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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문명전환기 2024년 대한민국의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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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전 총장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전 총장

2024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갑진년(甲辰年)으로 ‘푸른 용’의 해다. 청룡(靑龍)은 동양 신화에서 신성한 존재로 여겨지며, 힘차고 진취적인 성향의 상징이라고 한다. 사실 새해는 우리나라에 ‘힘차고 진취적’인 기운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세계사적인 흐름이다. 2022년 말에 공개된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은 바야흐로 인류의 생활과 문화를 바꾸어가고 있다. 어느 사회학자는 지금까지의 문명은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되었는데, 앞으로는 기계가 포함된 3자 상호작용에 의해 형성될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진정한 문명사적 대변환이다. 이를 감지한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소위 세계적 빅 테크 (Big Tech) 기업들은 사운을 걸고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의 개발과 응용에 달려들고 있다. 과거 인터넷과 디지털 혁명이 국가 간의 순위를 바꾸었듯이 인공지능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국가나 조직은 영원히 뒤처질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선진국 문턱에 가까스로 다다른 우리나라가 벌써 추락할 징조를 보이는 현실이다. 작년 11월 일본의 한 경제지가 이런 현상에 대해 ‘피크 코리아 (Peak Korea)’라는 제목의 기사를 써서 화제가 되었지만, 사실 이미 이런 우려는 지식인들 간에 많이 논의되고 있었다. 낮은 경제성장률, 극심한 양극화, 사회적 이동성의 축소 등 소위 선진국들이 겪는 어려움을 선진국에 안착하기도 전에 겪게 되어 우리나라의 국운(國運)은 지금이 최고가 아니냐는 우려다. 특히 ‘할 수 있다’는 도전 정신이 사라져서 사회적 역동성과 변화의 추진력이 많이 줄었다. 게다가 패거리 싸움으로 전락한 정치는 온 국민의 통합 에너지를 모으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중차대한 시기에 우리는 2024년 새해를 맞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지금까지 잘 되어왔으니, 앞으로도 과거처럼 하면 잘 될 것”이라는 무사안일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세계는 우리가 성공적인 고도성장을 거듭하던 산업화시대는 벌써 지났고, 정보화시대를 거쳐 이제 인공지능 시대에 도달하여 게임의 법칙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과거에 해오던 식으로 계속하면 세계적인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 너무나도 명백하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지속적인 저출산에 의한 인구구조의 변화라는 아주 심각한 상황을 맞고 있다. 이것은 ‘정해진 미래’라서 바꿀 수도 없다. 이처럼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위기 상황을 극복하려면 발상의 전환을 통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인공지능 기술로 문명전환기 도래
‘피크 코리아’ 우려까지 극복해야
연금·노동·교육 개혁 필수불가결
급한 일보다 중요한 일에 집중해야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선 첫 번째로 건너야 할 고비가 소위 3대 개혁이라 일컬어지는 연금개혁, 노동개혁, 교육개혁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현행 연금제도가 인구구조 변화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알려졌다. 그러나 역대 집권 세력들은 자기 임기 안에는 폭탄이 터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대어 필수적인 개혁을 비겁하게 미루어 왔다. 노동개혁도 마찬가지다. 세계적 산업구조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대기업 제조업 노동자 위주의 노사제도를 바꾸어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는 한편 노동자를 위한 사회안정망을 두텁게 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 알면서도 단기적인 정치적 이득 때문에 노동개혁을 방치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더욱 미룰 시간이 없다. 게다가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4차산업 혁명의 물결은 이 과제의 시급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교육개혁은 역대 정부마다 변죽은 띄어왔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하나도 해결하지 못했다. 사실 기계가 인간의 지능을 갖게 되는 시대에 우리의 자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어야 할는지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부터 해야 할 때다. 단순히 대학입시제도를 바꾸거나 카르텔을 척결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교육은 이념적인 대립이 심한 분야다.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의 내용을 합의하는 데만도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상태다.

세상에는 급한 일과 중요한 일이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은 중요한 일보다 급한 일을 먼저 처리한다고 한다. 장기적인 비전보다 단기적인 이해가 우선시되는 정치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소위 3대 개혁도 그런 이유로 여태까지 미루어져 왔다. 그런데 이제는 3대 개혁이 중요할 뿐 아니라 급하기도 한 일이 되었다. 세계의 문명사적 변화와 우리나라의 상황이 더 이상 미루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다행히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3개 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천명하였다. 사실 윤 대통령은 작년에도 3개 개혁의 추진을 약속하였지만 지난 1년 동안의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는 것이 솔직한 평가다. 아마도 이 과제는 정부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작업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올해는 온 국민이 힘을 합쳐 좀 더 속도감 있게 추진되기를 기대해 본다.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전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