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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또 선거용 공매도 금지…솜방망이 처벌부터 고쳐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이렇다 할 금융시장 위기도 아닌데 또 금지 카드

국제 투자자 불신 초래…처벌 강화 등은 검토해야

정부와 여당이 어제(5일) 비공개 고위 당정협의회를 갖고 내년 상반기까지 주식 공매도를 중단하기로 했다. 최근 HSBC 등 홍콩 소재 글로벌 투자은행(IB) 2곳의 불법 공매도가 적발되면서 개인투자자를 중심으로 공매도 금지를 요구하는 여론이 들끓은 데 따른 조치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공매도가 거대 자본보다 개인투자자들에게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불만이 줄곧 제기돼 온 만큼 시스템 보완이 이뤄지기 전까지 공매도 중단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단순히 증시 신뢰 회복이나 공정성 확보 차원이 아니라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개인투자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거전략으로 활용하려는 게 아니냐는 세간의 의혹을 부인하긴 어렵다. 여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김포(서울 편입) 다음 공매도로 포커싱하려고 한다”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에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개인투자자의 눈치를 보며 당초 약속과 달리 공매도 금지를 두 차례나 연장했던 전례가 있다. 특히 이번엔 팬데믹이나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증시에 큰 충격을 주는 대형 악재가 없는데도 공매도를 다시 금지하는 것이라 여러모로 우려스럽다.

공매도는 특정 기업의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투자 방식이다. 이번에 적발된 외국계 IB의 불법 무차입 공매도 같은 문제점도 있지만 자본시장 전체적으로 보면 순기능이 더 크다. 특히 실적이 과대 평가된 기업이나 부실 기업의 주가 거품에 경고 신호를 주고, 주가조작 세력의 시세조종을 억제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코로나19로 주식시장에 위기가 닥친 2020년 3월 이후 1년2개월간 전면 금지했던 공매도를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에도 일부 재개한 것도 이런 이유였다.

한국은 현재 코스피200과 코스닥150 종목에만 공매도를 허용하고 있지만, 국내 증시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지수 편입 등을 위해서는 공매도 전면 허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MSCI가 지수 편입 요건으로 공매도 전면 재개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명확한 근거 없이 오히려 공매도 금지 카드를 꺼내듦으로써 한국 증시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기왕 공매도 금지에 나선 만큼 공매도 관련 불법행위를 근절할 수 있는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 금지 기간을 최소화해야 한다. 개인투자자보다 기관과 외국인에게 유리한 상환 기간이나 담보 비율 등을 개선하는 등 제도적 허점을 보완하는 게 우선이다. 또한 과징금·과태료 등에 그치는 불법 공매도 처벌을 대폭 강화할 필요도 있다. 불법 공매도 세력에 대해선 이익 환수는 물론 강력한 형사처벌까지 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