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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국제 현안에 더 목소리 높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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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라몬 파체코 파르도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교수·브뤼셀자유대학 KF 석좌교수

라몬 파체코 파르도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교수·브뤼셀자유대학 KF 석좌교수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1일 영국 의회에서 연설했다. 영국 외교부의 초청으로 윤 대통령의 연설을 현장에서 들을 수 있었다. 이 자리에는 영국 상·하원 의장과 전직 총리들, 600여 명의 의원, 고위 인사들이 참석했다. 올해 외국 지도자가 영국 상·하원 합동 연설을 한 것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이어 윤 대통령이 두 번째다.

윤 대통령은 영어로 한 연설에서 올해로 수교 140주년을 맞는 한국과 영국의 관계를 과거·현재·미래 순으로 짚어가며 의미를 부여했다.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정세, 북한 핵 위협 등 지정학적 리스크와 공급망 및 에너지 위기, 디지털 격차 등을 글로벌 현안으로 제시하면서 “세상의 많은 도전에 함께 응전하자”고 호소했다. 또 ‘위대함의 대가는 책임감’이라는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말을 인용해 “국제사회의 자유·평화·번영을 증진하는 데 힘을 모으자”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 영국 의회 연설 주목
‘위대함의 대가는 책임감’ 확인
국가위상에 걸맞은 외교 펼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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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설은 윤 대통령의 국빈 방문의 일환으로, 이는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대관식 이후 외국 지도자의 첫 영국 국빈 방문이었다. 그만큼 영국이 한국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보여준다. 윤 대통령은 국빈 방문 중 찰스 3세 국왕 등 왕가 인사들과 리시 수낵 총리, 런던 시장, 정·재계 인사들을 만나 회담했다. 영국 육군 밴드는 전통적인 근위병 교대식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블랙핑크의 ‘뚜두뚜두’를 연주해 관광객들을 흥겹게 했다. 모든 런던의 중요 인사들이 윤 대통령의 방문을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영국은 왜 윤 대통령과 한국의 정·재계 인사들, 과학·문화계 인사들로 이루어진 대표단에 구애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을까. 이는 오늘날 한국이 세계 지정학과 지경학 측면에서 높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은 특권을 지닌 동반자이다. 유럽의 나머지 국가들도 한국에 대해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다.

지난 22일 한국과 영국이 체결한 다우닝가 합의(Downing Street Accord)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 합의는 인도·태평양 안보에서부터 디지털 전환, 녹색 성장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야에서 실질적으로 한국을 영국의 최고의 파트너로 만들고 있다. 지난 5월 체결된 한·유럽연합(EU) 공동성명이 한국을 EU의 최고 파트너로 만드는 것과 같이, 유럽 국가들은 한국 외교관들과 협력하고, 한국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며, 한국 대학·연구소들과 협력하거나 한국군과 협력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중 경쟁, 시진핑 중국 정부의 증가하는 주장과 경제적 민족주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국의 불투명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이 한국과의 협력에 대한 유럽의 관심을 이끄는 중요한 요인들이다. 유럽이 한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자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에 한·유럽의 협력 강화 움직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이 한국을 특권을 지닌 파트너로 인식하며 한국에는 많은 긍정적 효과가 있다. 한국이 윤석열 정부는 추진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가 되는 걸 용이하게 해준다. 전 세계 많은 국가가 남중국해에서의 중국의 공격적 행동에 대한 대응에서부터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이르기까지 외교정책과 관련해 한국의 입장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투자는 두 팔 벌려 환영받고 있고, 세계 정보기관들은 한국 국가정보원과의 정보 교류를 원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한국이 더는 약소국이 아니라는 걸 의미한다. 한국의 경제적·기술적·외교적·군사적 영향력은 더 이상 국내에 숨기거나 가둘 수 없다. 한국 정부에 이것은 어려운 결정을 내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중국·러시아 또는 다른 나라들이 소외감을 느낄지도 모르며, 조용하고 수동적인 한국을 선호하는 나라들과의 관계를 능숙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걸 뜻한다. 그럼에도 이것은 지불할 가치가 있는 대가이다. 찰스 3세가 윤 대통령의 국빈 방문에서 말했듯 “한국인은 기적을 창조했다”. 다음 단계는 이 기적을 한국이 국제 정세 형성에 참여하는 기반으로 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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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몬 파체코 파르도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교수·브뤼셀자유대학 KF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