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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폐업, 유령도시 될라"…군부대 떠난 양구, 年930억 날아갔다 [저출산이 뒤바꾼 대한민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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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4일 오후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시내. 양옆이 상점으로 가득한 거리가 텅 비어있다. 상점에도 대부분 손님이 없어 한산한 모습이다. 박진호 기자

지난 4일 오후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시내. 양옆이 상점으로 가득한 거리가 텅 비어있다. 상점에도 대부분 손님이 없어 한산한 모습이다. 박진호 기자

점포 내놔도 1년 넘게 안 나가 ‘한숨’   

지난 4일 오후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시내. 상점으로 꽉 찬 거리는 오가는 사람이 없어 썰렁했고, 가게도 손님이 없어 한산한 모습이었다.

[저출산이 뒤바꾼 대한민국] #군부대ㆍ신교대 주변 치킨집이 사라졌다

읍내 거리 한가운데 있는 치킨집에 들어가자 주인이 낮잠을 청하고 있었다. 주인 김모(62)씨는 “어떤 날은 치킨 2마리 정도 팔고 문을 닫을 때도 있다”며 "더는 버티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양구 중심지가 활력을 잃은 건 육군 2사단이 2019년 12월 해체되면서부터다. 김씨는 “북적북적하던 거리가 군부대가 떠난 뒤 매출이 반 토막 났다”며 "상인 상당수가 점포를 내놔도 들어오는 사람이 없다”라고 말했다.

치킨집 주변 10여개 상점이 폐업하거나 가게를 내놓은 상태였다. 상점 앞에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가게 인수하실 분’과 같은 문구가 보였다.

지난 4일 오후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시내. 한 상점에 임대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박진호 기자

지난 4일 오후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시내. 한 상점에 임대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박진호 기자

군부대 해체 ‘매출 반 토막’…“유령도시 될라”  

양구 시내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군인 용품 가게다. 군부대 해체 전 8곳 가운데 4곳이 최근 문을 닫았다. 허범구(70)씨는 “40년 넘게 군인 용품점을 운영했는데 병사들이 사라지고 면회객도 없어지니 주말에도 거리가 휑하다”며 “손님도 하루에 10~20명 정도여서 군부대가 있을 때보다 매출이 10분의 1로 떨어졌다”라고 했다.

군부대 해체 여파로 양구에선 5600여명의 군병력이 감소했다. 양구군이 추산한 연간 경제적 손실은 930억원에 달한다. 문을 닫는 점포가 늘어나자 지역 상인들 사이에선 “유령도시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지역 경제를 사실상 군부대가 떠받들다 시피하던 전방 접경지역이 무너지고 있다. 저출산에 따른 병력자원 감소로 군부대가 속속 해체되고 있어서다. ‘이기자 부대’로 유명한 27사단이 주둔하던 화천군 사내면 상황도 비슷하다. 군인이 사라지자 상점이 한 집 건너 한 집이 문을 닫았다. 7800명 규모이던 이기자 부대는 2022년 11월 해체됐다.

지난 4일 오후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시내. 한 상점에 '그동안 감사했다'는 문구가 붙어있다. 박진호 기자

지난 4일 오후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시내. 한 상점에 '그동안 감사했다'는 문구가 붙어있다. 박진호 기자

2년 사이 군 병력 5만5000여명 감소

‘이기자 부대’ 해체 후 1년 만에 사내면 상점 10여곳이 문을 닫았다. 햄버거 가게와 편의점마저 병력 감소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폐업했다. 현재 가게를 내놓은 곳도 7~8곳인데 보러 오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화천군 상서면 상권도 2019년부터 무너졌다. 상서면에 주둔하던 7사단과 15사단 일부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부대 규모가 크게 줄자 직격탄을 맞았다. 음식점과 PC방 등 20여곳이 줄줄이 폐업했고, 남은 10여곳도 근근이 버티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상황은 더욱 암울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방부가 지난해 발간한 ‘2022 국방백서’에 따르면 국군 상비병력은 50만명 규모다. 육군 36만5000여명, 해군 7만여명, 공군 6만5000여명 등 수준이다. ‘2020 국방백서’ 때 상비병력이 55만5000여명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2년 새 9.9%(5만5000여명) 줄었다.

2020년 1월 강원 화천군 사창리 곳곳에 27사단 해체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중앙포토]

2020년 1월 강원 화천군 사창리 곳곳에 27사단 해체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중앙포토]

입대 인원도 20만 명 선 무너져 ‘비상’

군 당국에 따르면 국군 상비병력 규모는 간부와 병사를 포함해 현재 50만명이다. 이 병력을 유지하려면 매년 22만명 정도가 입대해야 한다. 하지만 2020년 23만6146명이던 입대자 수는 2022년 18만6201명까지 줄어 20만명 선이 무너졌다.

저출산으로 현역병이 급감하자 군 당국은 군단과 사단 등을 해체하고 있다. 육군 군단은 2022년 6군단에 이어 지난해 8군단을 해체했다. 사단은 2018년 26사단, 2019년 2사단, 20사단, 2020년 30사단, 2021년 23사단, 2022년 27사단, 2025년 28사단 등 7개 사단을 해체·재편했다.

군 당국은 또 1군단 예하 1·9·25사단 신병교육대대(신교대)를 올해 1월 폐지했다. 그동안 군은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신병을 모두 수용할 수 없어 일부 사단에서 신병 교육을 해왔다. 하지만 입영 장병이 크게 줄면서 신교대를 별도로 운영할 필요성이 없어졌다고 한다.

국방개혁 2.0이 한창이던 2020년 1월 외출 나온 병사들이 한적한 화천시장을 지나고 있다. [중앙포토]

국방개혁 2.0이 한창이던 2020년 1월 외출 나온 병사들이 한적한 화천시장을 지나고 있다. [중앙포토]

전문가들 “골든타임 10년 남았다” 우려

병력은 해가 갈수록 더욱 빠르게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에 따르면 군 병력은 2035년까지 46만5000명으로 줄다가 2039년 40만명, 2043년 33만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인구 추계와 군 의무복무 18개월을 적용한 예측치다. 통계청은 연간 신생아 수가 2025년 22만명, 2072년 16만명으로 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조관호 한국국방연구원(KIDA) 책임연구위원은 「병역자원 감소 시대의 국방정책 방향」보고서를 통해 “2022년 국군의 정원은 50만명이었으나 실제 연말 병력은 48만명에 그쳤다. 병력이 50만명 아래로 내려간 것은 처음으로 안보에 비상이 걸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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