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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북한의 스타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홈팀 중국의 압도적인 강세 속에 막을 내린 올 북경 아시아드는 그 동안 베일에 가려있던 북한스포츠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 아시아 스포츠계의 빅 이벤트였다.
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이후 8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북한이 북경대회에서 거둔 메달 수는 금12·은31·동39개. 당초 예상(금25개)에는 크게 못 미쳤으나 우승한 중국을 비롯, 한국·일본에 이어 종합4위를 마크함으로써「극동아시아 4강」의 위세를 떨칠 수 있었다
반면 한국은 금54·은54·동73개로 준우승을 차지.
그러나 북한은 전통적 강세종목이라 할 사격·체조·탁구 등에서 여전히 한국을 압도하는 저력을 보였고 유도·양궁 등에서도 경기력이 몰라보게 향상돼 한국에 큰 위협을 주었음은 특기할 만했다.
북한이 따낸 금12개를 종목별로 보면 사격이 7개로 가장 많고 체조 2, 레슬링·역도·유도 각1개의 순 이었다.
복싱은 경기장 소요사태와 관련, 출전 금지 당해「노 메달」에 그쳤고 구기종목에선 유일하게 축구가 준우승한 게 최고의 성과였다. 결국 금메달의 편향현상은 북경대회를 통해 드러난 북한스포츠의 한계인 셈이다.
그런 가운데 괄목할 만한 경기력으로 각광받은 북한 스포츠 스타들 중엔 남자유도 황재길(31)이 단연 으뜸으로 손꼽힌다.
1m97㎝·1백40㎏의 거구인 황은 북경대회 남자 무제한급에 출전, 당당히 금메달을 거머쥠으로써 북한유도의 성가를 떨쳤다. 황은 특히 결승에서 일본유도의 자존심이라 할 오가와(소천직야)를 맞아 파워 넘친 「힘의 유도」를 구사하며 통쾌한 한판 승을 장식, 일본 유도의 콧대를 여지없이 꺾어버리는 대 기염을 토했다.
한국의 김건수(쌍용양회)는 3위에 머물렀다.
황은 이에 앞선 85년 고베 유니버시아드(일본)에서도 한국의 조용철, 일본의 마사키(정목)를 거푸 물리치고 우승, 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인 스타로 각광 받았었다.
장사의 고장이기도한 평안남도 남포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기골이 장대한데다 힘이 출중해 12세 때인 지난 71년 유도에 입문, 남포고등중학교 →평양 체육대를 차례로 거치면서 북한유도의 간판스타로 부동의 위치를 굳히게 됐다.
황은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 내년부터는 지도원으로 활약한다.
이밖에 북경대회 금 메달리스트인 레슬링 자유형의 김영식(21), 역도75㎏급의 전철호(21) 등도 손꼽히는 스타들. 김영식은 89스위스 세계 선수권대회 우승으로, 전철호는 89그리스 세계선수권대회 준우승(용상)으로 각각 황재길과 같이 공훈체육인의 영예를 누렸다.
세계선수권, 또는 아시안게임 우승선수에게 주어지는 공훈체육인은 최고의 영예라 할 인민체육인 다음으로 북한 체육계에서 후한 대접을 받는 게 통례. 이들에겐 체육인아파트 등 부와 명예가 한꺼번에 제공된다.
북한의 금메달 밭(금7) 몫을 톡톡히 해낸 사격의 배원국(22·트랩) 노철식(25·러닝타깃)도 빼놓을 수 없는 북녘의 히어로다.
배원국은 89사회주의국가 친선대회(평양)에서 우승한데 이어 북경대회에서도 2백17점으로 금메달을 차지, 트랩부문 아시아 최고의 명사수로 떠올랐고 노철식 또한 러닝타깃에서 6백60점으로 우승해 관록의 사수임을 과시했다.
구기 분야에선 89스웨덴 오픈 남자단식 우승자인 탁구 이근상(24)이 세계 최고수준의 기량을 빛냈다.
수비 일변도의 평범한 커트선수였던 이근상은 지난해 12월 스웨덴오픈에서 단체전·개인전을 석권, 수비와 공격의 성공적인 접목을 완성시킨 모델케이스로 손꼽힌다.
이근상은 90년 평양오픈우승을 비롯, 90월드 올스타 서키트에서 매번 세계 랭킹1위인 스웨덴의 발드너와 결승에서 패권을 다투는 세계적인 강호로 자리를 굳혔다.
여자선수로서는 탁구의 89년도 세계 랭킹3위 이분희(21)가 퇴조의 기미를 보인 대신 체조의 김광숙(15)이 높이 치솟았다.
김광숙은 북경대회 여자단체전 은메달과 함께 여자개인종합에서도 당당히 3위에 입상, 중국에 대적할 유일한 아시아선수임을 입증했다. 1m29㎝·40㎏의 김은 이미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서독)에서 개인종합 14위를 마크, 일약 세계적인 신예로 떠올랐었다.
당시 한국의 박지숙(전북체고)은 71위.
또 사격 여자 자유권총의 전은주(20), 스키트의 박정란(24)등도 떠오르는 샛별로 전은주는 여자 소구경스탠더드 소총복사단체우승(1천7백22점)의 견인차로 크게 활약했고 박정란은 스키트에서 1백97점을 쏘아 금메달을 차지, 북한 사격의 위세를 떨쳤다.
반면 여자 마라톤의 문경애(21)는 아시아 최고수준의 기록(2시간27분16초)을 갖고 있으나 북경에선 일본·중국 및 한국 이미옥(수자원공사)에게 뒤져 4위라는 충격적 참패를 맛보았다.
한편 북경대회에서 세계정상 한국양궁에 도전한 북한의 김정화가 무서운 신인으로 등장, 돌풍을 일으켰다.
한국 양궁의 혀를 찌른 김정화는 막판 부진으로 비록 4위에 머물렀으나 결승중반까지 한국을 압도하는 놀라운 기량을 보였다. 1m66㎝·68㎏의 무명 김은 마지막 3발이 남을 때까지 김수녕 이은경 이장미 등을 모조리 꺾고 선두를 차지, 한국을 위협하는 새로운 명궁으로 탄생한 것이다. <전용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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