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한달 출퇴근 해봤다, 2.5㎏ 감량보다 놀라운 변화

  • 카드 발행 일시2023.09.19

‘호모 트레커스’ 맨발걷기 글 싣는 순서

① 맨발 걷기 열풍, 왜 맨발에 빠졌나
② 기자의 한 달 체험기, 맨발로 출퇴근
③ 직접 걸어본 전국 맨발 걷기 명소 10

맨발걷기를 한 지 한 달, 몸무게가 2.5㎏ 줄었고 아침에 일어날 때 몸이 좀 더 가뿐해졌다. 그러나 기대했던 수면의 질은 나아지지 않았다. 기자가 한 달 맨발걷기를 한 후 몸으로 느끼는 변화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정서적 충만감을 느꼈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숲길을 걷는 것 자체가 명상이었다. 또 특별히 짬을 내지 않아도 출퇴근 시간에 가능한 ‘생활 운동’으로 맞춤이었다.

시작할 때 거리낌이 없진 않았다. 평소 서울 인왕산·안산·북한산 산행과 걷기를 주 5회 이상 하는 기자는 종종 맨발로 산을 오르는 이들을 볼 때마다 ‘신발을 신는 게 더 안전할 텐데…’라고 생각했다. 또 기자는 29년 전 교통사고로 왼쪽 발목에 지금도 핀이 박혀 있는지라 맨발로 걷게 되면 더 큰 부담을 줄 것이라 생각해 저어했다.

지난 15일 김영주 기자가 서울 종로구 인왕산 숲길 구간 중 잣나무 숲을 걷고 있다.

지난 15일 김영주 기자가 서울 종로구 인왕산 숲길 구간 중 잣나무 숲을 걷고 있다.

막상 양말과 신발을 벗고 발바닥을 땅에 대자 해방감이 밀려왔다. 내친김에 맨발로 출퇴근에 도전했다. 기존에도 서울 종로구 부암동 집에서 남대문 근처 사무실이나 경복궁역까지 약 4~5㎞를 걸어서 출근했는데, 이 구간 중 인왕산 숲길 2㎞를 맨발로 다녔다. 나무 데크와 야자수 매트, 마사토, 황토가 혼재한 오솔길은 걷기에 좋았다. 1주일 정도 됐을 땐 발바닥이 적응돼 신발을 신고 걸었을 때와 큰 차이를 못 느꼈다. 퇴근할 때도 되도록 이 길을 애용했고, 일몰 후엔 좀 더 안전한 인왕산 자락길 2㎞를 맨발로 걸었다.

주말엔 등산화를 신고 걸었던 여러 산과 둘레길을 맨발로 해봤다. 북한산과 청계산, 대전 계족산성, 경북 문경새재, 경남 함양 상림숲 등이다. 물리적으로 어렵지 않았고, 하고 난 후 통증도 없었다. 문경새재는 밤에 혼자 걸었는데, 수십 년 만에 반딧불이를 봤다.

중앙 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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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숲길을 맨발로 걸을 때, 정서적으로 편안했다. 소싯적 맨발로 걷던 추억이 떠올라 더했다.
황토밭과 뻘낙지로 유명한 전남 해남 산이면에서 태어난 기자는 맨발로 들판과 논밭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다. 또 여름방학이면 마을 앞으로 길게 뻗은 해안가 백사장과 갯벌에 나가 짱뚱어와 망둥어를 잡고 놀았다. 양동이와 바가지로 갯벌 둠벙(작은 웅덩이)의 물을 퍼낸 후 뻘속에서 꿈틀거리는 망둥어와 낙지, ‘뻘떡기’(꽃게)를 건져내던 기억이 생생하다. 물론 장화나 아쿠아슈즈 같은 건 없었다. 최근 맨발걷기에 빠진 이들은 황토와 갯벌을 최고로 친다. 그들은 이런 길을 걸을 때 “치유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가장 소중한 추억은 맨발로 황토밭을 밟고 다니며 고구마를 캐던 장면이다. 초등학생이던 1980년대쯤이었 듯한데, 당시 해남은 배추농사보다 고구마밭이 더 많았다. 지금은 대부분 동남아에서 온 인부들이 호미를 들고 밭두렁을 헐어 땅속 고구마를 하나씩 캐내지만, 그때는 쟁기로 밭두렁을 갈아엎어 수확했다. 요즘 나오는 밤고구마 종류가 아니라 어린아이 머리만 한 토종 고구마를 심던 시절이다.

