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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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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황주리 화가

황주리 화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오래전에 본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명대사로 남은 질문이다. 한 사람의 실연을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 속의 한마디가 깊어가는 가을 길을 걷다가 문득 떠올랐다.

높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아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유치환 ‘깃발’) 열다섯 나이에 외웠던 오래된 시 구절이 갑자기 떠오르기도 한다. 소멸해 버린 세월의 무상함을 향해 어떻게 그렇게 도망가느냐고 묻고 싶은 걸까.

사랑의 뒤끝에 찾아오는 실연
연습이 불가능한 상실의 아픔
가을에 떠올린 젊은 날의 질문

그림=황주리

그림=황주리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그런 질문을 해보지 않고 젊음을 지나온 사람이 있을까. 동네 고등학교에서 나지막이 들려오던, 누군가 아주 고독한 사춘기 소년이 연주하는 것 같은 한숨 섞인 관악기 소리가 떠오른다. 사진을 찍다가 문득 자신의 긴 그림자를 찍어본 적이 있는가. 그 긴 그림자가 나 자신의 일부라는 걸 우리는 잊고 산다.

하루키의 소설에서처럼 자신의 그림자를 만나는 일은 어떤 기분일까. 그는 자기 그림자를 인간으로서 져야 할 책임 같은 거라고 말한다. 엉뚱하지만 내게 그림자는 평생 그려온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이 들면서 나는 죽은 뒤를 상상하는 버릇이 생겼다.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부모 곁에 딱 들러붙어 사는 니트족의 숫자가 팔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자식이 없는 나는 잠시 가슴이 홀가분해진다. 두고 가기엔 눈도 감지 못할 내 무거운 그림자는 바로 그림이다.

60대 여성의 우울증이 가장 많다는 통계를 깨고 20대 여성의 우울증이 가장 많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통계가 일반화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몰랐을 뿐, 남녀를 불문하고 사실 20대, 아니 요즘은 10대의 우울증이 제일 많을지 모른다. 가장 예민한 감수성으로 상실의 시작을 경험하는 나이, 그 상실에 대한 슬픔은 아무리 연습을 해도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다. 몇 번의 실연,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 등 치유할 수 없을 것 같은 상실을 경험하면서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하는 젊은 날의 외로운 질문은 ‘인생이 어떻게 끝이 나니? 하는 막막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결국 그 모든 상실의 경험은 자기 자신과의 이별 앞에 서게 될 불안에 관한 공부와 연습인 것이다. 젊은 날의 사랑은 사랑이라 불리기엔 너무 가볍다. 누가 그랬을까? 연애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정신질환이라고. 세월이 흐를수록 보존이 잘된 농익은 와인 같은 사랑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중년 이후의 시간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빠르게 흘러간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 많은 허송세월은 안 했으리라. 하지만 허송세월이 아닌 인생의 시간이 있었을까. 시간의 정체가 바로 허송세월이다. 서른 살에 뉴욕 유학을 간 나는 사람들로부터 결혼을 왜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별로 안 하고 싶어서라고 답하곤 했다. 그 대답에 버럭 화를 내며 건방지다고 말했던 어떤 분이 생각난다.

어쩌면 나의 대답이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결혼생활에 위협이 된다고 느낀 건 아닐까, 요즘 나는 생각한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사람들의 무례함에는 이유도 없다. 40여 년 전 결혼 적령기의 고독한 시간에 다들 선을 보거나 연애를 해서 결혼을 했고, 그 중의 적지 않은 수가 이혼을 했다. 대부분 우리 세대의 결혼은 삶의 중요한 선택이라기보다는 안 하면 실패한 인생의 시작으로 각인된, 남들의 눈의 강압에 의한 필수 과제였다.

그 시절의 시답잖은 한두 번의 연애 끝에 어쩌다 본 맞선에서, 나 자신도 결혼을 작심한 적이 있었다는 기억이 아주 오랜만에 갑자기 떠오른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신기할 정도로 너무 다른 상대를 만나 서로가 좋아했다고 생각했다. 무슨 이유였을까? 결혼설이 익어가던 스물네 살의 유난히 추운 겨울, 나는 갑자기 이별 통고를 받았다. 그때 내 마음 안에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뭐 그런 절절한 질문이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이유는 지금도 알 수 없고, 다음 해인가 그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어느 이른 봄날, 명동의 어느 경양식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여전히 우울한 내게 맥주 한 잔을 따라주던 오십 초반의 어머니는 “너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야. 결혼을 안 해도 행복한 사람, 아마 미래에는 그런 사람이 많아질 거다”라고 하셨다.

세월이 흘러 어머니의 예언은 맞아떨어졌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전히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흘러간다. 지금은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 그 시절 내게 상실의 아픔을 남겨준 상대에게 나는 가끔 고마움을 느낀다. 오늘의 내가 온전한 나로 살게 해준 멋진 우리 어머니의 92세 생일을 축하하며.

황주리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