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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자기를 비우는 나무의 지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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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넓은 마당에 오래된 돌부처를 모시고 주변에 물 빠짐이 좋은 마사토를 깔았다.  숲이 펼쳐진 마당에 밤이면 달과 별이 가득하다. 날마다 해와 달과 별이 번갈아 뜨고 지는 사이에 시나브로 도량은 더 청정해졌다.

안성 참선마을에 참선 집중수행을 위해 스님 열여덟 분이 찾아왔다. 몇몇 스님들은 맨발로 마사토 깔린 마당을 걷는다. 요즘 맨발 걷기가 유행이라더니 절집도 그 영향을 받은 모양이다. 맨발로 걸으면 평소 눈이나 귀와 코, 혀의 감각기관을 좇아가던 의식이 발바닥의 감촉으로 쏠린다. 의식이 내려가면서 몸의 열기가 내려가고 헐떡이던 마음작용도 잠잠해진다. 이 광경을 지켜본 후 하루 한 차례 맨발 걷기 명상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가을 맞아 잎 내려놓는 나무들
아집 버려야만 ‘참나’와 만나
요즘 유행하는 걷기 명상 체험
‘내 것’이라는 단단한 벽 허물기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천천히 세 발걸음을 걸으며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네 발걸음을 걸으며 입으로 숨을 내쉽니다. 첫 번째는 맑고 청량한 기운을 들이마시고, 음식물로 인한 몸속의 탁한 기운을 밖으로 보낸다는 마음으로 숨을 내쉽니다. 두 번째는 맑고 청량한 기운을 들이마시고, 이어 마음속 답답함을 밖으로 내보냅니다.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면 세 번째는 오로지 들숨과 날숨에 의식을 집중합니다. 걷다가 생각이 올라오면 내쉬는 호흡과 함께 밖으로 보내고 의식은 밝은 자리로 되돌아오게 합니다. 이 몸을 움직이고 바라보는 ‘나’라고 하는 이것은 무엇이지? 하는 의문을 품습니다. 이렇게 의문을 품고 생활하게 되면 매일 삶을 향상하는 참 수행자가 되는 것입니다.”

열아홉 살 때 만났던 아이가 스물여섯 청년이 되어 입산 출가하겠다고 찾아왔다. 가끔 세상에 섞이지 못하는 성품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출가자 삶을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열아홉 학생에게 불쑥 출가를 권한 것이 처음이지 싶다. 그 학생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6년 동안 나름 노력하다가 결국 산중으로 찾아온 것이다. “우리 평생 수행자로 여기에서 살자. 그리고 세상의 마음 지친 사람들을 이곳에서 돕자. ‘나’라는 미련 하나 없이 오로지 하루 한순간 몸과 목숨을 다해 수행에만 노력해야 한다”라는 당부도 전했다.

사실 출가만 하여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뀐다. 세상 속에 살 때는 나와 내 가족과 친족, 나와 연관된 세계를 확대하며 살아가게 마련이다. 출가자의 삶은 그 반대이다. 무아(無我), 즉 독립된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고, 수행을 통해 체득해 나간다.

이 세상에 태어난 누구에게나 이름이 정해진다. 이 이름은 평생 그림자처럼 함께하게 된다. 그러나 행자 생활을 시작하면 세속의 이름은 더 이상 불리지 않고 성씨에 행자라는 호칭이 붙게 된다. 예컨대 ‘이씨’라면 ‘이 행자’로 불리는 것이다. 이후 6개월 기초교육과정을 잘 마치면 스승으로부터 진리의 이름인 법명을 받는다. 그때부터는 이름도 성씨도 없이 오직 법명만 있을 뿐이다. 이 순간은 이름에 붙은 ‘나’가 사라지는 순간이다. 또 세상과 하나가 되는 성스러운 찰나! 새로운 탄생의 시작이기도 하다.

내 나이 스물여섯 살 적, 은사 스님과 둘이 퇴락한 미황사에서 살 때다. 마흔 살의 은사 스님은 매우 부지런하셨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잠시도 쉬는 법이 없었다. 무너진 축대를 다시 쌓고, 도량에 침범한 나무들을 베었다. 제자인 나는 새벽 네 시에 일어나 하루 세 번의 예경하고, 세끼 밥을 차리고, 은사 스님을 따라 돌을 쌓고, 나무를 베었다. 금새 체력이 바닥나곤 했다. 해 지면 쓰러져 곯아떨어지고, 새벽이면 천근만근한 몸을 일으켜 세워 하루를 시작했다. 오로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 정작 ‘나’를 챙길 여력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끝없이 솟구치는 힘이 솟았다.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단단한 정진력이 생겨난 것이다.

서산 대사는 『선가귀감』에서 ‘내가 만든 나’를 떠나 이치의 길이 끊어지고 생각의 길이 끊어진 본래 마음을 찾을 때라고 강조하셨다. 간절한 마음으로 수행하지 않으면 ‘나’에 대한 집착을 떠나기가 어렵다는 가르침이다.

내가 만든 ‘나’, ‘내 것’이라는 생각은 견고하고 오래되었다. 그러나 이 집착이 행복과 평화와 자유를 방해하는 원인이다. 내가 만든 단단한 벽이 나를 가둔다. 내가 만든 나를 떠날 때 비로소 지혜롭고 여유로운 나의 본 모습을 만날 수가 있다.

이 가을, 나무들이 수많은 잎을 다투어 내려놓고 있다. 보이지는 않지만 크고 작은 나뭇가지도 월동을 위해 제 몸 안의 물기를 부지런히 비우는 중이다. 저 초목처럼 사람들도 스스로를 얽매고 있는 모든 집착들(五取蘊)을 내려놓기를 권한다. 하여 대자유로 이끄는 이정표를 발견하기 바란다.

금강 스님·중앙승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