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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족산 맨발길에 180억 썼다…'잡놈' 소주 회장님의 광기 [호모 트레커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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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조웅래 회장이 권하는 ‘에코힐링’

호모 트레커스

“저는 ‘잡놈’으로 살았어요.” 경남 함안 들판 무학의 부모 밑 막내로 자라나 고학으로 대학을 다니고, 대기업에 다니다가 벨소리 회사를 창업하고, 소주 회사를 인수해 회장님이 되고, 전국 최초 ‘맨발길’에 황토를 깐다고 180억원을 땅에 뿌렸습니다. 드라마틱한 인생, 통 큰 씀씀이만큼 호쾌한 웃음소리. 60대 중반, 이젠 유튜브 세상을 ‘밟아줄’ 기세입니다.

선양소주를 제조하는 맥키스컴퍼니의 조웅래 회장. 대전 계족산 황톳길에서 만난 그는 유명 연예인 못지 않은 유명인이다. 장진영 기자

선양소주를 제조하는 맥키스컴퍼니의 조웅래 회장. 대전 계족산 황톳길에서 만난 그는 유명 연예인 못지 않은 유명인이다. 장진영 기자

“저는 잡놈으로 살았어요. 잡놈이 뭐냐면, 요즘으로 치면 융합형 인간이죠. 20대에 대기업 다니다가 30대에 ‘700-5425’ 벨소리 회사 창업하고, 40대엔 소주 회사 인수해서 소주 만들어 팔고, 20년간 마라톤에 미쳐 달리고. 60대 중반인 지금은 계족산 황톳길 작업반장을 하고 있지요. 저는 남한테 보여주기 위한 일은 안 해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죠. 한번 사는 인생 나답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원 오브 뎀(one of them)’이 되면 안 되잖아요.”

지난달 21일 조웅래(64) 맥키스컴퍼니 회장과 대전 계족산 황톳길을 세 시간 걸었다. 2006년 느닷없이 계족산 임도 14.5㎞에 황토를 깔아 전국 최초의 ‘맨발길’을 만든 그는 긍정의 에너지가 충만했다.

올해 라이프 트렌드를 꼽자면 맨발걷기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그만큼 폭발적이었다. 전국에 맨발걷기 황톳길이 깔렸고, 아파트 근처 야트막한 산은 ‘신발 신은 사람보다 안 신은 사람이 더 많다’는 얘기가 들릴 정도다. 맨발걷기가 대중적으로 확산한 이유는 ‘맨발로 걷고 나서 병이 나았다’는 구전(口傳)이 큰 몫을 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17년 전에 맨발걷기 황톳길을 조성한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맨발로 걸으면 ‘암이 치유된다’거나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어싱(Earthing, 접지)이 돼서 병이 낫는다’ 이런 얘기들을 하는데, 그것에 대해선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근데 한 가지 확실한 건 ‘몸빵이 최고’라는 겁니다. ‘내가 걸어 보니 좋더라’ 그거면 된 거지요. 맨발로 걷는다고 해서 누구한테 피해를 주거나 돈이 들거나 하지 않잖습니까. 각자 몸이 하라는 대로 판단해 따르는 거지요.”

이날 계족산 날씨는 최저 0도, 최고기온 10도를 웃돌았다. 맨발로 걷는 이들 중엔 겨울에도 맨발걷기를 계속해야 할지 고민하는 이가 많다. 그의 솔루션은 의외로 간단했다.

대전 계족산 황톳길 장동산림욕장 근처의 안내판. 황톳길 관리는 맥키스컴퍼니에서 하고, 편의 시설 관리는 대전시가 맡고 있다. 장진영 기자

대전 계족산 황톳길 장동산림욕장 근처의 안내판. 황톳길 관리는 맥키스컴퍼니에서 하고, 편의 시설 관리는 대전시가 맡고 있다. 장진영 기자

“영상 3~4도만 돼도 괜찮아요. 물론 땅이 얼어있으면 곤란하겠죠. 저는 봄·여름·가을엔 매일 오전 5시에 나와서 걷고, 요즘 같은 때엔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 사이에 해가 황톳길을 비춰 땅이 온기를 머금을 때 걷기를 시작합니다. 그늘진 곳을 걸을 땐 살짝 차갑다고 느껴지지만, 볕 나온 데로 가면 발바닥이 사르르 녹으면서 기분이 좋아져요.”

