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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전쟁땐 한국 편입” 윤 대통령 “균열 노린 정치도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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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5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엔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평정·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헌법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5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엔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평정·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헌법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해방 이후 남북관계의 틀을 바꾸는 헌법 개정을 지시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오늘 근 80년간의 북남 관계사에 종지부를 찍고 조선반도(한반도)에 병존하는 두 개 국가를 인정한 기초 위에서 공화국의 대남 정책을 새롭게 법화(法化)했다”고 밝혔다.

연설에서 김 위원장의 개헌 지시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대한민국 헌법 영토 규정(3조)을 언급하면서 북한식으로 이 같은 규정을 헌법에 담을 것과 한반도 전쟁 시 대한민국 완정(完整) 후 공화국에 편입하는 문제를 반영하라는 것이다. 시기도 못을 박았다. 차기 최고인민회의에서다.

이런 지시는 지난해 12월 당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인 완전한 두 교전국 관계’라고 규정했을 때부터 예견됐다. 이날도 김 위원장은 한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이라고 명시한 뒤 이 역시 헌법에 반영하라고 했다.

김정은 “서해 NLL 허용 못 해” 위협

김 위원장은 개헌과는 별도로 실무조치도 지시했다. “우리 공화국의 민족 역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 버려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다. 구체적으로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 철거와 경의선 북측 구간의 회복 불능화 등을 지목했는데, 선대 수령인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산마저 부정하겠다는 것이다.

또 회의에서는 남북 당국 간 회담을 주도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남북 교류협력을 전담하는 민족경제협력국, 현대그룹의 금강산 관광사업을 담당해 온 금강산국제관광국 등 통일전선부 산하 3대 대남기구의 폐지도 결정됐다.

다만 김 위원장은 이날 “전쟁을 피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우리는 적들이 건드리지 않는 이상 결코 일방적으로 전쟁을 결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일성 주석은 1948년 북한 정권 수립 직후 ‘국토 완정’이란 표현을 처음 쓴 2년 뒤 소련의 지원을 받아 6·25 남침을 강행했다.

대신 김 위원장은 “불법무법의 북방한계선(NLL)을 비롯한 그 어떤 경계선도 허용될 수 없다”며 “대한민국이 우리 영토·영공·영해를 0.001㎜라도 침범한다면 곧 전쟁 도발로 간주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서해 NLL이 향후 또 한번 남북 간 ‘해상 화약고’로 떠오른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16일 국무회의에서 “북한 당국은 남북관계를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했다”며 “이는 북한 정권 스스로가 반민족이고 반역사적인 집단이라는 사실을 자인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북한은 새해 들어 북방한계선(NLL) 인근으로 포병 사격과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며 도발을 계속하고 있다”며 “우리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고 대한민국을 균열시키기 위한 정치 도발 행위”라고 말했다. 또 “북한이 도발해 온다면 우리는 몇 배로 응징할 것이며 ‘전쟁이냐 평화냐’를 협박하는 위장평화 전술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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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은 그러면서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것은 북한 정권이지 북한 주민이 아니다. 이들은 같은 민족이고 따뜻하게 포용해야 한다”며 통일부에 ‘북한이탈주민의 날’ 제정을 지시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11월 미국 대선을 염두에 둔 김정은식 통미봉남(通美封南)이라고 평가한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핵심은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은 당사자가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북한은 문재인 정부 당시 진행된 북·미 정상회담 국면에서 이미 한국을 강하게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대통령 “북 도발 땐 몇 배로 응징할 것”

유호열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미·일 vs 북·중·러 대립 구도하에서 위기를 고조시켜 미 대선 이후 최대한 유리한 조건에서 협상할 수 있는 국내외 환경을 조성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김 위원장은 이날 연설 대외사업부문에서 “격변하는 국제정치 환경과 안보 환경에 주동적으로 대처해 우리 혁명에 유리한 조건과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며 (러시아·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와의 관계 발전을 우선 과제로 지목했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내부 결속 목적도 있어 보인다. 김영수 서강대 북한연구소장은 “지난해 ‘평양 문화어 보존법’을 제정할 정도로 북한 내에서 남쪽 말을 쓰고 드라마 등이 광범위하게 퍼졌다”며 “민족을 부정하고 강대강 국면으로 가면서 체제 결속을 우선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를 방문 중인 최선희 북한 외무상(왼쪽)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16일 회담장에 들어서고 있다. [타스=연합뉴스]

러시아를 방문 중인 최선희 북한 외무상(왼쪽)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16일 회담장에 들어서고 있다. [타스=연합뉴스]

◆푸틴, 최선희 외무상 면담=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방러 중인 북한 최선희 외무상을 면담한다. 16일(현지시간)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최 외무상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양국 외무장관 회담 결과를 푸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의 북한 방문 일정을 조율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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