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리셋 코리아

여야의 선심성 예산, 총선에서 단죄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경제분과 위원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경제분과 위원

정쟁으로 얼룩진 예산 심의가 올해도 파행이다. 내년 총선을 앞둔 국회는 이 와중에 선거용 사업 예산 챙기기에 분주하다. 내년 예산의 재정 기조를 결정하는 것은 2.8% 지출 증가율이 아니라 92조원 수준의 재정수지 적자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세입 결손으로 빈약해진 재정 여건에도 경기 둔화를 의식해 정부가 무리해가며 코로나 팬데믹급의 확장 기조로 편성한 게 이번 예산안이라는 뜻이다. 대규모 재정적자가 고착화되는 상황에서도 국회가 정략에 치우쳐 심사 과정에서 헌법이 정해준 권한 밖의 예산 증액에 몰두해 먹이를 두고 서로 다투는 ‘포크배럴’(pork barrel, 선심성 예산 쟁탈전)만 반복한다면, 매서운 선거 결과로 심판해야 한다.

내년 92조원 재정수지 적자에도
여야는 선거용 예산 챙기기 분주
시민 집단지성이 엄정 감시해야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국회 심의에서 야당이 단독 의결한 예산 목록은 정부 지출구조 조정과 정반대 사업들로 붐빈다. 정부가 속도 조절 필요에 따라 축소한 특정 지역 공항·도로·철도 사업 예산들이 객관적 검토 없이 심의 과정에서 모두 복구됐다. 당 대표의 트레이드마크 사업인 지역사랑상품권은 경제적 효과 논란에도 부활해 강인한 생명력을 확인했다. 예산이 배로 늘어나는 기현상도 연출됐다. 대표가 미는 선심성 정책인 청년교통패스 예산도 목록에 포함됐다. 현재 청년에게 절실한 위로와 지원이 다른 나라보다 싼 전철 요금을 더 낮추는 것이란 생각은 시대착오적 판단이다. 중장년 국민과의 형평성이 문제 되자 일반국민용 교통패스에도 지체 없이 예산을 넣어주는 모습은 절망감까지 든다.

우리가 쓰는 교통 요금을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에 불과한데, 정치적 배려의 결과라는 생색 앞에선 쓴웃음만 나온다. 이런 식이라면 아예 세금 없애고 그 돈으로 각자 요금 계산하면 그만이다. 국회 예산심의권이 야당 주도로 도깨비방망이로 둔갑하고 있다. 두드릴 때마다 뒷감당 못 하는 현금과 선물을 국민에게 안겨줄 태세다. 엄정한 심사를 통해 예산 투입 필요성과 우선순위를 따져야 할 국회가 자신의 임무를 져버린 채 정부에 지출 확대를 요구하는 아이러니에 현기증마저 난다.

여당도 뒤질세라 재원 대책 없는 실효성 부족한 사업을 성급히 꺼내 든다. 청년을 위해 2%대 파격적인 장기주택대출 상품을 마련한 것이 대표적이다. 대출 걱정 말고 결혼하고 아이 낳아 기르라는 취지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저출산과 비혼 현상이 시중 금리보다 낮은 저금리 대출로 해결될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아직도 모르는 것 같아 우려된다. 정책의 실질적 범위가 청약 당첨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수도권 외곽 중소형 아파트로 제한돼 다수 청년층에게는 크게 효과가 없다는 한계도 있다. 소득이 부족한 계층에게 빚을 내 가격이 급등한 아파트 구매를 장려하는 정책이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판박이 같아, 한껏 고조된 가계부채 위기의 뇌관을 건드리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여야 구분 없는 예산 경쟁 선거전의 하이라이트는 대규모 재정사업의 편익과 비용을 따지는 예비타당성 제도를 사문화시키는 지역 SOC 사업이다. 예산안에 충남과 경남 지역 공항 사업이 충분한 검토 없이 이미 들어가 있다. 느닷없이 나타난 지하철 5호선 김포 연장사업 예비타당성 면제는 예외적인 여야 합의로 지난 8월 국회의원 261명이 공동 발의한 대구·광주고속철특별법에 비하면 약과다. 헌정 사상 최다 의원이 서명한 법안은 곧 졸속임이 드러났다. 고속화 일반철도 계획 변경으로 편도 3분의 시간만 더 들이면 3조원 예산이 절약된다는 사실에서 예비타당성 제도의 중요성만 새삼 일깨웠기 때문이다. 8년 전 확장을 끝낸 광주~대구 고속도로가 통행량이 적어 아직 한산한데 지역 화합 명분에 치우쳐 11조원 예산 투입을 섣불리 제안한 지금의 국회를 과연 선거에서 다시 뽑아주어야 할지 심각히 고민하게 만든 게 유일한 성과로 보일 뿐이다.

재정 의회주의 정신을 모독하고 자신을 부정하는 국회는 디지털시대 정보화로 무장한 시민 집단지성에 의해 총선에서 단죄될 것으로 믿는다. 국민의 피땀 어린 세금을 한 방울 낭비 없이 공공 이익만을 우선해 엄정하고 투명하게 쓰이도록 감시하는 의회 본연의 역할이 선거에서 납세자 신뢰를 얻는 최선의 방법임을 깨닫길 바란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경제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