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日 무너진 집서 48시간 만에 구출…딸 "아빠 잘 버텼어" 울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뻥 뚫린 천장, 전깃줄에 매달려 흔들리는 형광등, 곳곳에 어지럽게 놓인 침대와 이불들….
4일 오후 기자가 도착한 일본 이시카와(石川)현 노토(能登)반도 시카마치(志賀町)의 '도기(富来)병원'에는 3일 전 일어난 지진의 여파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인구 1만7000여명의 작은 해안가 마을인 시카마치는 강진이 발생한 1일, 일본 전국에서 유일하게 가장 강한 흔들림인 '진도7'이 관측된 곳이다.

1일 강진으로 큰 피해를 본 이시카와현 시카마치의 도기 병원 내부 모습. 지진 발생 사흘이 지난 4일까지도 지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김현예 특파원

1일 강진으로 큰 피해를 본 이시카와현 시카마치의 도기 병원 내부 모습. 지진 발생 사흘이 지난 4일까지도 지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김현예 특파원

24시간 응급실을 운영하는 마을의 의료 거점인 도기 병원은 지진 당시 거센 흔들림으로 의료 기기가 쓰러지고 환자들의 낙상이 이어지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다행히 100명이 넘는 환자와 의료진 중 사망자는 없었고, 입원 환자들은 이튿날부터 다른 지역으로 이송됐다.

3일부터 복구 작업이 시작됐지만 80% 이상의 의료 기기가 망가져 수술 등 병원의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태다. 병원 직원 가와무라는 "지진 후 계속 몰려오는 응급 환자들도 간단한 치료를 제외하고는 80㎞가량 떨어진 가나자와(金沢)시 등의 병원으로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지진 후 만 3일째를 맞는 이날까지도 피해지역에선 제대로 된 구조와 복구 작업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산사태 등으로 도로가 끊겨 진입이 어려운 마을이 많은 데다 여진에 비까지 내리면서 구조 작업은 더디게 진행 중이다. 이번 지진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이날 오후 6시 기준 84명, 부상자는 404명에 이른다. 이시카와현은 4일 오전 행방이 확인되지 않고 있는 지역 주민 79명의 명단을 발표하며 주민들의 협조를 요청했다.

4일 오전 일본 이시카와현 와지마시에서 소방대원들이 무너진 가옥을 헤집고 생존자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4일 오전 일본 이시카와현 와지마시에서 소방대원들이 무너진 가옥을 헤집고 생존자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날 재해 생존자 구호의 '골든 타임'으로 불리는 72시간이 지난 가운데 극적인 구조 소식도 속속 들려왔다.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3일 이시카와현 스즈(珠洲)시에선 무너진 목조주택에 갇혀 있던 79세 남성이 48시간 만에 구출됐다. 구조대에 의해 밖으로 실려 나온 진흙투성이의 아버지를 보며 딸은 "아빠, 잘 버텼어"라고 울음을 터뜨렸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4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무너진 건물 등에서 156명을 구조했다"며 "구조 요청 138건 가운데 도로 붕괴 등으로 24건에 대한 접근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오늘 저녁까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현재 구조 활동을 하고 있는 2000명에 이어 새로 2600명의 자위대원을 이날 현장에 파견했다. 소방대원 2000명, 경찰 800명도 구호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도로 붕괴로 이재민을 위한 구호 물품 이송이 여의치 않자 일본 정부는 선박과 헬리콥터 등을 활용해 물자를 수송하고 있다. 4일 오전에는 와지마시 연안에 자위대 수송함이 도착해 중장비와 구호 물품 등을 피해 현장에 보냈다. 구호품을 실은 국토교통성 수송선도 5일 저녁 와지마항과 나나오(七尾)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4일 오전 일본 이시카와현 시카마치의 동사무소에 구호품으로 공급된 비막이용 블루시트가 쌓여 있다. 김현예 특파원

4일 오전 일본 이시카와현 시카마치의 동사무소에 구호품으로 공급된 비막이용 블루시트가 쌓여 있다. 김현예 특파원

이날 오전 찾아간 시카마치 사무소에는 자위대와 국토교통성의 지원 차량이 속속 도착해 구청 안으로 구호 물품들을 실어 나르는 중이었다. 사무소 측은 이날 오전 9시부터 무너진 집 틈새 비막이로 쓸 수 있는 블루 시트 등을 가득 쌓아 놓고 찾아온 주민들에게 이를 2장씩 나눠주기 시작했다. 지팡이를 짚고 도착한 80대 할머니는 "처음 겪어보는 큰 지진으로 집이 조금 무너졌는데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다"며 "전기도 어제부터 들어오기 시작해 지금은 집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사무소 입구에는 "물자 부족으로 컵라면과 빵은 나눠주지 않는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었다. 총무부 직원은 "3일 저녁부터 조금씩 물자가 보급되기 시작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면서 "특히 식수가 부족해 마을 주민들이 물통을 들고 구청으로 물을 뜨러 오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복구와 물자 공급이 늦어지면서 많은 이재민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피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NHK에 따르면 이번 지진으로 집을 떠나 피난소 등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4일 현재 이시카와·도야마(富山)·니가타(新潟) 3개 현에서 총 3만4560명에 이른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