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중앙시평

2024년 북한 위험과 한반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 경제학부

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 경제학부

2024년 북한 문제는 어떻게 전개될까. “남조선 영토 평정” 등의 거친 언사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이 연초부터 핵위기를 극단 상황까지 몰고 갈 가능성은 작다. 미·중 패권 경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자신이 유리한 패를 쥐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대러 무기 수출과 북·중 교역 재개로 경제가 나아지리라 기대한다. 따라서 당분간 상황을 크게 변화시키는 행동을 피하려 할 듯하다. 올 11월의 미국 대선도 중요한 변수다. 새롭게 들어서는 미국 정부가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대선 전에 상당 정도의 핵 고도화를 이루어 놓으려 할 것이다. 또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재선되면 미·북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크니 그때를 기다리자고 판단할 법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북한 위험은 커질 것이다. 김정은의 꿈은 백일몽에 가깝다. 대러 무기 판매는 북한 경제를 일시적으로 반등시킬 따름이다. 러시아가 추진하는 대로 자국 내 포탄 생산능력이 급증하거나 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면 더는 포탄 수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무기로 번 돈이 장기 성장에 도움되려면 개혁개방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개혁개방은 핵 포기만큼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북한이 횡재를 맞아도 그 효과는 단기에 그친다. 북·러 밀착과 북·중 거래로 경제는 기껏해야 2019년 수준으로 돌아갈 전망이다. 경제난으로 김정은이 하노이 회담에 나와 모든 제재를 풀어달라고 요청한 바로 그 해다. 무기 수출 덕분에 외환보유고의 고갈을 몇 년 정도 미룰 수는 있겠지만 만성적인 무역적자로 결국 외환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려면 수입을 많이 줄여야 하지만 이는 경제위기를 심화시킨다.

미국이 북한 뜻대로 움직일 가능성도 거의 없다. 트럼프가 재선되어도 비핵화가 아니라 핵 동결 대가로 모든 제재를 풀어준다면 엄청난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북한이 하노이 회담 때보다 훨씬 나은 조건을 제시하지 않는 한 어떤 미국 대통령도 북한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현 상황에선 북한이 원하는 국면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북미 간 협상 동력이 생기려면 김정은이 판을 크게 흔들어야 한다. 그는 망가진 경제 때문에 마냥 기다릴 수 없다. 2024년 하반기쯤이면 그 스스로 이런 딜레마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군사적 도발과 충돌 위험이 시간의 흐름과 비례한다는 의미다.

북한 위험은 시간에 비례해 증가
러·중이 위험을 증폭할 수도 있어
경제로 파급될 충격에 대비하고
복합적·순차적인 대북정책 펴야

고요는 요란의 전조다. 지금의 상대적 소강상태는 지속되기 어렵다. 특히 북한의 도발로 촉발된 사건이 중·러의 개입으로 증폭될 위험이 존재한다. 예전에 중·러는 한반도의 안정을 최우선으로 중시했다. 이제 러시아는 북 도발을 우크라이나 전쟁에 어떻게 이용할까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중국도 ‘안정’과 ‘활용’ 사이에서 고민할 것이다. 이는 북한이 일으킨 군사적 충돌이 러·중의 지지나 부추김으로 더 큰 충돌로 번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향후 수년 내 2017년 하반기와 유사한 양상이 한반도에 전개될 수 있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 2017년엔 미국이 어떻게 대응할지가 불확실성을 배가했다면 지금은 러·중의 의도와 행동이 북한 위험의 증폭 기제다.

요란은 동요로 번질 수 있다. 지금처럼 전 세계 투자가가 지정학 위험에 예민해져 있을 때 북한발(發) 리스크는 한국 경제에 심각한 충격을 줄 수 있다. 2017년 7월 말에 북한이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을 시험 발사한 이후 2주 동안 한국의 코스피 지수는 5% 떨어졌고 대미 환율은 3%가량 절하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화염과 분노”라고 쓴 날 한국의 자본시장은 요동쳤다. 정상적인 세계 경제에서도 이런 충격이 있었다면 지금은 더 큰 충격을 예상하고 대비해야 한다. 한국 자본시장은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 장관이 일간지에 공동 기고문을 올려 외교적 노력과 북미 대화를 강조한 이후에야 진정되기 시작했다. 러·중은 과연 어떻게 행동할까.

북한 문제는 풀기 전까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북한 정치·경제 제도의 취약성이 도발의 뿌리다. 강대국은 이를 지정학 게임에 활용하는 데 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현상 유지 전략은 오답이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동맹과 확장 억지의 강화에 중요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한반도 안정과 평화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억지만으로 뿌리 깊은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북한 주민의 처지를 긍휼히 여기며 이들의 지식과 역량을 강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제재와 압박, 안보와 억지, 경협과 성장, 시장과 정보, 평화 체제와 국제화 등의 방안을 복합적으로 사용하고 시기별로 순차화(順次化)해야 한다.

진보 정부가 민족이념에 사로잡혀 비핵화를 망쳤듯, 보수 정부도 대북정책을 힘과 대치만으로 단순화하면 실패한다. 강하면서 부드럽고, 억지하되 변화의 길을 보게 해야 한다. 통일부, 외교부, 국방부, 안보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되 독자성을 가져야 한다. 각각의 악기를 연주하지만 함께 어우러지는 오케스트라 대북정책을 펴야 한다.

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경제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