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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어두운 시대에 태어났지만 그 덕분에 진정한 사랑 알게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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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오늘날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걸작 디지털 게임의 원천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J R R 톨킨(사진)의 소설 '실마릴리온'과 '호비트' '반지의 제왕'에 가닿는다. 인류의 이야기 예술사를 바꿔 놓은 이 웅편 거작을 토대로 '던전 앤 드래곤'(1974)이라는 주사위 게임이 만들어졌으며, 이 주사위 게임을 토대로 컴퓨터용 RPG인 '위저드리'(1981)와 '울티마'(1981)가 만들어졌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콘솔게임 '드래곤 퀘스트'(1986) '파이널 판타지'(1987)가 이 '위저드리'와 '울티마'를 교과서 삼아 개발됐다. 한국의 온라인게임 '리니지'(1998)는 '울티마-온라인'의 모델을 시장 현실에 맞게 상용화한 것이다.

소설가이며 옥스퍼드 대학의 언어학 교수였던 J R R 톨킨은 가상공간의 아버지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성공한 모든 가상공간은 톨킨 소설의 허구적 구성틀(Fictional Framework)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영국의 시골 마을이 가진 단순하고 소박한 생활의 공간 디자인, 휴먼-오르크-엘프-드워프 등의 캐릭터 디자인, 용과 괴물 등의 몬스터 디자인, 마법사-흑마법사-전사-기사-군주 등의 직업 디자인 등은 모두 톨킨이 설정한 것이다.

톨킨은 5살에 아버지를, 13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사랑했던 시골을 떠나 음울한 도시 빈민가에서 가난하고 외롭게 자랐다. 그가 가족처럼 사랑했던 친구들은 제1차 세계대전의 숌 강 전투에서 모두 죽었다. 톨킨만이 극적으로 살아 돌아왔다. 연구자들은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의 고향 샤이어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시골마을 세어홀을, 악의 군주가 있는 모르도르는 우울한 시절을 보낸 도시 모즐리와 전쟁터를 모델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톨킨은 사후에 출판된 '톨킨 서간문집'에서 다음과 같은 말로 현대 가상공간의 의의를 밝혀주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맞지 않는 어두운 시대에 태어났다. 그러나 한 가지 위안이 있다. 만약 이런 어두운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을 알지 못했거나, 알더라도 진정으로 사랑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물 밖에 나온 물고기만이 물의 존재를 알 수 있다."

가상공간은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세계'다. 허구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실패와 실망만을 거듭해온 인류가 자신의 착한 꿈에서 실재하게 만든 세계다. 가상공간은 이러한 열망이 담긴 신화적 영원의 시간이 지배한다. 한편으로 그 저변에는 첨단 테크놀로지의 가공할 힘이 담긴 현실적 순간의 시간이 작동하고 있다. 인간이 이런 두 개의 힘 가운데 어떤 것을 붙잡을 것이냐는 스스로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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