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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신년 여론조사를 읽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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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새해 주요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몇 가지 일관된 경향성이 관찰된다. 첫째, 민주당의 하락세와 국민의힘의 상승세이다. 조사에 따라 국민의힘이 더 높게 나오기도 하고 민주당이 더 높게 나오기도 하지만, 방향은 거의 일치한다. 국민의힘은 비록 삐걱댈망정 나름의 변화를 시도했고, 민주당은 일관되게 기존 리더십 수호에만 몰두했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하겠다. 방향은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지지율은 거의 비슷해서 승부는 원점인 셈이다. 한동훈 위원장이 얼마나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의제를 발굴하고 속도감 있게 밀어붙일지, 이재명 대표가 얼마나 본인의 안위를 내려놓고 혁신 요구를 수용할 수 있을지에 따라 크게 요동칠 공간이 비어있다.

둘째, 국민의힘의 상대적 선전(善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부 견제론은 야당 견제론보다 상당히 높다. 이 두 가지 경향성의 공존을 두고 다수 언론은 정부·여당을 심판하고 싶지만 민주당이 심판하겠다고 하니 선뜻 동의가 안 되는 상황이라고 해석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사람들은 부동층으로 모여있다가 총선에서 큰 폭의 스윙 보터가 되리라는 예상이다. 이것은 민주당이 심판여론을 흡수하지 못한다는, 즉 민주당을 주어로 한 해석이다. 국민의힘을 주어로 하면 어떤 해석이 가능할까. 민주당에 동의할 수 없지만 그렇더라도 정부·여당은 심판받을 잘못이 있다는 뜻이 된다. 상대의 실패가 곧 나의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현재 두 당의 지지율은 제로섬 관계가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전략적으로는, 상대와 대립하지 않고도 득점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뜻도 된다.

민주 하락, 국민의힘 상승세 눈길
하지만 정부 견제론 여전히 높아
2030, 중도에서 강한 신당 지지세
결국 중간지대 선점의 싸움 될 것

셋째, 신당에 대한 수요층이 세대별로는 2030세대에, 이념적으로는 중도와 중도진보에 더 많이 몰려 있다는 점이다. 앞의 것은 젊은 세대에 이준석 전 대표의 호소력이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라는 뜻이고, 뒤의 것은 친명 강경파 위주의 현재 민주당보다 덜 극단적인 중도진보 성향 신당에 대한 수요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앞에서 확인된 비(非)제로섬의 공간은 양당 중 중도를 선점하는 쪽이 가져갈 수도 있지만 신당이 차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낙연 신당이 실체를 드러내고, 지금 거론되는 것처럼 이준석 신당과 연대 가능성 등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면 신당이 변수로 등장할 기회는 있다. 넷째, 최근 들어 보기 드물 정도로 양당 지지의 지역적 편차가 매우 심하다는 점이다. 얼핏 보면 지역감정 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호남에서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토와 영남에서 이재명 대표에 대한 비토가 매우 강하다. 대통령이나 정당에 대한 지지율을 전국 평균으로 생각하고 상대를 만만하게 봤다간 큰코다칠 수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득표율과 의석율의 차이는 평소보다 더 크게 벌어질 수 있다.

여론조사 결과가 시험문제라면 새해를 맞아 정치권에서 내놓은 신년사는 답안지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신년사는 마치 분업을 한 것처럼 내용이 구분되어 있다. 대통령은 일일이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로 여러 부문의 현황과 정책을 길게 나열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행동하는 정부’가 되겠다고 했다. 실천적인 메시지를 강조하며 정치적인 언급은 거의 하지 않았다. 한동훈 위원장은 이례적으로 짧은 신년사에 구체적인 현안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변화의 주체와 방향만을 담았다. 국민의힘이 앞장서 변화하겠다는 것. 그리고 변화의 방향은 ‘동료 시민과 공동체’를 지키겠다는 것. 이재명 대표는 작년 한 해 국가는 없었다며 총선 승리를 통해 국민과 나라를 지키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신년사를 함께 놓고 보면 당은 큰 그림을 제시하고 정부는 정책으로 뒷받침하는 하나의 세트가 완성되기는 한다. 여기에 성공한다면 “상대와 대립하지 않고도 득점할 수 있는 공간”을 선점할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점은 공화주의의 개념적 난해함과 실천의 어려움이다. 민주주의를 다수결이라고만 이해하는 유권자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공화주의를 대중에게 전달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실천적으로는 한 위원장이 말한 “계산 없는 선의”는 근본 해법이 아니다. 철저하게 계산해도 선의를 베푸는 것이 이익이 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사회적 합의가 불가능한 현실을 감안하면 여러 암초를 예상해야 할 것이다.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의 근본적인 한계는 방탄이라는 비합리적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현실의 어려움을 자꾸만 과장한다는 점이다. 작년 한 해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면 동의하겠지만 국가가 없었다는 말에 동의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과장된 수사(修辭)로는 대립이 필요 없는 빈 공간에서 득점하지 못한다. 총선 100일 전에 나온 신년사는 일종의 임시 답안지라서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답안지로는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민주당에게 쉽지 않은 선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화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