안. 사진 아래 비죽 불거진 해안 지형이 용머리해안이다. 중간에 길이 나면서 용머리해안과 산방산을 잇는 산세가 끊겼지만, 원래는 하나로 연결돼 있었던 걸 알 수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헬기에서 내려다본 제주 산방산과 용머리해안. 사진 아래 비죽 불거진 해안 지형이 용머리해안이다. 중간에 길이 나면서 용머리해안과 산방산을 잇는 산세가 끊겼지만, 원래는 하나로 연결돼 있었던 걸 알 수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제주도에는 용이 등장하는 명소가 두 곳 있다. 하나는 제주도 북쪽 해안 제주항에서 가까운 용두암이고, 다른 하나는 제주도 남쪽 해안 산방산(395m) 아래 용머리해안이다. 먼저 알려진 건 용두암이지만, 지질학적으로 더 중요하고 시방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곳은 용머리해안이다. 용머리해안은 천연기념물이자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핵심지질명소다. 600m 길이의 해안을 따라 20m 높이의 퇴적층이 벽처럼 두르고 있다. 썰물에만 해안을 거닐 수 있다(입장료 어른 2000원). 용머리해안은 수백만 년 전 수성화산이 폭발해 생겼지만, 전설은 전혀 다른 내력을 말한다.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이 원래 한 몸뚱어리였는데, 산방산에 똬리를 튼 용이 바다로 내민 고개가 용머리해안이 됐다고 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비록 중간에 끊기긴 했지만 용 머리와 똬리 튼 용의 산세가 펼쳐진다. 전설에 따라 이 천혜의 해안이 용머리해안으로 불기게 됐으나,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은 생성 연대는 물론이고 지질학적 특성도 전혀 다르다.

용틀임 소리 - 비룡폭포

설악산 비룡폭포. 용이 비상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사진 국립공원공단

설악산 비룡폭포. 용이 비상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사진 국립공원공단

전국에는 유난히 비룡폭포(飛龍瀑布)가 많다. 흔히 물줄기가 가늘고 긴 폭포에 ‘비룡’을 붙이고, 물줄기가 넓게 퍼지면 수락폭포라고 한다. 계곡에 소(沼)가 많으면 보통 용추계곡이 된다. 전국의 수다한 비룡폭포 중에서 제일 유명한 비룡폭포가 설악산 비룡폭포다. 설악산 비룡폭포는 설악산 소공원 매표소 남쪽 2.4㎞ 거리에 있다. 상류에는 토왕성폭포, 하류에는 육담폭포가 흐른다. 16m 낙차로 떨어지는 물소리가 용틀임처럼 격렬하다. 먼 옛날 가뭄에 시달리던 마을에서 용에게 처녀를 바친 뒤 비가 내렸다는 전설이 있다. 겨울에는 폭포 물기둥이 꽁꽁 얼어 또 다른 장관을 연출한다. 소공원부터 비룡폭포까지는 약 1시간 걸리고, 육담폭포와 토왕성폭포까지 모두 관람하려면 왕복 3시간 정도 잡아야 한다.

동양 최대 은행나무 - 용문사

경기도 양평군 용문사에는 동양 최대 크기로 알려진 은행나무가 살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김홍준 기자

경기도 양평군 용문사에는 동양 최대 크기로 알려진 은행나무가 살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김홍준 기자

사찰에도 용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왕실의 후원을 받았거나 호국 도량으로 소문난 절 중에서 용(龍) 자 들어간 사찰이 많다. 경기도 양평 용문산의 용문사가 대표적이다. 양평 용문사는 신라 신덕왕 2년(913년) 대경대사가 창건했다는 설과 경순왕(896~978)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용문사의 상징은 은행나무다. 수령 1100년에 이르는 동양 최대 은행나무로, 높이가 42m 밑동 둘레는 15.2m에 달한다. 경순왕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 가는 길에 심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경남 남해에서 가장 큰 사찰인 용문사, 사찰 뒤편에 차밭에서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중앙포토

경남 남해에서 가장 큰 사찰인 용문사, 사찰 뒤편에 차밭에서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중앙포토

경남 남해에도 용문사가 있다.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원효대사가 남해 금산에 건립한 보광사가 용문사의 전신이다. 조선 현종 원년(1660년) 지금의 금산 옆 호구산으로 터를 옮겼다. 조선 숙종(1661~1720) 때는 왕실 보호 사찰이었다. 남해 용문사 대웅전은 보물로 지정됐다. 천장에 바다를 상징하는 거북·게·물고기 등이 새겨져 있고, 보 머리에서 용이 입을 벌리고 있다.

