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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가을 밤의 현자, 반딧불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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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곽정식 수필가

곽정식 수필가

만경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반딧불이를 만날 수 있다는 말에 길을 떠났다. 석양에 반사되는 갈댓잎 사이에 걸린 거미줄, 부들 위에 지친 날개를 접은 말잠자리, 초저녁 햇살에 고개 숙인 패랭이꽃을 보았다. 저물던 해는 강이 바다를 만나는 곳에서 홍염(紅焰)을 분출시키다가 이내 졌다. 해 떨어진 강가는 풀벌레의 차지였다. 풀벌레 소리 터널을 한참 지난 후 스산함이 감도는 1300년 백제 고찰 미륵사지에 도착했다.

기다리던 반딧불이와 재회를 한 곳은 근처 대나무 숲이었다. 연초록색 반딧불이들이 명멸(明滅)하는 빛으로 저공비행을 하는 것을 보며 황홀경에 빠졌다. 세상은 순간 자연의 빛, 생명의 빛으로 멈춰버렸다. 만약 이 춤을 아이가 본다면 신비의 세계로, 어른은 동심의 세계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반딧불이의 향연이 깊은 밤으로 빠져들 무렵 무리에서 이탈한 반딧불이 한 마리가 나그네의 어깨 위에 살며시 내려앉는 게 아닌가.

백제 고찰에서 만난 반딧불이
세상을 밝히는 차갑고 맑은 빛
부패한 사회는 무너지기 마련

삶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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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소년이 반딧불이 빛으로 책을 읽고 과거에 급제해 선정을 베푸는 관료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어릴 적 듣고 컸다. 공부가 입신양명의 유일한 수단이던 그 시절 반딧불이와 개미 이야기는 환경을 탓하지 말고 공부하라는 무언의 압력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에는 반딧불이가 가슴이 시릴 정도로 아름답다는 것을 미처 느끼지 못했다.

옛사람들은 밤하늘 낮은 곳에서 반딧불이가 스스로 빛을 ‘켜다, 끄다’를 계속하는 모습을 보면서 ‘형(螢)’이라는 글자를 만들었다. 형(螢)은 벌레(虫) 위에 두 개의 불(火)이 반짝이는 모습이다. 개구리는 울어서, 박쥐는 초음파를 보내서 소통하는 것처럼 반딧불이는 빛을 명멸해 대화한다.

반딧불이의 발광은 꼬리에 있는 발광물질 루시페린이 산소와 결합할 때 생겨난다. 사람마다 지문이나 홍채가 다른 것처럼 반딧불이 빛의 색깔과 밝기는 개체마다 다르다. 지구상에 빛을 내는 생명체는 많지만 명멸하는 빛의 방출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은 반딧불이에게만 있다.

그럼 반딧불이는 어떻게 빛을 내고 깜빡일까. 반딧불이 유충은 일 년간 깨끗한 물에서 사는 다슬기를 먹고, 성충이 되어서 날개돋이를 할 무렵이면 이슬만 먹고 2주를 산다. 다행히 몸에 지방을 비축해두어 그 에너지로 버틴다. 깨끗한 물에서 깨끗한 것을 먹고 사는 반딧불이는 스스로 차갑고 맑은 자연의 빛(Lumen Naturale)을 낸다. 사람도 깨끗한 행동을 하면 안광이 맑아지지 않던가.

사람의 개성은 지성과 야성의 조화에서 나온다. 그런데 지성은 청렴과 교양을 먹고 자란다. 사람이 맑아지려면 아무리 배가 고파도 이것저것 주워 먹지 않아야 안광이 맑아지고 차가운 지성이 쌓인다. 오늘날 세상이 어지러운 것도 모두가 지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세계정세도, 남북문제도, 노사상생도, 여야 협치도 지성이 없이 들떠 있으면 냉철한 해결책보다 이벤트를 찾게 된다.

들떠있는 세상에서는 지성보다 자극이 우선한다. 더 많은 자극을 위해 언어에도 과장과 감탄이라는 ‘인공감미료’가 듬뿍 들어간다. 지성이 약하고 자극이 강한 사회에서는 ‘한번 사는 세상인데 나도 한 번 잘 먹고 살자’는 풍조가 만연하고 부패 친화적인 문화가 자리 잡는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서로 실망을 느끼고 좌절에 빠져 ‘당신이나 열심히 하셈!’과 같은 냉소적 사고가 사회 곳곳에 스며든다. 기업 구성원들은 틈만 나면 주식·부동산·코인 이야기를 하고 업무는 뒷전에 둔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조직에는 집단지성의 퇴행이 일어나고 기업은 점점 멍들어 간다.

그렇다! 사회가 부패하여 투명성을 잃으면 보이지 않는 비용이 발생하고 국가는 경쟁력을 잃는다. 세계역사를 봐도 왕정의 적도, 자유민주주의의 적도, 사회주의의 적도 모두 부패이다. 나라도 망할 때는 부패가 횡행하고 지성인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

오늘날 같은 자극적인 ‘동(動)’의 세상에서 차분한 ‘정(靜)’의 상태를 유지하려면 학습과 사색을 통한 지성이 형성돼야 한다. 가혹한 생존의 세계에서 자존을 지키는 힘도 지성이다. 세상 경험이 많은 선배 세대들이 ‘차가운’ 반딧불이가 되어 ‘뜨거운’ 젊은 세대를 지성으로 보살피고 이끌 때 사회는 진보하고 나라는 발전한다.

패망한 왕국 백제의 고찰 터에서 어깨 위에 날아와 앉았던 반딧불이는 사랑의 짝짓기를 마친 후 힘이 빠져 내려왔을 것이다. 그가 이런 교훈적인 메시지를 주려고 잠시 나타난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백제가 패망할 때도 세상이 혼탁하고 부패했다. 지금의 세상도 혼탁하다. 이럴 때일수록 깨끗함과 지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잘 생각해 보라. 왕조가 끝나면 역사의 평가가 따르듯 사람도 떠나면 결국 평판이 남는다.”

밤하늘 반딧불이의 느린 군무를 보며 떠오르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곽정식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