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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 유치 실패…윤 대통령 사과 "저의 부족" 세차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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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쓴 2600자 분량의 대국민 담화에는 “제 부족”이란 표현이 세 번 담겼다. “국민 여러분께 실망시켜 드린 것에 대해서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도 했다. 당초 ‘박빙’ 전망까지 나왔던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119표 대 29표(부산)’란 성적표를 받아 든 윤 대통령이 30일 직접 머리를 숙였다. 조만간 단행될 대통령실과 내각 개편에서 윤 대통령이 ‘인사’로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부산 시민뿐 아니라 우리 전 국민의 열망을 담아 민관 합동으로, 범정부적으로 2030년 엑스포, 부산엑스포 유치를 추진했습니다마는 실패했다”는 말로 대국민 담화를 시작했다. 박형준 부산시장, 유치위 공동위원장인 최태원 대한상의 의장, 한덕수 국무총리 등을 일일이 호명하며 “정말 최선을 다해 1년 이상 정말 열심히 뛰었다”고 언급하긴 했지만 대국민 담화의 방점은 연신 “저의 부족” “죄송” 쪽에 찍혔다.

윤 대통령은 “이 모든 것은 전부 저의 부족이라고 생각해 달라”며 “정말 우리 민관은 합동으로 정말 열심히 뛰었다. 이것을 잘 지휘하고 유치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은 대통령인 저의 부족의 소치라고 하겠다”고 했다. 또 “엑스포 유치를 총지휘하고 책임을 진 대통령으로서 우리 부산 시민을 비롯한 우리 국민 여러분께 실망시켜 드린 것에 대해서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모든 것은 제 부족함”이라고 재차 사과했다.

“사우디와 17표차 박빙” 보고라인 문책할 듯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세계박람회 유치 실패와 관련,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기 위해 대통령실 브리핑룸 연단에 섰다. 윤 대통령은 “예측이 많이 빗나간 것 같다”며 직접 사과했다. [사진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세계박람회 유치 실패와 관련,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기 위해 대통령실 브리핑룸 연단에 섰다. 윤 대통령은 “예측이 많이 빗나간 것 같다”며 직접 사과했다. [사진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 대통령이 취임 후 사과나 반성을 언급한 것은 지난달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후 “저와 내각에서 반성하겠다”고 한 데 이어 두 번째다. 직접적인 언어로 몇 차례에 걸쳐 사과하고 자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특히 “(엑스포 유치 판세) 예측이 많이 빗나간 것 같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예측’ 문제를 직접 언급함에 따라 정부나 대통령실 내부의 판세 예측 실패나 허위 보고 여부에 대한 진상 규명 작업이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가 여권 내부에서 나왔다. 애초 유치위원회 안팎에선 판세와 관련해 “점수가 뒤지는 가운데 9회 말 투아웃, 마지막 타석에 들어섰다”는 예측이 정설이었다. 그러다 투표일이 다가오면서 “잘하면 유치할 수 있다”는 ‘박빙’ 전망이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개최지 결정이 임박한 최근까지 용산 대통령실 내부나 외교부로부터 “한국이 사우디에 17표 안팎으로 뒤지고 있는 박빙 판세”라는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이런 보고가 윤 대통령에겐 ‘희망 고문’으로 작용했고, 결국 국민도 정부를 통해 들었던 판세와는 전혀 다른 성적표를 받아 들게 됐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결과가 나온 이후 고민을 거듭했다고 한다. 예정돼 있던 국방혁신위원회 3차 회의도 미뤘다. 그 고민의 1차 결과물이 대국민 담화라면, 2차 결과물은 관계 라인에 책임을 묻는 조치가 될 수도 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윤 대통령이 앞으로 인사로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 부처 수장으로 그동안 유임 쪽에 무게가 실렸던 박진 외교부 장관의 거취에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당초엔 유임 가능성이 컸지만, 엑스포 결과에 따라 교체하는 쪽으로 추가 기울었다”고 전했다.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군에 이름이 오르내리던 오영주 외교부 2차관의 기용 역시 어려워졌다는 관측도 나왔다. 엑스포 관련 업무를 담당해온 대통령실 내 미래전략기획관실도 없어진다.

대통령실 개편과 개각 폭은 커지는 분위기다. 현재 ‘비서실-국가안보실’ 2실 체제인 대통령실은 ‘비서실-국가안보실-정책실’ 3실 체제로 재편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동안 김대기 비서실장이 총괄하던 6수석(국정기획·경제·사회·홍보·정무·시민사회) 중 경제·사회수석실을 따로 떼 정책실장 산하에 두는 개편이다. 국정기획수석직은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정부 정책 전반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정책실을 신설하는 쪽으로 거의 정리가 됐다. 신임 정책실장으로는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이 내정됐다”고 전했다. 정책실장 산하의 새 경제수석엔 박춘섭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의 발탁이 유력하며 사회수석엔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신설할 것으로 예상됐던 과학기술수석은 정책실 신설에 따라 따로 두지 않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30일 이런 내용으로 대통령실을 개편할 예정이다.

내각의 경우 19개 장관 중 10명 안팎이 교체될 것으로 보인다. 추경호 경제부총리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의 후임으로는 각각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 심교언 국토연구원장,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임으로 박성재·길태기 전 서울고검장의 인사 검증이 진행 중이며,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임으로는 유병준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가 거론되고 있다. 고용노동부 장관에는 이성희 고용부 차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로는 박윤규 과기부 2차관과 이용훈 울산과학기술원 총장 등이 거론된다.

이날 윤 대통령은 서울과 부산을 두 개 축으로 한 균형발전 전략은 엑스포 유치와 무관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 10대 경제 강국에서 더 점프하기 위해서는 우리 국토의 모든 지역을 충분히 산업화해 다 사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영호남 지역은 부산을 축으로, 또 서울을 축으로 해서는 수도권·충청·강원 지역으로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부산을 해양과 국제금융과 첨단 산업, 디지털의 거점으로 계속 육성하고, 영호남의 남부 지역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굳이 서울까지 오지 않더라도 남부 지역에서 부산을 거점으로 모든 경제·산업 활동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인프라 구축을 차질 없이 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핵심 파트너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원하던 엑스포 리야드 개최를 성공적으로 이루게 돼 정말 축하한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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