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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성탁의 시선

변별력 높지만 사교육 잡기 역부족인 올 수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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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성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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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시 국어 풀다 ‘멘붕’ 왔는데 2교시 수학, 3교시 영어까지 어려운 '불수능'이다." 2024학년도 대입 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수험생들이 인터넷 카페 등에서 보였던 반응이다. 다음 달 8일 실제 수능 성적표가 나오면 정확해지겠지만, 수능 만점자를 찾기 어려운 가채점 결과를 보면 이런 반응이 실제일 가능성이 크다.

 올 수능은 윤석열 대통령의 ‘킬러 문항’ 배제 방침에 맞춰 출제됐다. 교육 당국이 그런 문항의 포함 여부를 점검했다. 킬러 문항은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어려운 지문 등을 쓰기 때문에 사교육에서 기술을 익히고 반복 훈련한 학생에게 유리하다는 지적을 받았었다. 킬러 문항 배제의 목표가 사교육 경감이었던 셈이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에 수험생들이 수능 시작 전 마무리 공부를 하고 있다. 뉴스1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에 수험생들이 수능 시작 전 마무리 공부를 하고 있다. 뉴스1

 실제로 수능 국어의 경우, 과학 관련 지식이 필요한 문제 등 킬러 문항이 사라졌다. 그렇지만 가채점 결과, 원점수 기준 지난해 90점대였던 1등급 커트라인이 80점대로 내려갈 것으로 예측될 정도로 어려웠다. 물론 고난도 수능 국어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국어 과목이 쉬우면 통상 고득점이 어려운 수학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커진다. 대학이 정시모집에서 주로 반영하는 표준점수의 경우, 국어가 쉬우면 원점수를 잘 받더라도 수학보다 표준점수가 낮은 경우가 발생한다. 이번 수능에선 수학도 어렵게 출제됐는데, 지난 9월 모의평가에서 수학 만점자가 2520명이나 나온 문제점을 보완하려고 조절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올해는 국어와 수학이 모두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실채점 결과가 가채점 경향과 비슷할 경우 올 수능은 상위권 변별력이 매우 뛰어난 시험이 된다. 국어·수학으로 최상위부터 촘촘하게 일렬로 세우는 효과가 커진다. 여기에 더해 이번 수능에선 절대평가인 영어에서도 1등급 비율이 지난해 수능보다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측됐다. 영어도 줄 세우기에 가세하는 셈이다.

킬러문항 뺐지만 국·수·영 어려워
과탐 과목 유불리 격차도 그대로
복잡한 대입에 단순 접근이 잘못

 하지만 정부가 킬러 문항 배제의 목적으로 내세웠던 사교육비 절감에는 역효과를 낼 소지가 크다. 국어의 경우 과거 킬러 문항이 주로 등장했던 비문학만 쉬웠을 뿐, 문법과 문학 등 나머지 분야의 문항은 모두 어려웠다. 수험생들 사이에선 "지문에 어려운 킬러 문항이 있을 경우 아예 젖혀두고 다른 문제에서 고득점을 노릴 수 있었는데, 이번 수능은 선지까지 헷갈리게 내 시험 시간 안에 문제를 푸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는 반응이 많다. 사교육 업체들은 문법과 문학, 독서가 다 어려운 국어에 대비하려면 학교 교육만으로 되겠느냐고 광고할 것이다.

 수학에서도 가채점 결과 22번 문항의 정답률이 한 자릿수에 그칠 정도로 어려워 사실상 킬러 문항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수학은 안 그래도 사교육 1순위 과목인데, 여기에 영어까지 더해질 소지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과도하게 영어 사교육에 집착하는 것을 막으려고 절대평가로 바꾼 게 수능 영어다. 절대평가는 다른 수험생보다 잘 봤는지와 상관없이 90점 이상이면 1등급을 받는다. 그런데 이번 수능에선 상위권 중에서도 2등급이 속출했다. 독해력이 뛰어나야 소화할 수 있는 영어 지문이 많았고, 선지도 헷갈리게 냈다. 이러면 수능 영어를 고려해 사교육에 눈을 돌려야 하는지 고민하는 학부모가 늘 수 있다.

 내년에 의대 정원이 늘어날 예정인 점도 사교육비 증가를 부추길 요인으로 꼽힌다. 의대 재도전을 위해 재수·반수생이 쏟아질 텐데, 서울 대치동 재수종합반에 다니려면 1년에 1000만원 이상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학원들은 대학 수업을 듣고 난 저녁에 재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사상 최초로 야간반 재수 과정까지 이미 내놓았다. 결국 킬러 문항 배제는 사교육비를 줄이려는 목적에서 출발했지만, 빛이 바랠 개연성이 커졌다.

 또한 이번 수능 가채점에 따르면 과탐2 과목의 표준점수 최고점이 과탐1에 비해 10점가량 높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지구과학1 만점자보다 지구과학2 만점자가 14점이나 더 받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실채점에서도 마찬가지라면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반수생 유입 등 변수 예측을 잘못해 과목별 유불리 잡기에 실패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여파로 서울대 자연계 등은 과탐2 고득점자가 휩쓸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복잡한 함수가 작동하는 수능을 놓고 정부가 킬러 문항 배제처럼 1차원적으로 접근한 것 자체가 무리였다. 관련자들이 문책 당하는 것을 보고 킬러 문항 배제만 신경 쓰고 정작 사교육 절감이라는 목표는 흐릿해졌던 건 아닌가. 교육 당국은 수능의 기능과 과목 간 유불리 해소 방안 등 근본적인 고민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