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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쪽이라고?" 무장 세력 감청 깐 이스라엘…가자 참사 진실 공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7일 저녁(현지시간) 가자지구 북부 병원에서 폭발이 일어나 민간인 최소 500명이 목숨을 잃은 것과 관련해 이스라엘과 무장 정파 하마스 간에 책임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고 미 워싱턴포스트(WP) 등이 보도했다.

WP가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의 생방송 영상을 분석한 결과, 이날 오후 6시 59분쯤 가자시티의 알아흐사 아랍 병원 부근에서 작은 빛나는 원형 물체가 컴컴한 하늘을 가로질러 이동한다. 뒤로는 연기 꼬리도 보인다. 대략 12초 후에 이 물체는 공중에서 폭발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폭음이 들린 뒤 3초 뒤에 알아흘리 병원 인근에 큰 섬광이 번쩍이고 곧이어 화재가 발생한 것이 확인된다.

사건 초반 이스라엘의 폭격이 원인으로 알려지면서 요르단과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아랍 국가 지도자들은 일제히 이스라엘의 공습을 비난하는 성명을 냈다.

이스라엘 방위군(IDF)은 그러나 “이스라엘 방위군의 작전 및 정보 시스템의 철저한 분석 결과 IDF가 가자지구 내 병원을 공격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반박했다. “해당 병원은 테러 조직인 이슬라믹 지하드가 이스라엘을 겨냥해 발사했으나 실패한 로켓에 맞은 것”이라면서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이들이 이스라엘을 향해 발사한 로켓 중 약 450발이 가자지구에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반면 하마스는 텔래그램 채널을 통해 “이스라엘 점령군들에 의해 끔찍한 학살이 자행됐다”이라며 “이번 범죄 행위는 미국과 서방의 지원을 드러낸다”며 이스라엘에 대한 공습이라고 맞받았다. 이슬라믹 지하드도 “우리가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이스라엘군 영상·감청 내용 공개

이에 IDF은 무인기(드론) 영상과 무장 세력 간 통화 감청 파일 등 증거를 일일이 X(옛 트위터)에 올리며 여론전에 나섰다. IDF는 드론 영상을 통해 “우리 미사일이라면 땅에 분화구 형태의 구덩이(crater)가 남았을 텐데, 영상 분석 결과 병원 부지에는 이 같은 구덩이가 생기지 않았다”면서 “대신 커다란 화재가 일어났다. 이슬라믹 지하드의 로켓이 잘못 떨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공개한 통화 음성 녹취에선 IDF가 ‘테러리스트’라고만 밝힌 두 남성이 알아흘리 병원의 옛 이름인 “알마 아마다니 병원”을 거론하는 대화가 확인된다. 현지인들에게 보다 더 잘 알려진 이름이다. 통화에서 한 남성이 먼저 “실패한 미사일은 팔레스타인 이슬라믹 지하드 쪽에서 나온듯 하다”고 하자, 통화 상대방은 “우리 쪽이라고?”라고 되묻는다. 그러자 이 남성은 “그런 것 같다. 우리 쪽에서, 병원 뒤 묘지 쪽에서 발사됐다”고 말한다.

이를 근거로 IDF의 해외 언론 대응 조나단 콘리쿠스 중령은 스카이뉴스 호주에 “이슬라믹 지하드의 로켓이 부분적으로 공중에서 폭발한 후 병원이나 근처에 떨어진 게 맞다”면서 “하마스가 즉시 500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는데, 그들이 주장하는 것만큼 빨리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의 검증되지 않은 주장과 거짓말이 그대로 보도되고 있다”고 항변했다.

이스라엘 방위군(IDF)가 18일(현지시간) X(옛 트위터)에 올린 가자시티의 알아흘리 아랍 병원의 무인항공기(드론) 영상. IDF는 "우리가 미사일을 쐈을 땐 땅바닥에 구덩이(crater)가 생기는데, 17일에는 화재가 발생했을 뿐 이 같은 미사일 흔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사진 X 캡처

이스라엘 방위군(IDF)가 18일(현지시간) X(옛 트위터)에 올린 가자시티의 알아흘리 아랍 병원의 무인항공기(드론) 영상. IDF는 "우리가 미사일을 쐈을 땐 땅바닥에 구덩이(crater)가 생기는데, 17일에는 화재가 발생했을 뿐 이 같은 미사일 흔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사진 X 캡처

동시에 소셜미디어(SNS)에선 알자지라 방송 영상 등을 근거로 “하마스의 미사일 소리와 이스라엘이 주로 쓰는 합동정밀직격탄(JDAM)의 폭음을 비교해 보면, 병원 폭발 때 들린 소리는 JDAM에 가깝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 기반 아랍권 컨설팅 업체 IBC 그룹의 마리오 나우팔은 X(옛 트위터)에 “전직 해군 관계자 등 전문가 검토를 거친 결과 이스라엘 또는 서방제 미사일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초기 폭발이 0.5~075초간 지속되면서 짧은 기간 빛이 방출됐고, 주차장과 면한 건물의 꼭대기엔 피해가 거의 없었던 걸 고려하면 300~600파운드(약 136~272㎏)의 폭발 장치로 보인다. Mk-82 또는 83 범용 폭탄 내지는 JDAM이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국내 전문가는 이스라엘 쪽 주장에 무게를 싣고 있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개된 영상만 봐선 로켓으로 추정된다. 미사일은 영상에서처럼 소리가 날 여유가 없다”며 “이스라엘군 발표처럼 하마스의 자작극일 가능성을 배제 못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정부가 적극 부인하면서 NYT와 같은 서방 언론들은 이번 사건을 보다 중립적인 용어인 “폭발(blast)”에 의한 것으로 고쳤다. 반면 아랍권 매체 알 자지라는 여전히 이스라엘에 의한 “공습(air attack)”으로 보도하고 있다.

하마스가 가자지구의 병원들을 자신들의 근거지로 삼고 있다는 미 정부의 분석도 나왔다. 앞서 하나냐 나프탈리 이스라엘 정부 온라인 대변인은 사건 초반 X에 “가자지구의 병원에 있는 테러리스트 기지를 이스라엘 공군이 폭격했다”고 올렸다가 이를 삭제했다. 사브리나 싱 미 국방부 부대변인은 17일 기자들과 만나 “하마스는 지휘 통제부를 병원 내부처럼 무고한 민간인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배치하고 있다”면서 “이는 자신들의 작전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으로 민간인을 이용한다는 잔인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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