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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방사성 동위 원소 이용기관 급증 안전 사각지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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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우리나라의 방사성 동위원소 이용기관은 해마다 급증하고 있으나 이중 상당수가 「원자력법」에 따른 사용규정을 어기고 있는 등 안전 관리에 아직 많은 허점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방사성동위원소 이용기관은 지난80년엔 1백73곳에 불과했으나 85년엔 4백39개, 올해엔 10월말 현재 6백94곳에 달해 해마다 15%이상씩 늘어나고 있다.
방사성 동위원소 등을 이용하는 기관은 일반산업체가 3백86곳으로 가장 많고 다음이 의료기관 92곳, 대학 등 교육기관 91곳, 연구기관 46곳 등이다.

<불임·백혈병 유발>
방사선은 필름의 두께를 고르게 하거나 맥주의 정량을 재는가하면 철근 콘크리트 건물의 균열여부나 땅속 파이프용접의 정확성 측정 등 산업 분야에서 만도 수백 가지의 용도가 있고 의학용으로는 암세포를 죽이거나 이상세포를 찾아내는데 유용하게 쓰인다.
과기처는 이 같은 방사선을 이용하는 기관은 앞으로도 계속 급증해 2000년대에는 2천여 곳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방사선 작업종사자도 지난10월말 현재 원자력 발전소근무인원 5천여명을 제외하고도 산업체에 2천9백여명, 의료기관에 1천3백여명, 연구기관 등에 2천8백여 명 등 7천여 명에 이른다.
동위원소의 방사선은 과다 피폭되면 백혈병·내출혈·탈모·백내장·불임증 등을 유발하거나 생명까지도 앗아가는 치명적 결과를 초래하는 위험물이다.
이 같은 방사성동위원소 이용기관의 안전 규제는 원자력법에 따라 정부의 위탁을 받은 한국원자력 안전기술원이 전담하고 있으나 인력부족 등으로 사후적인 지적에 그칠 뿐 방사선 피해의 사전규제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원자력안전기술원이 지난5월에 작성, 최근에야 제한적으로 배포한 89년도 방사성동위원소 이용기관 정기검사결과보고서를 보면 이 같은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안전기술원은 89년도의 정기검사 대상이 된 1백96개 기관에 대해 방사성 시설 및 방사성 동위원소의 사용·운반·저장 및 폐기방법 등의 적합성을 검사했다.
그 결과 33·2%에 해당하는 65개 기관이 원자력법 관계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나 시정조치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규정위반 사례중 주요 지적사항에 해당하는 기관은 모두 6곳이며 이중에는 대학·병원·판매업체외에도 정부기관인 과학기술원까지 포함되어있어 안전관리의식의 부족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 유전공학센터는 이리듐125를 무허가소지 및 사용했고, 방사선 연간 사용허가 량이 10밀리 퀴리인데도 그 네배를 사용했다.
동위원소 판매업체인 (주)부경사는 인천 길 병원에 이리듐131을 판매하면서 이 병원의 연간 사용허가 량 1백 밀리 퀴리를 10배 초과한 양을 판매해 지적을 받았다.

<과기원까지 위반>
길 병원은 이리듐을 초과 사용한 것은 물론, 사용 장소로 허가를 받지 않은 일반 병실에서 이를 사용했다.
또 아세아정수 공업 사는 동위원소의 사용시설을 허가를 받지 않고 무단 변경해 지적을 받았다.
우리나라의 방사선 관련 사고는 과다 피폭 8건, 동위원소 분실 9건으로 공식 기록상으로는 많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방사선 과다피폭과 관련해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피폭선량 판독의 정확성과 기록조작의 가능성 및 사고의 은폐문제 등이다.
우리 나라의 방사선 피폭선량 판독은 한전 등 12개 기관은 자체판독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병원과 검사업체 등은 두 곳의 전문 판독기관에 작업자의 필름배지를 수거해 대신 판독케 하고 있다.
원자력 안전기술원은 피폭선량 판독의 정확도 검사를 위해 국내 14개 판독기관에서 20개씩의 필름배지를 보내줄 것을 요청, 각각 다른 양의방사선을 일정량씩 쬔 뒤 각 기관에 돌러보내 지난8월 이를 판독토록 했다.
조사에 협조한 10개 기관 중 9개 기관은 신뢰성이 확인됐으나 전주예수병원은 실체로 쬔 방사선량을 제대로 판독하지 못해 신뢰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보건원·국군통합병원·공업표준연구소등 네 곳은 이 요구에 불응해 10개 기관 밖에 검사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원자력법 등 관련규정에 피폭선량 판독의 정확도 검사가 의무사항으로 규정돼있지 않아 강제성이 없는 데다 국군통합병원은 국방부, 국립 보건원은 보사부 관할이라며 과기처 산하의 원자력안전기술원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의 강창정 교수는 이에 대해 『현행 원자력법은 원자력 사업자를 위한 원자력 사업자 법에 불과해 대대적인 손질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판독이 정확하다 해도 이를 제대로 감독기관에 보고하느냐는 별도의 문제다. 방사선작업자의 피폭기록은 각 이용기관에서 3개월마다 안전기술원에 보고토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과다피폭이 생긴 경우 업자는 영업정지, 방사선관리책임자는 해임 등의 불이익을 받게 되므로 이를 감추게 된다.
최근 과다피폭으로 손가락을 절단한 비파괴검사 전문업체 H사의 이용탁씨의 경우가 그 한 예다.
이씨는 지난해 4월 울산의 유공가스 배관공사 현장에서 선원이 노출돼있는 줄 모르고 안전장비도 없이 작업하다 연간 피폭허용치의 42배가 넘는 2백10렘을 온몸에, 손에는 무려 5만 렘을 쐰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H사는 이씨의 작업기간 중 피폭선량이 월 평균0·01렘에 불과하다고 과기처에 허위 보고했었다.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해 방사선을 발생시키는 선원의 분실사고는 9건이 일어났으며 이중 6건은 현재까지도 회수되지 않고 있어 안전의 문제점으로 남아있다.
분실된 선원은 이리듐(l92) 3개와 라듐(226) 14개다.
분실된 이리듐 중에는 10퀴리가 넘는 고성능 물질이 두개나 포함돼 있어 1m앞에서 5시간만 쬐어도 피폭선량이 24렘에 이르는 위험성을 갖고있다.
정부측은 이들 물질이 납으로 된 차폐용기에 밀봉돼 있어 안전하다고 말하고 있으나 이를 모르는 일반인들이 자물쇠를 부수고 용기를 열었을 경우엔 과다피폭의 위험이 크다.

<형식적 규제행정>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방사선 기기는 노후하거나 고장난 것이 많다는 것도 안전의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안전기술원이 지난1월부터3월까지 방사선 조사강치 3백15대에 대해 각 기관에 자체 점검토록 한 결과 79대가 결합이 있는 것으로 밝혀져 이중 32대를 자체 폐기한 것이 그 예다.
안전기술원의 동위원소 규제실장 권석근박사는 이에 대해 『13명의 요원으로 7백개에 달하는 기관을 규제하다보니 1인당 60개 기관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하고 『1년에 반은 출장 나가 있는 생활을 하고 있으나 이 인원으로는 지난해의 시정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있는지를 점검하기도 힘에 겨운 현실』이라고 말했다.
과기처 원자력 국의 임재춘안전심사관은 『지난 63년부터 시작한 원자력안전규제 행정은 규제보다는 원자력의 이용증진과 원자력산업의 지도에 역점을 두어 형식적인 규제 행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밝히고 『규제기술의 전문화와 공정성확보에 안전정책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 조현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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