아버지가 쟁기로 밭두렁을 훑고 지나가면, 나머지 여덟 식구가 뒤따르면서 고구마를 주워 담았다. 그때 발바닥에서 느껴지던 황토의 맛. 그 흙은 요즘 배추밭 황토와는 분명히 달랐는데, 진 황토와 희끗희끗한 마사(磨沙)가 섞여 있었다. 물빠짐이 좋은 이런 흙에서 자란 고구마는 꿀맛이 난다. 땅속에서 갓 올라온 몽글몽글하고 버근버근한 황토가 발바닥에 닿아 으깨어질 때의 느낌이 그지없이 좋았다. 맨발로 느끼는 진정한 황토의 맛. 최근 지자체에서 여기저기에 깔아 놓은 질컹한 황톳길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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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 출퇴근 길, 찾으면 있다

서울 사는 직장인이 아침·저녁 출퇴근을 맨발로 걸어서 한다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출근길을 잘 살피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쓴다면 그리 어렵지도 않다.
지난달 27일 서울 금천구 호암산에서 만난 김모(56)씨는 1호선 석수역에서 내려 금천구 시흥동 아파트까지 약 3㎞를 걸어서 퇴근한다고 말했다. 이 산책로는 나무데크로 만든 길 옆으로 흙길이 따로 있는데, 숲길을 따라 맨발로 걷기에 좋다. 특히 굵은 소나무가 즐비한 ‘호암늘솔길’ 구간이 좋다.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데크 길이 아닌 숲길을 맨발로 걷는다. 퇴근 중 어두워지거나 발바닥이 아프면 데크 길로 이동하면 된다. 주말에 산책하던 길인데, 맨발이 건강에 좋다고 해서 한 달 전부터 걷고 있다.”

서울 강남구 매봉산 자락 아파트에 사는 이종림(58)씨도 3주 전부터 맨발로 걸어서 강남역 사무실까지 출퇴근한다. 그는 기존에 신발을 신고 매봉산을 넘어 걸어가곤 했는데, 최근엔 맨발로 걷는다.
“8시20분에 집에서 나와 강남세브란스병원 쪽에서 매봉산(95m)으로 올라 원형광장 주변의 마사토 길을 한 시간 정도 걷는다. 그리고 매봉역 방향으로 내려와 세족장에서 발을 씻고 출근한다. 사무실 출근하면 10시30분이다. 퇴근할 땐 맨발로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이전에 등산을 열심히 다녔는데, 오히려 무릎이 아파 한동안 쉬고 있었다. 맨발로 걷고 나면 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중독성 때문에 사람들이 자꾸 걷는 것 같다.”
그는 평소 하루 1만5000~2만 보(모바일 삼성헬스 앱 기준)가량을 걷는다고 했다.

경기도 시흥시에 사는 김정자(65)씨도 석 달 전부터 퇴근길을 맨발로 걷고 있다. 처음엔 “건강을 위해 맨발걷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서 시흥대야역에서 집까지 딱딱한 보도블록 2㎞를 무작정 걸었다. 지금은 중간에 공원에 들러 흙길을 30분 정도 걷다가 집에 온다. 하다 보니 건강이 좋아져 지난주부턴 아침 출근길도 맨발로 걷고 있다. 김씨는 “고혈압·고지혈증이 있어 고생했는데 맨발걷기 후 몸이 건강해졌다는 걸 느낀다. 그래서 하루 1시간 걷는 게 부족하다 싶어 최근엔 아침 출근길도 지하철역까지 걷고 있다”고 말했다.

발목이 불안정한 경우, 맨발걷기는?  

기자의 집은 인왕산 북동쪽 기차바위(296m)에서 직선으로 약 400m 내려온 지점이다. 이곳에서 남대문 근방 사무실까지 걸어오려면 부암동주민센터-윤동주문학관-청운어린이집-인왕산 숲길(둘레길)-황학정-사직단-광화문을 거친다. 이 가운데 맨발로 걷기 좋은 숲길은 청운어린이집에서 황학정까지다. 운동화를 신고 걸으면 1시간10분, 맨발로 걸으면 10~20분 정도 더 걸린다. 아무래도 걷는 속도가 늦기 때문이다. 운동화 신고 4.5㎞/h였다면, 맨발로 걸었을 땐 3.5㎞/h의 속도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