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매 백송이 피우던 금둔사…큰스님 입적 뒤 기이한 일

  • 카드 발행 일시2024.01.24

국내여행 일타강사⑮ 순천 금둔사

한겨울에도 꽃을 보러 다닌 건 올해로 20년째다. 처음엔 소문으로만 알았다. 전남 순천에 가면 낙안읍성 내려다보이는 금전산(668m) 남쪽 기슭에 금둔사라는 작은 산사가 있는데, 그 절집 매실나무가 동지섣달에도 꽃을 피운다고. 그래?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찾아갔더니 어라? 정말 매화가 피어 있었다. 붉은 매화, 홍매(紅梅)였다. 그때부터였다. 태고종 종정 지허 스님과 연을 맺은 건. 그 겨울 이후 스님은 종종 전화를 해왔다.

꽃 폈당게. 내려오랑게.

금둔사 매화와의 인연은 지허 스님과의 인연이었다. 40여 년 전 폐허 같았던 금둔사를 일으키고 매실나무 씨앗을 구해 와 이윽고 꽃을 피우게 한 주인공이 지허 스님이다. 남도 산사의 노스님이 엄동설한에 전해 주는 방신(芳信)만큼 귀하고 반가운 소식이 또 있을까. 금둔사에 들 때마다 스님은 손수 기르고 따고 덖고 내린 차를 내주셨다. 지허는 그 유명한 선암사 동구 차밭을 손수 일군 선사(禪師)다. 활짝 핀 매화 아래에서 스님은 힘이 되는 말씀을 해주셨고, 그 인연의 힘으로 나는 춥고 매운 계절을 넘겼다.

인연에도 끝이 있는 것일까. 지허 스님이 2023년 10월 2일 입적했다. 1941년 전남 보성 벌교에서 태어났으니 세수는 82세였고, 1956년 선암사에서 사미계를 받았으니 법랍은 67년이었다. 내가 알기로, 오래전부터 건강이 안 좋았던 당신이다. 송구하게도 부고를 한참 뒤에 알았다. 고인 말고는 금둔사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으니 부고를 전해줄 사람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겨울에 들어섰다. 문득 금둔사 홍매가 궁금했다. 스님이 안 계셔도 홍매는 잘 있을까. 수소문 끝에 승국 스님이 금둔사 새 주지로 들어왔다고 들었다. 염치 불고하고 승국 스님에게 전화를 넣었다. 지허 스님과의 인연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으며 “매화 피면 연락 주십사” 정중히 부탁했고, 생면부지의 스님이 흔쾌히 “그러겠다”고 답했다. 2023년 12월 초순이었다.

2020년 12월 28일 촬영한 금둔사 매화. 앙상한 가지 끝에 매달린 매화 한 송이에서 생명의 위대함을 새삼 느낀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020년 12월 28일 촬영한 금둔사 매화. 앙상한 가지 끝에 매달린 매화 한 송이에서 생명의 위대함을 새삼 느낀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