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18m 정상에서 “결혼하자”…‘7년간 한 텐트’ 이 부부 사는 법

  • 카드 발행 일시2023.12.05

장거리 하이커(Hiker), 양희종(38)·이하늘(37) 부부의 지난 7년은 누구나 한 번쯤 동경하는 꿈을 좇는 시간이었다.

서른 즈음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떠난 용감한 직장인, 미국 대륙 최고봉 휘트니(4418m) 정상에서 프러포즈를 하고 그날 둘만의 결혼식을 올린 커플, 미국 3대 트레일(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콘티넨털 디바이드 트레일, 애팔래치아 트레일. 총 1만2800㎞)을 모두 완주한 국내 유일의 하이커 부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올인하면서 생활비를 버는 프리랜서. 그리고 걸을수록 걷고 싶은 길이 많아진다는 욕심 많은 하이커. 지난 7년간 부부가 걸어온 궤적이다. 누구나 한 번쯤 갈망하지만, 쉽게 저지르거나 이룰 수 없는 것들이다.

 2017년 미국 3대 트레일 중 하나인 애팔래치아 트레일의 북쪽 끝, 메인주 마운트 카타딘에 오른 양희종·이하늘 부부. 사진 두두부부

2017년 미국 3대 트레일 중 하나인 애팔래치아 트레일의 북쪽 끝, 메인주 마운트 카타딘에 오른 양희종·이하늘 부부. 사진 두두부부

두 사람은 3년 전부터 코오롱등산학교에서 ‘장거리 하이킹’ 아카데미를 개설해 강사로 일하고 있다. 2016년부터 이어온 그들의 여정에서 얻은 첫 ‘공식’ 직함이다. 하이킹을 주제로 하는 국내 유일의 스쿨이다.

지난 1일 경기도 포천 왕방산 능선을 걷고 있는 양희종·이하늘 부부. 김영주 기자

지난 1일 경기도 포천 왕방산 능선을 걷고 있는 양희종·이하늘 부부. 김영주 기자

지난 1일 양희종·이하늘씨와 함께 경기도 포천 왕방산(737m)의 트레일을 걸었다. 이번 가을 아카데미에서 두 사람이 14명의 수강생과 함께 실전 트레이닝을 했던 구간의 일부로, 의정부 녹양역 동쪽 천보산(335m·의정부)에서 시작해 북동쪽 능선을 따라 양주 천보산(423m)과 포천 왕방산으로 이어지는 40㎞ 트레일이다. 이 코스는 하루 야영을 포함해 1박 2일간 ‘20-20(하루 20㎞ 하이킹)프로그램으로 짜였다.

이날 오전 10시, 포천 방면에서 왕방산으로 올라가는 오지재(330m)를 들머리로 잡았다. 기온은 영하 4도를 가리켰지만 두 사람의 옷차림은 두껍지 않았다. 바람막이 재킷과 하이킹 팬츠. 특히 양희종씨는 봄·가을용 헐렁한 바지를 입었다. 수많은 트레일을 걸으며 익숙해진 옷차림이라고 한다. 또 두 사람 모두 “추위를 덜 타는 편”이라고 했다. 단, 머리 부위는 바람막이 후드 재킷과 챙이 짧은 모자를 꾹 눌러 꽁꽁 감쌌다. 엔간해선 찬바람이 귀나 턱 밑으로 들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전체적으로 하체는 가뿐하게, 상체와 머리는 채비를 단단히 한 모양새다. 또 배낭 앞가슴 벨트에 따뜻한 커피를 담은 보온병을 부착했고, 배낭 옆으로 등산 스틱을 꽂았다. 그러나 간식은 챙기지 않았다. 오지재에서 왕방산 정상까진 3.5㎞. 왕복 약 3시간 거리다.

관련기사

“장거리 하이킹은 속도보다 지구력”

오지재에서 20분 정도 오르니 왕방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다다랐다. 걷는 속도는 2~3㎞/h. 눈이 살짝 깔린 길인데도 두 사람은 트레일 러닝(Trail Running, 산길 달리기)용 운동화를 신고 사뿐사뿐 걸었다. 이하늘씨는 이 신발을 신고 지난 9월 미국의 존 뮤어 트레일 366㎞를 완주했다고 한다. 시간당 2~3㎞ 속도는 두 사람이 보통 트레일에서 걷는 속도의 50% 수준이라고 한다.

장거리 하이커에게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양희종씨는 “오래 걷는 게 목적이니까 체력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라고 했다. 이하늘씨는 “(나는) 원래 속도가 빠르지 않다. 장거리 하이커에게 필요한 건 지구력”이라고 말했다. 매일 하는 훈련도 꾸준히 오래 걸을 수 있는 지구력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훈련은 등산과 트레일 러닝, 달리기를 반복한다.

2018년 미국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중 시에라 네바다 구간을 걷는 이하늘씨. 사진 두두부부

2018년 미국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중 시에라 네바다 구간을 걷는 이하늘씨. 사진 두두부부

스스로 빠르지 않다고 했지만, 이하늘씨는 한국과 미국의 유명 트레일에서 바람처럼 움직이는 ‘패스티스트 노운 타임(Fastest Known Time·FKT, 최단 시간 주파 기록)’을 여러 번 했다. 특히 지난 9월 존 뮤어 트레일을 120시간13분 만에 완주했는데, 이는 세계 여성으로선 가장 빠른 기록이다. 산술적으로 366㎞를 120시간에 주파하려면 시간당 3.05㎞ 걸어야 한다. 한숨도 자지 않고 멈추지 않고 걸었을 경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