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중견기업] 월드테크 - 일에 미쳐 13년 … 세계 빅3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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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안길우 월드테크 사장이 ‘광 픽업’ 장치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변선구 기자]

1994년 회사가 설립된 이후 설날이나 추석에도 24시간 공장을 돌렸다. 그러다 보니 '불이 꺼지지 않는 회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렇다고 조업을 중단하면 재가동하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제철소나 석유화학 회사가 아니다. 전자부품 회사다. 경남 창원에 있는 월드테크다. 이 회사는 CD.DVD플레이어의 핵심부품인 '광(光) 픽업'(사진)을 만든다. 광 픽업은 CD나 DVD에 수록된 내용을 읽거나 새 내용을 수록하는 일을 해주는 전자 장치다.

안길우(47) 사장은 "대기업이 놀 때 똑같이 놀아선 중소기업은 살아 남을 수 없다"고 말했다. 매출 3000억원(해외법인 포함)을 넘볼 정도로 회사가 훌쩍 커졌지만 그는 요즘에도 쉬는 날이 거의 없다. 거의 매일 오전 9시에 출근해 새벽 2시 집으로 간다.

"아내와 외동딸에게 항상 미안할 따름이지만 경영을 책임진 이상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매달 보름 정도 해외 출장을 다니지만 아직 한 번도 현지의 관광지를 가 본 적이 없단다.

안 사장은 샐러리맨출신. 진주기계공고를 졸업한 그는 경남대 전자공학과(야간)에 다니면서 마산수출자유지역에 있는 일본계 전자부품 회사에 취직했다. 집안이 어려워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어야 했다. 입사 4년 만에 과장으로 승진하고 기술개발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는 등 그의 직장생활은 순조로웠다. 급여도 국내 웬만한 대기업보다 나은 편이어서 모자람이 없는 생활을 했다. 그랬던 그의 생활은 광 픽업을 만들어보라는 한 대기업의 솔깃한 제안을 받고 달라졌다.

당시만 해도 광 픽업은 소니.산요 등 일본 기업이 독점하는 품목. 국내 제조업체들은 CD.DVD플레이어를 많이 생산하고 싶어도 일본 기업들이 광 픽업 공급 물량을 조절해 애를 태워야 했다. 안 사장은 개발에 성공하면 돈벌이가 되겠다는 생각에 그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다. 이후 그의 고생 길이 열렸다. 핵심 부품은 물론, 생산장비까지 개발해야 했기 때문에 힘들 수밖에 없었다.

창원시 명서동 반지하 사무실에서 두 명의 직원과 더블어 밤낮 없이 기계와 씨름했다. 모자라는 수면은 차안에서 토막잠으로 보충했다. 창업자금으로 내놓은 퇴직금(약 1억원)은 얼마가지 못해 떨어졌다. 대기업이 알아줄때까지 2억원을 빌려 버텨야 했다.

주변에선 "안 될 일을 붙잡고 쓸 데 없이 고생한다"며 말렸지만 그로선 인생을 걸고 하는 일이었다. 어렵사리 1년 반 만에 제품과 생산장비 일체를 개발하자 일감이 몰렸다.1000원짜리 수입부품을 절반 가격에 내놓자 96년 대우전자를 시작으로 삼성전자.LG전자 등이 속속 주문했다. 일본 업체보다 생산성이 앞선 설비였지만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기 힘들어 쉴 틈이 없었다. 2001년엔 일본 소니에도 역수출했다. 국내 CD.DVD플레이어 제조업체가 생산기지를 이전하자 함께 따라 나섰다.

2002년 필리핀(월 100만 개), 2004년 중국(월 450만 개)에 이어 지난 10월엔 베트남(1단계 월 250만 개)에 잇따라 공장을 세웠다. 창원 본사는 연구개발 및 핵심부품 공급기지 역할을 한다. 월드테크는 지난해 세계 광 픽업 시장에서 14%의 점유율를 차지했다. 소니.산요와 함께 세계 3대 광픽업 업체가 됐다.

베트남 공장(내년 2월 월산 450만 개 규모로 완공 예정)이 돌아가는 내년엔 40%의 점유율로 세계 1위에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안 사장은 "독자 개발한 생산장비의 효율이 앞선 데다 제품 생산에 필요한 초정밀 금형을 자체 제작하기 때문에 일본 제품보다 가격 경쟁력이 있다"며 "인도에도 공장을 세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월드테크는 최근 플라즈마 기술을 이용한 LCD 조명장치를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LCD 조명에 쓰는 형광등보다 값은 싸면서 화질은 더 좋게 해주는 제품으로 현재 일본의 한 업체와 성능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안 사장은 "국내 대기업들이 거들떠보려 하지 않아 일본 업체에 시험을 의뢰하게 됐다"고 했다. 월드테크는 지난 24일 대한상공회의소와 중앙일보가 공동 개최한 기업경영혁신대상 시상식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글=차진용 기자<chajy@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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