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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예영준의 시시각각

SF 한·중 회담 불발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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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예영준 중앙SUNDAY 편집국장

예영준 중앙SUNDAY 편집국장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이 불발됐다. 아니, 불발이란 표현은 이 경우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회담 약속 없이 아시아·태평양경제공동체(APEC) 정상회의 장소인 샌프란시스코로 향한 것이었기에, ‘예정대로’ 만나지 않고 돌아왔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윤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단독회담은 물론 스탠퍼드대 좌담회 등으로 밀월을 과시한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한국 담당·통역 안 데려간 시진핑
한국 의도 읽고서 ‘길들이기’ 전술
당당하지만 정교한 대중 전략 필요

윤 대통령은 시 주석을 안 만난 것일까, 못 만난 것일까. 현지에서 대통령실 관계자가 APEC 막판까지 “논의 중”이라고 밝혔 듯, 우리 정부는 회담을 희망했는데 중국이 호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APEC 개최국인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논외로 하더라도 시 주석은 기시다 총리와는 정식 회담을 했다. 그뿐 아니라 브루나이·페루·멕시코·피지 등과도 회담했다. 알고 보니 중국 외교부는 한국을 전담하는 담당자나 한국어 통역을 샌프란시스코에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부터 회담할 의사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사실 그간의 흐름도 나쁘지 않았다. 한국은 지난 9월 축하 사절로는 최고위급이라 할 수 있는 한덕수 총리를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에 보내 성의를 표시했고, 시 주석은 단독 접견으로 화답했다. 그런데 이번엔 윤 대통령과의 만남을 기피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뭔가 중대한 현안이나 말 못할 사정이라도 생긴 것일까. 사정을 알 만한 소식통들에 여기저기 물어봤지만 딱히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꼭 만나야 할 만큼 현안이 없어서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답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제 중국에 한국은 만나도 그만, 안 만나도 그만인 존재가 된 것일까. 중국 외교의 우선순위에서 한국이 밀려난 결과로 보는 것은 단견이다. 중국이 한국에 그렇듯, 중국에 한국은 여전히 중요한 나라다.

결국 이유는 중국의 ‘길들이기’ 전술로 좁혀진다. 중국 외교에서 그리 생소한 전법이 아니다. 이번 샌프란시스코에서처럼 특정 국가를 ‘패싱’하기도 하고, 국제 관행에 어긋나는 보복조치를 하기도 한다. 미국과의 동맹을 다지고 한·일 관계를 복원하는 데 성과를 냈다고 자신한 윤 정부의 다음 수순이 한·중 관계의 재정립과 안정화란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 의도를 꿰뚫고 있는 중국이 정상회담이란 큰 카드를 손에 쥐고 ‘밀당(밀고 당기기)’을 시도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회담이 성사됐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불발됐다고 해서 초조해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회담을 희망한 건 맞지만 목을 맬 정도로 연연해 하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의 회담 불발은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그러려면 더 정교하게 대중 전략을 짜야 한다. 저자세 외교가 다시 있어선 안 되지만 불필요하게 상대를 자극하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 외신 회견 때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설적인 표현으로 남중국해나 대만 문제를 언급하는 건 득책이 아니다. 그건 중국에 당당한 외교를 펼치는 것과 별개의 문제다. 중국 외교부는 엊그제 영국 텔레그래프가 보도한 윤 대통령 대만 관련 발언을 문제 삼아 비판했다. 그런 일이 쌓이면 우리가 바라는 방향으로 한·중 관계를 끌고 나갈 수 없게 된다. 중국은 “독재자” 소리를 듣고도 참을 땐 참지만,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는 반드시 기록해 두는 나라다. 대중(對中) 발언에도 굿캅, 배드캅의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때마침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한·일·중 외교장관 회의 참석차 주말 부산에 온다. 박진 외교장관과의 양자회담도 열린다고 한다. 왕 부장의 방한은 지난해 12월 날짜까지 잡았다가 취소된 적이 있다. 어렵사리 성사된 회담인 만큼 정교한 전략으로 임해 다음 수순으로 이어나가기를 바란다. 한번 놓친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 법이고, 한번 잘못 맺은 관계는 바로잡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