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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경제, 고도를 기다리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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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작년말, 연말이면 늘 그렇듯 올해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국내외 전망이 쏟아졌다. 안타깝게도 발표된 전망치들은 우리 눈 높이를 충족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해외의 국제통화기금(IMF)과 OECD의 성장률 예측치가 각각 2.2%와 2.3% 수준이고, 국내의 한국은행과 KDI가 2.1%와 2.2% 정도였다. 물론 내수와 수출이 최악의 동반 부진을 보이면서 1.3~1.4% 정도에 그친 것으로 예상되는 작년보다야 나은 수준이지만 그리 성에 차는 수치는 아닌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과연 2% 초반 정도 수준이 정말 낮은 걸까? 성장률은 잠재성장률이란 추세적 변화를 중심으로 저점과 고점을 오가는 경기순환을 더해 나온 결과물이다. 잠재성장률은 노동과 자본 등 생산요소를 총동원했을 때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을 지칭한다. 학생으로 치면 한마디로 그 친구의 학업 역량이다. 다만 시험 당일 그 친구의 컨디션이나 주변 여건에 따라 실제 성적은 이보다 높을 수도 낮을 수도 있다. 이것이 경기순환이라고 보면 된다.

2%대 초반 예측되는 올해 성장률
진짜 문제는 추락하는 잠재성장률
능력 있는 인재 발탁도 중요하지만
정책이 정치에 오염되는 일 없어야

우리가 학생들의 학업 역량을 측정하기 위해 모의고사를 치는 것처럼 잠재성장률 역시 이를 추정하기 위해 여러 방법이 동원된다. GDP의 시계열 자료로부터 장기 추세를 추정하는 통계적 방법부터, 지난달 말 작고한 노벨상 수상자 로버트 솔로우가 만든 장기성장모형을 통해 잠재 산출물을 추정하는 이론적 접근법까지 수많은 방법이 존재한다. 어떤 방법을 통해 추정하느냐에 따라 결과치가 상이하기 때문에 어떤 나라도 공식적으로 잠재성장률을 발표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IMF는 올해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을 2.2%로 추정하는데 반해 OECD는 훨씬 낮은 1.7% 수준으로 추정한다. 한국은행의 경우 2% 내외로 추정한다. 종합하면 대체로 2% 전후가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라고 볼 수 있으며, 따라서 올해 예측되는 2% 초반 성장률은 그런 잠재성장률에 부합하거나 약간 상회하는 수치라고 볼 수 있다. 즉 우리 경제 실력에 부합하는 예상치인 것이다.

우리 경제의 중요한 화두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성장률 발표치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잠재성장률 하락 자체를 우려해야 한다. 지난 20여년간 좌우를 막론하고 모든 정부가 잠재성장률을 끌어 올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헛수고였다. OECD의 추정에 따르면 2001년 5.4%에 이르렀던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2011년 3.8%로 하락했고 2021년에는 2.2%까지 추락했다. 추락 속도가 갈수록 빨라진 것이다. 반면 대부분의 선진국은 2001년에서 2011년까지는 하락했지만, 이후 큰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반등한 국가도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2011년 1.5% 수준에서 2021년에는 1.8%로 반등에 성공했고, 이러한 현상은 캐나다, 프랑스, 이탈리아에서도 관찰된다. 한마디로 다른 나라에 비해 경제 역량이 갈수록 뒤처지는 것이다.

따라서 눈 높이에 맞는 성장률을 기대한다면 근본적으로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지, 단기적인 부양책으로는 해결 난망이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지만, 그 날개로 날개짓을 해봤자 추락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구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를 통해 인류 최초로 대기권을 벗어나는데 성공한 것처럼 우리 경제가 잠재성장률을 추락시키는 중력의 힘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로켓엔진에 준하는 엄청난 부력이 요구된다.

마임 배우 조성진의 몸짓사전에서는 용을 쓴다는 표현의 ‘용’을 위로 상승하는 부력을 뜻하는 용(湧)으로 해석하고 있다. 한마디로 진짜 용을 써야 잠재성장률의 반등을 기대할 수 있는데, 이는 용빼는 재주가 있는 사람을 발탁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용빼는 재주의 ‘용’은 갑진년 청룡의 해에서 말하는 상상의 동물 용(龍)을 지칭하는게 아니라 녹용의 용(茸)을 지칭한다. 발버둥치는 사슴의 뿔을 떼어내려면 빼어난 기술을 필요로 한다고 해서 ‘남이 갖지 못한 특별한 재주’를 용빼는 재주라 한다. 사실 용의 뿔, 즉 용각 역시 사슴의 뿔을 본따 상상한 것이다. 사슴이든 용이든 뿔을 뽑을 기술을 갖춘 인재를 발탁해 등용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현재와 같이 극단으로 갈린 정치 지형 속에서 그런 인재가 발탁될 지도 의문이다. 설사 그런 인재가 발탁된다 한들 용빼는 재주를 발휘할 수 있는 여건과 공간이 주어질지도 의문이다.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장기 시계의 정책이 요구되지만, 그런만큼 정책 자체가 이념에 오염되고 국회가 정쟁으로 누더기를 만드는 데다 그마저도 정권이 바뀌면 단절되니 효과가 나올 수가 없다. 더 이상 정치가 경제를 망치지 않도록 구조적 변화 혹은 패러다임 전환(shift)이 일어나지 않는 한 우리 경제는 뜨거운 비이커 속의 개구리처럼 서서히 익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닌데 정치는 갈수록 저 모양이다. 실체도 불분명한 고도를 기다리며 디디와 고고가 하루를 보내듯 야속한 시계는 올해도 이미 일주일을 넘겼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