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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김연아' 피아비 "한국, 뭐든 가능한 기회의 땅" [인구 절벽 시대, 다문화가 미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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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4호 09면

SPECIAL REPORT 

피아비는 “기회의 땅인 한국이기에, 다문화 인재의 활약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최기웅 기자

피아비는 “기회의 땅인 한국이기에, 다문화 인재의 활약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최기웅 기자

“당구도 유튜브로 배울 수 있는 곳이 한국이다.”

당구여제 스롱 피아비 선수(33·블루원리조트)가 10년간 한국에 거주한 소회를 전했다. 피아비는 “한국만큼 다 있는 곳이 없고, 그래서 안 하면 나만 손해”라며 “재능을 찾고 기회를 거머쥘 수 있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캄보디아 출신인 그녀는 13년 전 남편 김만식 씨를 따라 한국에 발을 디뎠다. 남편 권유로 딱 한 번 큐를 잡은 게 지금의 피아비 선수를 만들었다. 10년 새 무서운 속도로 실력이 붙더니 여자 프로당구(LPBA) 최초 6번 우승기록을 세우며 국내 여자당구계에 실력자로 이름을 올렸다. 당구 인재인 그녀가 본 한국 다문화사회는 어떨까. 지난달 25일 경기도의 한 연습장에서 그녀를 만나 물었다.

‘안 하면 손해’라는 건 무슨 의미인가.
“한국엔 다 있다. 10년 만에 캄보디아에 갔는데 ‘왜 공부 안 하지’ 싶더라. 알고 봤더니 방법을 몰라서 못 하는 거였다. 지금은 고향에 가면 학습법이나 인터넷 사용법 등을 알려준다. 나도 한때 의사를 꿈꿨지만 가정형편이 안 돼 꿈을 접어야 했다. 어쩌면 어떻게 도전해야 할지 몰랐던 것일 수도 있다. 한국의 다문화학생들은 뭐든 할 수 있단 얘기다. 할 마음만 있다면.”

자기 자신에게 못 이겨 환경 탓 많아

다문화학생 엄마들과 친하다 들었다.
“다문화학생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면서 엄마들과 주로 얘기하다보니 친해지게 됐다. 사실 친구 중에도 결혼이주여성이 많다. 안타까운 건 이혼 가정이 꽤 많다. 대부분 친권은 한국 친부가 가져가고 엄마는 아이에게 외국인으로 잊혀져 간다. 경제적 부양을 위해 부모가 맞벌이를 하는 경우는 또 다르다. 아이들이 방치된다. 다문화가정이라 더 특별한 상황이라 할 수 없지만, 다문화 학생에겐 언어장벽에 타국 생활이라는 과제가 더해지기 때문에 세심한 교육이 필요한 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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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교육이 필요하다고 보나.
“가정에서의 교육이 먼저다. 그러려면 부모가 먼저 배워야 한다. 아이들이 보는 무대는 부모다. 부모가 한국어를 배워 가르쳐주고, 설사 모르더라도 배우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도 공부 습관을 가지게 된다. 특히 한국어 수업은 필요성을 너무 느낀다. 나도 한국어가 서툴러 한국어센터에서 배우고 있다. 10시간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확실히 1시간 수업 듣는 게 더 많이 배운다. 다문화 가정 부모도 공부해야 하고, 그런 기회가 많다면 더 좋다.”

피아비는 다문화학생과 가정에 기부와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국내 다문화가정을 초청해 한인 친선 당구대회를 열거나, 고향인 캄보디아 학생의 교육권 보장을 위해 학교 건설에도 기부하며 힘쓰고 있다. 피아비는 “솔직히 공부를 안 하거나 편하게 하려는 친구도 있다”고 쓴소리도 서슴지 않았다. 그녀는 “한국이 다문화인을 안 도와준다고 하는데, 자기 자신에게 못 이겨 환경 탓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물어야 한다”며 “한국은 노력만 하면 기회는 열려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차별적 시선은 그래도 존재한다.
“당연하다. 나도 지나다닐 때 ‘까맣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라에서 도와준 거 아니냐’는 모진 말들도 들었다. 하지만 실력을 인정받으면 진가로 판단하게 돼 있다. 다문화학생에겐 되레 이런 점이 실력을 키우는 동기부여가 돼 더 강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다문화사회다. 내게 한국과 캄보디아는 모두 내 고향이자 부모다. 내가 실력을 인정받으면 양국을 빛낼 수 있다는 그런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한국 문화에 적응이 어려운 친구들도 있다.
“문화를 따르냐, 안 따르냐로 굳이 나눌 필요는 없다. 소속 사회에서 어기지 말아야 할 예의나 사회규범을 지키면서 그 문화에 어울리면 된다. 그래서 ‘적응한다’는 말도 맞지 않다. 한쪽에 무조건 흡수되는 게 아닌 고국과 한국의 좋은 문화를 배우면 된다. 나는 아직 한국문화에서 배울 게 많지만 한 80%는 익힌 거 같다.(웃음)”
피아비는 캄보디아 학생을 위한 현지 봉사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사진 피아비]

피아비는 캄보디아 학생을 위한 현지 봉사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사진 피아비]

교육부가 최근 이주배경학생 교육정책 방향을 ‘적응’에서 ‘인재 양성’으로 바꾼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피아비 선수는 “인재가 되는 첫 시작은 자기가 무엇을 잘하는지 아는 것이고, 그래서 다문화 학생에게도 재능을 알아보고 도전할 기회가 많았으면 한다”면서 “한국에서 글로벌 인재가 많이 배출된다면 결국 국가 발전에도 이득 아닌가”라고 강조했다. 이에 피아비는 다문화 자선당구 아카데미를 개최해 직접 재능기부를 하고,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 월드휴먼브리지 홍보대사 활동수익금을 다문화학교 당구부 창설에 기부하기도 했다.

감정 속이기보다 있는 그대로 자신감

다문화 학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스포츠는 본인이 대표다. 실패든 성공이든 내가 한 전부가 결국 내 스포츠 인생이고, 그 과정과 결과는 모두 내 몫이다. 지금의 과정과 결과는 자신만이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환경을 떠나 내가 주인공인 인생을 멋있게 살았으면 한다. 또 주변에 많은 사랑을 나눠주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소소한 바램이라면 당구 스포츠를 하는 다문화 친구들이 많아졌음 한다.(웃음)”

피아비 선수는 지난주 LPBA 최다인 7번째 우승에 도전했으나 아쉽게 고배를 들었다. 피아비는 “실패해도, 넘어져도 괜찮다”며 “감정을 속이기보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격려하되, 그때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성장하는 기회로 새겨 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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