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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승우의 미래의학

대형병원이 가야 할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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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박승우 성균관 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원장

박승우 성균관 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원장

최근 언론에서 지방 환자들의 상경 치료에 대한 보도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최근 5년간 암 환자 103만 명이 서울 대형병원에서 치료받는 등 암 환자의 절반이 서울로 집중되고 있다. 해당 병원 인근에 장기치료 환자가 숙식을 해결하는 환자방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이 같은 환자 쏠림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안은 없을까. 의대 정원 확대와 더불어 공백없는 필수의료 혜택을 위한 지방의대 정원 확대 및 지역완결형 의료 체계가 논의되고 있다. 동일 시·도내 진료 의뢰와 회송을 유도하기 위해 수가를 개편한다고 하며, 상급종합병원 평가에서도 실적을 반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환자들 서울 집중 꼭 해결해야
지역 의료 인프라 확충 필연적
대형병원의 새로운 역할 중요
중증질환, 임상연구 집중해야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지역 의료 인프라 확충은 응급환자와 일반적인 질환 치료를 위해서는 필수적인 기본 요건 임은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새 제도가 얼마나 필수 의료인력 확보를 보장해 줄 것인지, 또한 지역완결형 의료체계가 얼마나 지방 거주민에게 받아들여질 것인지 여전히 의문이 남는 상황이다.

필자 역시 몇 시간씩 기차나 비행기를 타고 찾아오는 지방 환자분을 진료할 때마다 “이제는 집중 치료 단계가 지나서 잘 관리되고 있으니 다음부터는 집에서 가까운 병원으로 가시라”고 회송을 권해드린다. 하지만 환자분들은 손사래 치며 계속 서울에 올라와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한다. 그들의 불안감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 난감할 뿐이다.

서울로 환자가 쏠리는 원인 중 하나로 고속철도 개통이 꼽힌다. 전 국토를 일일생활권으로 만들어 의료뿐 아니라 쇼핑, 문화 활동 등 여러 분야에서 서울로 집중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한다. 전 국토의 고른 발전을 도모하고자 교통망을 확장하지만 결국 핵심 지역으로 쏠림이 가속화되는 것은 세계 각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잇따른 환자 쏠림 보도로 인해 마치 서울의 이른바 빅5 병원이 지방 환자들을 적극적으로 유인하려 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도 있다. 이는 실제와 다르다. 정작 이들 병원은 오히려 경증 환자들이나 지속 관리가 필요한 환자들을 가까운 지역병원을 이용하도록 회송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도리어 이러한 보도 때문에 지방에서 잘 치료받던 환자들까지 ‘나도 서울로 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늘어나 더 서울로 모여들지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현재의 서울 집중 현상은 비록 시간과 비용이 더 들더라도 최고의 효과를 누리려는 인간의 심리와 닿아 있다. 생명이 달린 중증 환자일수록 경제적 여건이 되는 한 최고의 실력을 갖춘 의사에게 치료받고자 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소망일 수밖에 없다.

앞으로 전국의 의료 인프라를 골고루 발전시켜 거주 지역 내 병원에서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제공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지역 의료기관에서 치료 가능한 환자까지 서울로 집중되지 않도록 가장 합리적으로 환자 분산이 가능한 방법이 무엇인지 우리 사회가 더 많은 고민과 토의가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이미 시작된 의료정책 변화 속에서 앞으로 서울의 빅5 병원을 비롯한 대형병원의 역할을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지는 오롯이 해당 병원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이에 필자는 다음과 같이 3가지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최고난도 중증 환자에 대한 집중치료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양성자, 중입자 치료기 등 최첨단 고가 장비를 지역마다 다 설치할 순 없으니 가장 심각한 상태의 중증환자를 위한 최종 치료는 여전히 대형병원이 맡아야 할 것이다.

둘째, 희귀 질환에 대한 치료를 더욱 집중해야 한다. 전국에 수십, 수백 명밖에 없는 희귀질환은 진단도 어렵고 치료도 쉽지 않다. 성공적인 진료를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환자 경험이 많은 전문가들의 유기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이런 역할을 담당할 여건이 되는 병원은 환자들이 많이 몰리는 일부 대형병원일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첨단 임상 연구에 더욱 집중해 새로운 치료법이나 신약 개발 및 그 효과 입증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국내 바이오산업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따라서 연구중심병원의 역할을 더욱 고도화해 갈 수 있도록 정책 당국과 함께 고민해 나가야 한다.

이번 변화 방향이 국민 건강을 위한 지역 간 고른 발전은 물론 우리나라가 미래 의학의 선두주자로 나갈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모아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박승우 성균관 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