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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내수 한계로 ‘저성장 늪’…손잡아야 시장 커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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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국 금융회사 골드만삭스가 내놓은 ‘2075년까지의 글로벌 경제전망’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2050년 일본은 세계 6위로 밀려나고 2075년 12위로 추락한다. 일본은 이미 지난해 경제 규모 3위 자리를 독일에 내줬다. 한국은 장기적으로는 일본보다 경제 규모 순위가 더 아래로 밀려날 것으로 관측된다. 한·일 두 나라 경제 순위가 하락하는 것은 ‘예정된 결과’다.

우선 인구가 많지 않아 내수 시장이 작다. 중국의 추격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수출 경쟁력이 예전만 못한 데다 세계 곳곳에서 경제 신흥국들이 떠오르고 있다. 특히 인도·인도네시아·브라질·러시아·멕시코 같은 나라는 인구와 자원을 토대로 경제 규모가 급성장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빅테크 기업이 거의 없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내수 규모가 작고 수출을 더 늘릴 여지가 크지 않은 데다 미국처럼 역동적 혁신 기업도 없으니 한·일 모두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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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구조에서 한·일 양국이 지금처럼 경쟁하는 것은 도토리 키 재기밖에 안 된다. 후카가와 유키코(沈川由起子) 와세다대 교수는 “한·일이 경쟁하던 과거의 수출 주도 성장 구조는 끝났다. 일본은 탈공업화 중이며 한국 제조업의 원가는 일본보다 더 저렴하지 않다”며 과감한 발상의 전환을 주문했다. 후카가와 교수는 “탈(脫)탄소, 고령화 등 양국이 함께 대응하고 협력할 분야는 더 많아졌다”며 “새로운 글로벌 밸류체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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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물론 중국·인도처럼 국내 시장 규모가 경제 발전의 핵심 동력이 되는 것도 한·일이 시장을 함께 키워야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한·일 양국은 2019년 징용공 배상 등 과거사 갈등으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갈등을 벌였지만 일본 기업은 수출이 막혔고 한국은 소부장 자급률을 높이지도 못했다. 양국 무역이 상호보완적이라는 점만 확인된 셈이다. 더구나 최근 세계 경제는 디지털 기술 혁신 능력과 함께 지식재산권(IP)·인공지능(AI) 기술을 선도하는 국가가 주도권을 쥐는 것도 제조업에서 경쟁해 온 한·일 양국에 새로운 경제 협력의 필요성이 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첨단 반도체 동맹이 구축되면서 삼성전자가 일본 요코하마에 400억 엔(3600억원)을 들여 반도체 첨단 패키징 연구개발 거점을 설립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오고 있다. 박태호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새로운 무역협정 참여와 함께 첨단기술 연구개발 협력도, 안정적 공급망 구축도, 제3국 공동 진출에서도 양국 협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더구나 한·일 양국은 미국의 첨단기술 통제에 맞서 중국이 자원을 무기화하고 나서면서 협력의 필요성이 한층 커졌다. 필수 원자재 상당수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갈륨·마그네슘·흑연 등 희토류뿐 아니라 요소수까지 수출 통제에 나서고 있다. 이에 한·일 양국은 지난해 5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한·일 경제안보대화 회의를 개최했다. 반도체·배터리·핵심광물 등을 포함한 핵심 원자재 공급망 안정에 협력하고, 핵심·신흥기술 협력 및 기술보호 공조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일각에서는 한·일 양국이 경제 분야에서 협력하면 한국이 불리하다고 우려하고 있으나 한국의 제품 경쟁력이 높아져 양국 간 수출 경합도가 크게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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