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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질부터 키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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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그러나 어떤 입장이든 경제의 자기 치유 능력이 강화되면 경제가 외부 충격에 견디는 능력이 높아진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마치 체력이 약한 사람은 가벼운 감기도 폐렴과 같은 중병으로 발전해서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것처럼, 체력이 약한 경제는 가벼운 충격에도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을 수 있다.

그렇다면 경제의 자기 치유 능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경제의 자기 치유 능력은 시장기능의 일부다. 시장기능이 살아 있는 경제는 회복 능력이 강하고, 정부 규제나 이익집단의 압력에 의해 시장기능이 제약 받고 있는 경제에서는 자기 회복 능력이 취약하다.

이렇게 볼 때 지금 한국경제는 극도로 자기 치유 능력이 약화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수년간 먹고사는 문제를 행정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어온 정부의 착각과 오만, 그리고 노조를 비롯한 각종 이익집단의 이기주의와 이에 영합하는 정책으로 인해 시장기능이 파괴되고 한국경제 곳곳에 비효율과 경직성이 만연했다. 경기가 몇 년째 침체 상태인데 부동산 가격은 급등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취업이 안 돼서 난리인데, 기업들은 사람을 구하지 못해 외국으로 옮겨가고 있다. 정상적인 경제에서는 이런 일들이 있을 수 없다.

이런 증상들이 지금 한국경제의 자기 치유 능력이 약화됐다는 증거다. 더구나 지난 수년간 기업들이 설비투자와 기술투자를 거의 하지 않은 결과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은 계속 하락하고 중국과의 기술 격차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여기에 더해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했다. 북핵 문제는 해결될 때까지 두고두고 한국경제에 부담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북핵 사태가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너무 가벼이 여기고 있다. 북핵 문제와 안보불안이 있는 한 한국경제에 과거와 같은 활발한 외국인 투자나 장기적 투자는 기대하기 어렵고 한국경제는 서서히 활력을 잃어 갈 것이다. 지금과 같은 한국경제의 건강 상태로는 북핵 위협이 아니더라도 자연재해나 조류인플루엔자, 환율 급변 같은 가벼운 외부 충격에도 경제위기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지금과 같은 정권 교체기에 정부의 경제 관리 능력이 저하된 상태에서는 그 가능성이 더 높다. 1997년 외환위기가 정권교체기에 발생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경제의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 사람과 돈의 흐름이 시장원리에 따라 이뤄지도록 정부의 간섭과 규제를 최소화하고, 기업들이 자유롭게 구조조정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고용형태를 허용하고, 창업 및 퇴출, 고용과 해고가 자유로워야 위기가 닥쳤을 때 대량도산과 대량실업을 면할 수 있다.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대비책이다. 지금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국가부채는 이런 점에서 우려할 일이다.

북핵 문제가 해소될 때까지, 아니면 최소한 다음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경제정책은 외부 충격에 대비한 우리 경제의 체질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정부나 기업이나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최고 수준의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아는지 모르는지 대통령은 임기를 제대로 마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고 집권당은 당을 해산하겠다고 한다. 제발 남은 임기 동안만이라도 대비책은 없어도 좋으니 불필요한 혼란이나 초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