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신임 대법원장이 11일 열린 취임식에서 재판 지연 문제 해결 의지를 피력했다.
지난 8일부터 공식 임기를 시작한 조 대법원장은 이날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취임식을 가졌다. 조 대법원장은 “국민들이 지금 법원에 절실하게 바라는 목소리를 헤아려 볼 때, 재판 지연 문제를 해소하여 분쟁이 신속하게 해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면서 “세심하고 다각적인 분석을 통하여 엉켜있는 문제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우선 재판 지연 문제의 원인부터 파악해 보겠다고 했다. 조 대법원장은 “재판 지연의 원인은 어느 한 곳에 있다고 할 수 없다”면서 “구체적인 절차의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재판 제도와 법원 인력의 확충과 같은 큰 부분에 이르기까지 각종 문제점을 찾아 함께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공정’ 6번 ‘신뢰’ 4번 부른 새 대법원장
조 대법원장은 이날 취임사에서 ‘공정’과 ‘신뢰’를 강조했다. 그는 “공정한 재판을 통하여 법치주의를 실질적으로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야말로 법원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며 ”불공정하게 처리한 사건이 평생 한 건밖에 없다는 것이 자랑거리가 아니라, 그 한 건이 사법부의 신뢰를 통째로 무너지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또 “재판이 공정하다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재판의 전 과정에 걸쳐 공평한 기회가 보장돼야 할 것”이라며 “재판 과정에서 누구에게나 동등한 발언의 기회를 줘야 함은 물론이고, 항상 겸손하면서도 공정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원장은 ‘국민’과 ‘사법부 구성원’을 호명하는 것으로 취임사를 시작했는데, ‘내외 귀빈’을 첫머리에 포함한 김명수·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달랐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등을 인용한 조 원장은 “사법부는 기본권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라면서도 “(사법부가) 국민을 온전히 지켜주지 못했다”고 했다.
대법관 공석에…전합·소부 차질 불가피
김 전 원장이 지난 9월 퇴임한 후 78일 만에 대법원장 자리에 오른 조 원장에게 발등에 떨어진 불은 대법관 추천과 법원장 인사다. 김 전 원장이 지명했던 안철상·민유숙 대법관은 당장 3주 뒤인 내년 1월 1일 임기가 끝난다. 일단 새 대법관 천거 공고는 냈지만, 후보추천위원회 구성 등 남은 절차를 감안하면 신임 대법관 취임은 이르면 내년 3월이라고 한다. 두 달 이상 대법관 두 명의 자리가 비게 되면 대법원 전원합의체(13명)나 소부(4명) 구성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인사청문회 당시 조 대법원장 스스로 문제가 많다고 인정한 법원장 후보 추천제도 손봐야 한다. 이전에는 대법원장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중에서 임명하던 지방법원장 자리는, 2019년부터는 각 법원 판사와 직원들의 투표로 후보를 추천해 그 중에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조 원장은 이번 인사에선 법원장 추천제를 일부 개선해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기존 제도를 당장 폐지하기엔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행정처 관계자는 “단기간에 할 수 있는 절차적 개선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했다.
사법행정 개혁, 처장 바꿀까…유임 가능성도
조 대법원장은 사법 행정에 대한 개선 의지도 내비쳤다. 이날 취임사에서 “재판 제도와 사법 행정의 모든 영역에서 법관이 부당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요소가 있는지 살피겠다”고 했다. 전임 김명수 대법원장과 그 전 양승태 대법원장 시기 사법 행정은 적정성에 대한 비판에서 모두 자유롭지 못했다.
사법행정 개혁의 시작은 법원행정처장 교체 여부에 대한 선택부터다. 2021년 5월 김 전 원장이 임명한 김상환 법원행정처장은 2년 7개월 동안 처장직을 맡아 왔다. 대법관 중 한 명이 맡는 법원행정처장은 법에 정해진 임기는 없지만, 전임자들은 통상 약 2년간 재직한 후 처장직에서 물러나 왔다. 신임 처장에는 서경환·천대엽 대법관 등이 검토되고 있다. 다만 대법원 내부에선 “대법원장이 교체된 만큼, 새 처장을 임명해 리더십을 세워야 한다”는 의견과 “대법관 공백 등 혼란을 잠재우긴 위해선 기존 행정처장이 유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갈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