조 회장은 계족산 황톳길이 좋은 이유로 세 가지를 꼽았다. 구불구불 ‘S’자를 그리며 이어지는 길이 예쁘고, 참나무와 벚나무 위주로 수종이 구성돼 숲이 예쁘다는 점, 길 주변에 식당 등 상가가 전혀 없는 것이 장점이라고 했다. 계족산 아래 군부대가 있어 상업시설이 자리할 수 없다고 한다. 또 8월 말부터 10월까진 늦반딧불이를 볼 수 있다. 그는 “남녀노소 모두가 숲에서 자연치유, 에코힐링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에코힐링(eco-healing)은 계족산 황톳길을 조성한 이듬해인 2007년 맥키스컴퍼니가 상표등록을 한 걷기길 캠페인 슬로건이다.

계족산 맨발길에서 오가는 사람 두 명 중 한 명은 ‘맨발 회장 조웅래’를 알아보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맨발 회장님이시죠? 같이 사진 한 장 부탁합니다.”(경주에서 온 단체)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회장님, 저 양말 안 신었습니다. 발바닥은 맨발입니다.” 발등 부위에 등산용 각반 모양의 덧신을 신은 한 여성이 말했다. 발등만 덮고 발바닥은 뚫린 ‘겨울 맨발걷기용 덧신’이다.

“저분처럼 요즘 겨울용 덧신을 집에서 만들어 신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양말의 바닥 부분을 잘라내서 만들기도 하고, 어그부츠 바닥을 잘라내서 만들기도 하고. 그래서 여기는 늦가을, 초겨울에도 맨발걷기 열기가 식지 않습니다.”

그의 걸음은 상당히 빨랐다. 171㎝에 65㎏으로 몸이 가벼운 덕분이다. 또 마라톤으로 다져진 장딴지 근육이 단단해 보였다. 사고를 당해 오른쪽 엄지발가락 상태가 정상이 아닌데도 빠른 걸음으로 ‘11자’를 유지하며 걸었다.

“황토가 색감이 좋고 촉감이 부드러워요. 흙은 전라북도 김제·익산 부근에서 매년 2000t씩 가져다 깔아요.”

계족산 황톳길 그래픽1

계족산 황톳길 그래픽1

2006년 봄까지 이 길은 주먹만 한 자갈이 깔린 임도였다고 한다. 당시 우연한 기회에 조 회장이 고교시절 친구들과 맨발로 걷고 난 후 여름부터 황톳길로 변모했다. 황토를 가져다가 깔고 관리하는데 연간 10억원씩 들어간다고 한다. 매년 여는 축제와 4~10월 주말 동안 이어지는 클래식 공연 비용을 포함해서다. 18년째 이런 투자를 하고 있으니 지금까지 180억원 이상이 들어간 셈이다. 지난해 매출 498억원의 맥키스컴퍼니로선 큰 투자다.

“처음엔 다들 미쳤다고 했어요. 직원들도 반대했고요. 하지만 저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우리 회사는 지역에서 수십 년간 소주를 팔아 온 기업인데, 소비자를 위한 일로 이만한 게 없다고 봤어요.”

그는 지금까지 널뛰기하듯 뜬금없는 비즈니스를 섭렵했다. 그 바탕엔 특유의 끈기, 광기가 있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광이처럼 그 일에 미쳐야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술 만들어 파는 회사가 왜 자연치유, 에코힐링에 몰두하냐고요? 사람이 어떻게 늘 좋은 것만 먹고 삽니까. 좋은 것도 먹고 안 좋은 것도 먹고, 또 운동해서 그걸 비우고 그렇게 살아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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