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꼭대기 오를 때마다, 75세 이 할머니는 운다

  • 카드 발행 일시2023.08.29

걷는 인간 ‘호모 트레커스’

걷기가 열풍입니다. 최근엔 건강 열풍을 타고 맨발로 걷기가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일본의 걷기 전도사이자 의사인 나가오 가즈히로는 “병의 90%는 걷기만 해도 낫는다”고 설파합니다. 그는 또 “아파서 못 걷는 것이 아니라 걷지 않아서 아픈 것”이라고 합니다.

[호모 트레커스]

The Joongang PLUS는 폭발적으로 늘어난 걷는 사람의 스토리와 전국 방방곡곡의 트레킹 코스를 ‘호모 트레커스’를 통해 전해 드립니다. 호모 트레커스 2회는 60대에 산에 입문해 히말라야를 포함해 전 세계 트레킹 코스를 섭렵한 70대 여성 트레커 김순식(75)씨 이야기입니다.

김순식(75)씨는 키 147cm, 체중 51kg의 평범한 여성이다. 그러나 걷기만큼은 비범하다. 4대강(한강·금강·영산강·섬진강) 국토종주를 비롯해 네팔 에베레스트·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과 존뮤어트레일(미국·358㎞), 산티아고 순례길(스페인·800㎞), 킬리만자로(탄자니아·5895m) 등정, 아일랜드피크(네팔·6189m) 등반 등을 모두 60~70대에 해냈다. 지금도 하루 30~40㎞를 거뜬히 걸을 수 있는 체력을 갖고 있다고 자신한다. 다녀온 해외 트레킹 명소 중 7곳을 골라 책(『70세 청년 김순식의 트레킹 일기』)도 냈다. 이 정도면 70대로선 ‘마계급’이다.

김씨의 걷기는 십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사와 부동산중개업 일을 병행하느라 체중이 갑자기 불고 체력이 떨어져 동네 병원을 찾았더니 “백혈병 증세가 의심된다”며 큰 병원을 찾아가라는 말을 들었다. 다행히 큰 병은 아니었지만, 콜레스테롤 수치가 ‘300’을 넘었고 지방간 등 몸이 망가져 있었다. 본능적으로 집에서 가까운 올림픽공원과 검단산(하남·657m)을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걸어 보니 잘 걷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하다 보니 어느새 해외 고산·트레킹 준프로가 돼 있었다. 김씨는 소싯적 땔나무 하러 산골짜기를 돌아다닌 ‘산골 DNA’를 비결로 꼽았다.

충남 공주 차령산맥 아래 산골마을에서 태어나 고생을 많이 했다. 어쩌다 걷기에 취미를 붙여 전 세계 곳곳을 걷게 됐는데, 산 꼭대기에 오를 때마다 어머니가 생각나 울었다. 어릴 적 어머니랑 이 산 저 산을 돌아다니며 나무를 한짐씩 하고 다녔다. 또 어머니에게 배운 산행 지식과 요령이 걷기 스승이 된 것 같다. ‘고인 물은 아무리 맑아도 마시면 안 된다. 뱀이 지나갔을 수 있다’ 이런 것들이다.

쉬지 않고 꾸준히 걸은 덕분에 골다공증 수치가 역주행하기도 했다. 지난달 보름간 파미르고원 트레킹을 다녀온 후에 송파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아 보니 골다공증 수치가 3년 전 ‘-2.9’에서 ‘-2.5’로 10% 이상 향상됐다. 보건소 관계자가 “약을 먹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김씨는 걷기를 만병통치약으로 여긴다. 일본의 걷기 전도사이자 시골 의사인 나가오 가즈히로는 “아파서 못 걷는 것이 아니라 걷지 않아서 아픈 것(『병의 90%는 걷기만 해도 낫는다』)”이라고 했는데, 이를 철칙으로 삼고 있다.

걷고 또 걸어 별명이 ‘또순이’라는 김씨와 섬진강 자전거길 구례 구간 중 동해마을~남도대교 20㎞를 지난달 말 함께 걸었다. 시종일관 섬진강 물을 끼고 걷는 길이다. 김씨는 지금까지 걸었던 국내 걷기길 중 가장 좋았던 길이라고 했다. 그와 한강·낙동강(아라뱃길~을숙도) 종주를 같이한 윤정희(63)씨가 동행했다.

어머니에게 배운 산행 DNA  

7월 20일 김순식씨(오른쪽)와 윤정희씨가 섬진강 자전거길 구례 구간을 걷고 있다. 김영주 기자

7월 20일 김순식씨(오른쪽)와 윤정희씨가 섬진강 자전거길 구례 구간을 걷고 있다. 김영주 기자

섬진강 자전거길은 전북 임실군에서 시작해 곡성·구례·하동·광양까지 149㎞가 이어진다. 이 중 구례 동해마을~남도대교 구간은 벚나무 아래 나무 데크 길이 4~5㎞ 되고, 나머지도 걷기 좋은 둑방길과 벚나무 그늘 길이 이어져 한여름에도 걸을 만하다.

17번 국도를 연결하는 구례1교가 보이는 동해마을 느티나무 아래 데크 시작점에서 걷기 시작했다. 오전 9시쯤 기온은 벌써 30도 가까이 올랐지만, 강바람과 벚나무 그늘 덕에 무덥지는 않았다. 이날 목표는 20㎞ 거리를 시속 4~5㎞로 걷기. 점심시간을 포함해 오후 3시에 마칠 예정이었다. 아침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간단하게 해결했고, 점심은 도중에 간식으로 때우기로 했다.

뒤에서 걸으며 김씨의 자세를 유심히 살폈다. 허리가 살짝 굽어지긴 했지만, 서 있는 자세가 70대 중반의 나이치곤 올곧았다. 걸음을 옮길 때도 왼발·오른발이 거의 ‘11자’를 유지했다. 특이한 점은 왼팔·오른팔을 앞뒤로 크게 젖히며 걸었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라는데, 그렇게 하면 걸음을 좀 더 빨리 재촉할 수 있다고 한다. 걸을 때 가장 주의를 기울이는 건 “뒤꿈치부터 땅에 닿기”다.

걷는 속도는 빠르지 않은 편이다. 빨라야 시속 5㎞ 안팎이다. 오래 걷기 위해선 발바닥에 부담을 덜 주면서 평속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나 같은 경우엔 발뒤꿈치가 먼저 땅에 닿아야 발이 덜 아프다는 걸 체득하게 됐다. 그래서 보폭을 살짝 넓게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발뒤꿈치부터 땅에 닿게 된다.

평소 훈련 장소인 검단산 계단을 내려올 때도 ‘뒷걸음질로 두 계단씩 내려오기’를 반복한다. 이때도 발뒤꿈치가 먼저 닿도록 한다. 하지만 이런 걸음이 어떤 효과를 내는지는 미지수다. 정덕환 강동경희대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뒤로 걷기는 평소 안 쓰는 근육을 사용한다는 것 말고 크게 도움이 되진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의 등산화는 아주 평범했다. 10년 넘게 신고 있는 캠프라인의 미드컷(발목을 덮는) 등산화다. 등산화 끈을 헐겁게 해 발목을 완전히 감싸지는 않았다. 평지에서 이런 상태를 유지하고, 경사가 있는 오르막은 끈을 좀 더 조이는 편이다. 김씨는 평지를 걸을 땐 스틱을 쓰지 않는다. 대신 팔을 앞뒤로 젖혀 주면서 걷는다. 이렇게 하면 스틱을 쓸 때 팔을 젖히는 효과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