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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이·팔 중재’ 패키지 지원 약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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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 간의 확전 우려가 최고조에 달한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이날 오전 전용기 편으로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에 도착한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471명(가자지구 보건부 발표)이 사망한 가자시티 알아흘리 병원 폭발 참사로 끓어오르는 중동 국가들의 분노를 직면해야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도착 직후 공항 활주로까지 영접 나온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만나 포옹을 나눴다. 그는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회담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했다.

지난 1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알아흘리 병원 폭발로 다친 시민들이 긴급 후송된 알시파 병원에 있다.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무장 정파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폭발이 일어났다고 주장했고, 이스라엘은 다른 무장단체인 이슬라믹 지하드의 소행이라고 반박했다. [AP=연합뉴스]

지난 1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알아흘리 병원 폭발로 다친 시민들이 긴급 후송된 알시파 병원에 있다.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무장 정파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폭발이 일어났다고 주장했고, 이스라엘은 다른 무장단체인 이슬라믹 지하드의 소행이라고 반박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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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전날 병원 폭발 참사의 배후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이날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그는 기자들을 만나 “(팔레스타인의 또 다른 무장단체인) 이슬라믹 지하드의 미사일 오발이 병원 폭발의 원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며 “이는 미 국방부가 나에게 보고한 자료에 근거한 것”이라고 답했다. 반면에 하마스를 포함한 중동 국가들은 일제히 이스라엘군 공습에 의한 “명백한 전쟁범죄”라고 규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회담 후 별도의 연설에서 이스라엘, 하마스, 다른 중동 국가에 각각 맞춤형 메시지를 던졌다. 이스라엘엔 “미국은 이스라엘 방어를 위해 의회에 전례 없는 수준의 지원 패키지 제공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미국 재무부는 이날 하마스와 관련된 9명의 개인과 1개 단체에 대해 제재를 전격 단행했다.

하마스엔 인질 석방과 함께 국제적십자사의 인질 접근을 허용할 것을 촉구했다.  또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인을 대변하지 않는다”며 “팔레스타인 서안 및 가자지구 민간인에게 1억 달러의 인도적 지원을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스라엘도 이에 동의했고, 이집트를 통한 구호물자 제공도 허용키로 했다고 언급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초청으로 18일 이스라엘에 도착했다.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초청으로 18일 이스라엘에 도착했다. [AFP=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은 병원 폭발 참사 후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다른 중동 국가들엔 이번 분쟁에 개입하지 말 것을 촉구하면서 ‘Don’t(하지 말라)’라는 말을 수차례 반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이스라엘 방문을 통해 이스라엘군 지상작전을 통한 하마스 고립은 허용하되,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함으로써 다른 중동 국가의 참전은 막겠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선량한 중재자’ 외교는 시련도 맞았다.

확전 우려 고조…바이든, 분노한 중동국에 “Don’t, Don’t”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내 알아흘리 병원 폭발로 숨진 팔레스타인인 시신이 17일(현지시간) 알시파 병원 앞마당에 놓여 있다. 무장 정파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 보건부는 18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폭발이 일어났다고 주장하며 “주민 471명이 숨지고 314명이 다쳤다”고 발표했다. [AP=연합뉴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내 알아흘리 병원 폭발로 숨진 팔레스타인인 시신이 17일(현지시간) 알시파 병원 앞마당에 놓여 있다. 무장 정파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 보건부는 18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폭발이 일어났다고 주장하며 “주민 471명이 숨지고 314명이 다쳤다”고 발표했다. [AP=연합뉴스]

당장 바이든 대통령의 출국 직전 이스라엘 방문에 이어 요르단 요르단 압둘라 2세 국왕,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마흐무드 압바스 수반, 이집트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을 만나 4자회담을 하려던 계획은 무산됐다. 외신은 이를 중동 지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얼마나 약해졌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전했다. 영국 BBC는 “아랍 국가들이 바이든 대통령과의 회담을 취소하는 것을 손쉽게 생각하고 있다”며 “몇 년 전만 해도 미국 대통령에게 이렇게 큰 거부를 할 용기가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날 회담에서 네타냐후 총리는 “바이든 대통령은 전쟁 중인 이스라엘을 찾은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라며 치켜세웠다. 그는 임박한 이스라엘군 지상작전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의식한 듯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중재 외교 노력에 일정 부분 호응한 것이다.

하지만 이날 이슬람 중동 국가들의 분노는 최고조로 치솟았다. 하마스는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미국은 이스라엘에 맹목적으로 편향돼 있다”며 “대량 학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과 서방 세계에 있다”고 비난했다고 AFP통신 등이 전했다.

이스라엘과 교전을 벌이고 있는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는 18일을 적에 대한 ’분노의 날‘로 선포했다. 이스라엘 북부 레바논 국경 지역에서는 지난 17일 양측 간 교전으로 헤즈볼라 대원 5명이 숨졌다. 베이루트 미국대사관 앞에는 “이스라엘에 죽음을” 등의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가 몰려들었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공식 애도의 날을 선포하면서 “가자지구 병원에서 부상자들 위로 떨어진 미국과 이스라엘 폭탄의 화염이 곧 시오니스트(유대 민족주의자)들을 집어삼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요르단 암만에서는 시위대가 이스라엘대사관 급습을 시도했다. 튀르키예와 튀니지에서는 서방 국가 대사관 앞에서, 이라크와 리비아에서는 도심 광장 등으로 시위대가 몰려들었다.

이런 가운데 헤즈볼라가 참전할 경우에 대비해 미국이 플랜B를 논의 중이라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17일 미국 악시오스는 정부 당국자 3명과 이스라엘 당국자 1명을 인용해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을 공격할 경우 미군 병력을 투입하는 시나리오가 최근 여러 백악관 회의에서 논의됐다고 전했다. 현재 미국은 2개 항모 전단을 이스라엘과 가까운 동지중해에 배치하는 한편 병력 2000명을 ‘대비 태세 고조’ 상태로 준비시켰지만 파병 계획은 없다고 거듭 밝혀 왔다.

또 뉴스위크 등 미 언론은 17일 의회가 이란의 지원을 받는 세력이 개입할 경우 미군 파병을 승인하는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고도 보도했다. 공화당 소속인 마이클 매콜 하원 외교위원장은 이날 CNN 인터뷰에서 “필요한 경우에 대비해 초안을 마련 중”이라며 “이 법안을 표결에 부칠 일이 없길 바란다”고 말했다.

내년 대선을 앞둔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이번 이스라엘 방문으로 정치적·외교적 리더십의 중대한 시험대에 섰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18일 현재 팔레스타인인 3300명 이상이 숨졌다고 밝혔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에 가시적인 외교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무능하다는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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