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출판계 유통주조 개선 큰 홍역-서적조합연 회장 김석용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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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올해 출판계의 두드러진 특징을 요약하면 80년대에 크게 기세를 떨쳤던 사회과학 출판이 급격히 퇴조하고 대신 상업성을 앞세운 출판 대중화 경향이 하나의 주류로 자리잡게 됐다는 것이다.
사회과학출판이 80년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뒷걸음질치게된 이유는 이념도서에 대한 법제상의 금기로 호기심에 의한 잠재수요를 창출한다거나 마르크스 원전 및 북한책에 대한 해금으로 일시적인 특수를 야기 시켰던 80년 대적 출판상황이 90년대에 들어와서는 더 이상 유효할 수 없었다는 사정과도 긴밀히 관련된다.
이 때문에 많은 사회과학전문 출판사들이 청소년용 교양도서, 의약서 등의 실용도서, 외국어교재 및 「대체교과서」개발 등을 통해 전문출판이 가져올지도 모를 상업적 모험을 피하면서 목록을 다양화하는 이른바 백화점식 종합출판쪽으로 진로를 수정하기 시작했다. 도서출판동녘·돌베개·사계절·이론과 현실사 등이 그 대표적인 예며 지난 5월말 국내 47개 사회과학전문 출판인들이 모여 창립한 「민주화를 위한 출판인 모임」도 이 같은 지향을 집단적으로 확인한 바 있다.
상업성을 겨냥한 출판대중화 현상과 관련, 「재미있는」「알기 쉬운」「…이야기」등의 관형어나 명사를 제목으로 단「쉬운 책」들이 쏟아져 나와 뚜렷한 장르의 하나로 자리잡게 됐다는 것도 올 출판계의 특징. 작년 말까지만 해도 철학·물리학·역사 등 일부 분야에서만 제한적으로 출간되던 「쉬운 책」들은 올 들어서부터 경제학·자연과학 일반의 전 분야로 확산돼 출판계의 한 유행이 되다시피 했고 판매도 그런 대로 호황을 유지,「쉬운 책」붐에 상승효과를 불어넣었다. 이원복교수의 『자본주의, 공산주의』 (동아출판사간)를 첫머리로 역사·경제·과학 등의 전문적 내용을 만화화 하는 출판현상이 두드러졌던 것도 이 같은 출판대중화와 같은 맥락 위에 있는 것이다.
이밖에 문화부 발족과 함께 그 동안 문교부가 관장해 오던 공공도서관업무가 문화부로 이관되고, 개정된 새 도서관법 시행에 따른 공공도서관의 활성화로 출판계가 납본 등 책소화의 이점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는 점, 중단됐던 서울도서전시회가 5년만에 재개되면서 6백64개 출판사에서 20여만 권이 출품돼 사상 최대규모의 책 잔치를 치렀다는 점, 정부가 과소비억제책의 일환으로 폐지했던 도서상품권제의 부활을 공식 허용, 발권 전담 회사의 설립과 운영에 관한 구체적인 합의가 도출됐던 점등이 올해 출판계가 특기하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안으로 꼽힌다.
한편 올해 출판계는 도서유통상의 이해를 둘러싼 출판업자와 서적상, 서적판매업자 상호간의 분규가 행동으로 가시화 되는 바람에 적지 않은 홍역을 치러야 했다.
상반기 김영사, 정신세계사 등의 베스트셀러 출판사와 교보문고 등 서울시내 대형서점사이에 벌어졌던 「마진 율 공방」, 8월 연금 및 유사연금 매장의 도서할인 판매행위에 항의해 전국 서적조합연합회 산하 2천여 서점이 참가했던 「집단철시사태」등이 그것이다.
특히 8월16일부터 19일까지 나흘동안 벌어졌던 서점집단철시사태는 연금 및 유사연금 매장 등의 서적할인판매로 14년 이상 지켜진 도서 정찰 제가 붕괴될 경우 자체 존립기반 마저 잃게 된다는 중소서적상들의 위기 의식에서 촉발된 것이었다.
부산을 비롯한 전국 주요도시 2천여 서점이 참가해 벌어졌던 철시사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갔던 인물이 전국 서적조합연합회의 김석용회장(51). 김회장은 이 사태를 출판가에 관행 돼온 유통상의 부조리를 시정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판단하고 경제기획원·상공부 등에 도서할인매장의 단속, 도서정가판매제에 관한 새로운 법적 보완책 마련 등을 강력히 촉구하고 나섰다. 결국 관계기관과 정부당국이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약속하는 선에서 서점 상인들의 집단행동은 나흘만에 진정됐으며 그에 따라 대한출판문화협회와 전국 서적조합연합회간에 「출판물 판매가격 유지계약」을 수정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정가판매제 하에서 도서할인판매가 자행되는 것은 우리 서련 측에 그 행위를 제재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데도 큰 이유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내놓은 재판매가격 유지계약서 수정안은 출협이나 출판사에 위반 사실을 알려 주었는데도 적절한 제재조치를 미룰 경우 그들에게 경고·위약금 청구·거래거절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내용을 강화했습니다.』
현재 출협 측과 진행하고 있는 계약수정작업을 비교적 낙관적으로 내다보는 김회장은 그와 함께 중소서점의 자구를 위한 도서 마진 율 조정에도 앞장서고 있다.
『서점의 95%이상이 임대점포로 최근 몇 년 사이 임대료·관리비가 배 이상 올랐고, 종업원 임금이며 물가앙등 때문에 서점운영비가 엄청나게 증가했습니다. 대학 교재·학습참고서 등의 채택료를 매개로 한 음성적 유통 또한 서점운영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l0∼20%의 마진만으로는 안되겠다는 게 우리 서련의 입장입니다. 현행보다 적어도 10% 올린 선으로 마진 율을 조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김회장은 지난12월초 전문서적출판사·학습참고서 출판사 각 50곳, 기타 30곳 등 총1백30여 개 출판사와 출협·학습자료협회 등 유관단체에 마진율 조정에 대한 협조요청 공문을 보냈다.
금년 1월19일 정기총회에서 41년간 장기 재임한 이병인전회장(82)을 물리치고 전국서적조합연합회회장에 당선, 특유의 추진력을 발휘하고 있는 김회장은 『내년에도 올해 벌여놓은 출판계의 유통구조 및 부조리 개선작업을 계속하면서 독서인구 확대를 위한 실질적 운동을 전개해나갈 작정』이라고 말했다. <정교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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