압도적인 바위 세상 - 미르마루길

전남 고흥 용암마을에는 120m에 이르는 수직 암벽 '용바위'가 있다. 용이 승천하며 발톱자국을 남겼다는 전설이 서려 있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전남 고흥 용암마을에는 120m에 이르는 수직 암벽 '용바위'가 있다. 용이 승천하며 발톱자국을 남겼다는 전설이 서려 있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전남 고흥군 영남면에는 용바위가 있다. 수직 높이가 120m나 되는 압도적인 위용의 암벽이다. 퇴적 암벽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파도치는 듯한 바위를 비롯한 기암괴석이 거대한 바위 세상을 완성한다. 절벽 한쪽에 무언가가 할퀸 듯한 자국이 선명하다. 이 자국에 관한 전설이 내려온다. 먼 옛날 용 두 마리가 여의주를 놓고 싸움을 하고 있었다. 용 싸움을 구경하던 동네 사람이 한 용에게 활을 쐈고 그 덕분에 싸움에서 이긴 청룡이 바위를 딛고 승천했는데, 그 자국이 남은 것이라고 한다. 고흥군이 용바위와 우주발사전망대 사이에 4㎞ 길이의 해안 탐방로 ‘미르마루길’을 조성했다. ‘미르’는 용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기암절벽은 물론이고 몽돌해변·다랑논 등을 두루 감상할 수 있다. 서핑 해변으로 뜬 ‘남열해돋이해수욕장’도 가깝다.

용 닮은 하늘길 – 용궐산

전북 순창의 핫플로 떠오른 용궐산 하늘길. 가파른 암벽에 설치한 1096m 길이의 잔도로, 섬진강 절경을 누리기 좋다. 백종현 기자

전북 순창의 핫플로 떠오른 용궐산 하늘길. 가파른 암벽에 설치한 1096m 길이의 잔도로, 섬진강 절경을 누리기 좋다. 백종현 기자

전북 순창에는 용의 기운을 품었다는 용궐산(龍闕山)이 있다. ‘용의 궁궐’이라는 뜻의 이름이 본명은 아니다. 본디 용골산(龍骨山)이라 불렸으나 지역 주민이 "죽은 용을 연상케 한다"며 개명을 요구해 2009년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2020년 용궐산 중턱 용여암(龍女岩) 절벽에 잔도길을 조성한 뒤 명소로 떠올랐다. 지난해 7월 유료(4000원)로 전환한 뒤 정식 집계한 탐방객만 5만명이다. 순창군 산림공원과 정영호 팀장은 “용의 기운을 받으려는 사람이 많아졌는지 올해 들어 입장객이 부쩍 늘었다”며 “주말마다 1500명 이상이 다녀가고 있다”고 말했다. 1.5m 폭의 벼랑길이 지그재그로 뻗은 모양도 용을 닮았다. 전체 길이가 1096m에 이르는데, 1시간이면 넉넉히 오를 수 있다. 잔도길을 오르는 내내 섬진강을 굽어볼 수 있다. 눈이 오거나 길이 얼면 출입을 막는다. 겨울에는 용궐산 자연휴양림에 미리 문의하고 가는 게 안전하다.

용이 승천한 바다 – 구룡포

포항 구룡포. 항구와 포항 앞바다를 굽어보는 언덕에 용의 전설이 깃든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백종현 기자

포항 구룡포. 항구와 포항 앞바다를 굽어보는 언덕에 용의 전설이 깃든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백종현 기자

거친 바다에 기대어 살아온 갯마을에서도 용은 신성한 존재였다. 경북 최대의 항구 도시인 포항 구룡포(九龍浦)에도 용의 전설이 내려온다. ‘아홉 마리 용이 승천한 포구’라는 뜻에서 구룡포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구룡포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구룡포공원 언덕에 용 아홉 마리가 서로 엉겨 붙어 하늘로 오르는 모습의 대형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언덕 아래 근대문화역사거리(일본인 가옥거리)는 TV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 등장한 뒤 전국구 관광지로 거듭난 신흥 명소다. 드라마에서 숱하게 나왔던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용 조형물이 나온다. 포항 호미곶 인근에도 아홉 마리 용이 드나들었다는 구룡소(九龍沼)가 있다. 바다로 툭 튀어나온 바위 절벽 아래 파도와 자갈이 만든 돌개구멍 여러 개가 발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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