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홍길 장딴지는 ‘짝짝이’다, 그 다리로 25년간 걷는 비결

  • 카드 발행 일시2023.08.22

걷는 인간 ‘호모 트레커스’를 시작하며

걷기가 열풍입니다. 산과 바다, 들에서 걷는 이가 늘고 있습니다. 최근엔 건강 열풍을 타고 맨발로 걷기가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걷기의 매력은 차고 넘칩니다. 일본의 걷기 전도사이자 의사인 나가오 가즈히로는 “병의 90%는 걷기만 해도 낫는다”고 설파합니다. 그는 또 “아파서 못 걷는 것이 아니라 걷지 않아서 아픈 것”이라고 합니다.

The Joongang PLUS는 폭발적으로 늘어난 걷는 사람의 스토리와 전국 방방곡곡의 트레킹 코스를 ‘호모 트레커스’를 통해 전해드립니다. ‘걷기의 매력, 걷는 자의 철학’을 전달해드릴 예정입니다.

호모 트레커스 1회는 히말라야 8000m 16좌를 완등한 엄홍길 대장입니다. 산악 영웅으로 알려졌지만, 그는 남모를 고통을 안고 60년을 걸었다고 합니다. 그 사연 속으로 이제 함께 걸어보실까요.

엄홍길(63) 대장의 오른쪽 장딴지는 왼쪽과 확연히 차이가 났다. 히말라야 고산 등반만 22년(1985~2007년)간 해온 ‘산악 영웅’의 한쪽 다리는 홀쭉했다. 2007년 로체샤르(8382m, 히말라야 8000m 16좌 완등) 원정을 동행 취재하던 때에 봤던 장딴지와는 딴판이다. 16년 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의 오른발은 정상이 아니다. 1998년 안나푸르나(8091m) 등반 중 사고로 발목이 완전히 돌아갔고, 이후 장애 등급을 받았다. 앞서 1992년 낭가파르밧(8025m) 등반 땐 동상에 걸려 엄지발가락 일부를 잘라내야만 했다. 걸을 때 발목이 굽혀지지 않는 데다,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엄지발가락이 짧은 탓에 걸을 때 오른발에 힘을 주지 못한다. 장딴지에 근육이 붙지 못하고 쪼그라든 이유다.

 지난 7월 16일 엄홍길 대장이 도봉산 원도봉계곡을 걷고 있다. 왼쪽 장딴지와 오른쪽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 사진 이내정 사진작가

지난 7월 16일 엄홍길 대장이 도봉산 원도봉계곡을 걷고 있다. 왼쪽 장딴지와 오른쪽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 사진 이내정 사진작가

산에 올라갈 땐 남모를 고통이 따른다. 경사가 있는 산을 오를 땐 까치발이 되기 때문이다. 평소 생활도 장애가 있다. 의자에 오래 앉았다가 계단을 내려와야 할 땐 절름발을 하듯 뒤뚱뒤뚱 내려오기 일쑤다. 히말라야 8000m 16개 봉우리를 완등한 ‘산악 영웅’의 발은 보통 사람의 그것보다 훨씬 열악하다.

그래도 1주일에 서너번 산에 간다. 발목 수술을 한 주치의를 비롯해 가까이 지내는 의사들은 한결같이 “아껴 쓰라”고 했다고 한다. 직설적으로 말은 안 해도 ‘되도록 산에 가지 말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엄 대장은 수술이나 약물 대신 걷기를 치유법으로 택했다. 그는 “만약 사고 후 산에 가지 않았다면, 계속 걷지 않았으면 발목은 더 굳었을 것”이라고 했다. ‘쓰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용불용설(用不用說)이다.

원도봉산 망월사 길을 오르고 있는 엄홍길 대장. 김영주 기자

원도봉산 망월사 길을 오르고 있는 엄홍길 대장. 김영주 기자

엄 대장은 꼬박 60년 동안 쉬지 않고 걷기를 실천했다. 아버지가 음식 장사를 위해 그의 나이 세 살 때 원도봉산(도봉산 북쪽, ‘원래 도봉산’이라는 뜻) 중턱에 자리를 잡은 이후 산은 그의 놀이터이자 배움터였다. 도봉산에서 시작해 히말라야 16좌까지 간난고초를 겪었지만, 여전히 쉬지 않고 걷고 있는 엄 대장의 걷기 비결을 들어봤다.

소년 엄홍길의 놀이터, 원도봉계곡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1호선 망월사역에서 도봉산을 향해 20분쯤 걸어 올라가면 ‘망월사 입구’ 등산로가 나온다. 여기서 15분쯤 더 걸어오면 엄 대장이 마흔까지 살았던 옛집 터다. 지난달 16일 이른 아침 엄 대장과 함께 이 길을 걸었다. 장마가 잠시 쉬어간 이날, 원도봉계곡은 물안개가 사르르 깔렸다.

지난 7월 16일 엄홍길 대장이 도봉산 원도봉계곡을 걷고 있다. 뒤로 보이는 암벽이 엄 대장이 처음으로 암벽 등반을 배운 두꺼비 바위다. 하산 중 상의를 갈아입었다. 사진 이내정 사진작가

지난 7월 16일 엄홍길 대장이 도봉산 원도봉계곡을 걷고 있다. 뒤로 보이는 암벽이 엄 대장이 처음으로 암벽 등반을 배운 두꺼비 바위다. 하산 중 상의를 갈아입었다. 사진 이내정 사진작가

어머니가 김치를 아주 맛깔나게 담그셨다. 열무김치, 배추김치 다 솜씨가 좋았는데 김치를 담그려면 배추를 지고 올라와야 하지 않나. 몇살 적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저 산 아래서부터 그걸 지고 날랐다. 그게 등산의 첫걸음이었던 것 같다.

원도봉계곡에 있던 엄 대장의 집은 두 곳이었다. ‘엄홍길 대장이 살던 곳’ 이정표가 있는 곳이 애초 집터인데,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당시 근방에 있던 마사토와 시멘트를 섞어 찍었던 블록이 땅바닥에 박혀 있어, 집터였음을 보여준다. 터는 어림잡아 10평 될까 말까 한데, 방이 3개였다고 한다.

이곳(등산로 바로 옆)이 내 방이었고 가운데가 마루, 안쪽에 방 2개와 주방이 있었다. 여기서 근 40년을 살았다. 결혼하고 잠시 아파트에 산 적이 있는데, (아파트는) 답답해 결혼 후에도 거의 이곳에서 살다시피 했다.

중앙 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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