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삶의 향기

하나밖에 없는 ‘광주 이모’의 국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김미옥 작가·문예평론가

김미옥 작가·문예평론가

아이가 있고 직장이 있는 여자들의 소망은 믿을 수 있는 타인의 손이다. 나도 예외가 아니어서 늦게 퇴근하는 날은 애가 탔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다 인연 닿은 분이 동료가 소개한 ‘광주 이모’였다. 연세가 지긋했지만 나는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처음 그녀와 나의 조우는 경악의 연속이었다. 휴일이면 나는 진이 빠져서 누워 책을 봤는데 그녀는 사정없이 내 주변을 청소했다. 나는 몸통을 굴려서 공간을 확보했는데 그녀는 나의 굴렁쇠 몸짓에 경악했다.

나 역시 그녀가 마음에 들었던 건 아니었다. 얼마나 부지런한지 나이가 환갑임에도 요리와 청소를 잠시도 쉬지 않았다. 그러나 걸레질한 바닥은 물이 흥건했고 식탁에 행주 자국이 남아있었다. 그녀가 오랜 노동으로 관절이 좋지 않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지만, 순식간에 음식을 만들어 내는 솜씨는 흡족했다. 장을 보고 가계부도 썼는데 비뚤비뚤 정직했다.

반짝반짝 살림에 빛났던 그녀
‘말머리성운’ 최초 발견 플레밍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한 여성들
당신이 가장 잘하는 것 하기를

삶의 향기

삶의 향기

그녀와 내가 호흡이 맞았던 건 둘 다 잔소리를 싫어한다는 사실이었다. 오래전에 남편과 헤어지고 자식들과 살았는데 집에 가는 걸 머뭇거렸다. 당연히 우리 집에서 자는 일이 많았는데 내가 서재에서 밤을 새우면 야식을 만들어 주었다. 같이 식탁에 앉아 밥을 먹으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침을 안 먹는 내게 억지로 수저를 쥐여주며 한술이라도 뜨고 출근하라고 했다. 그녀는 혼자 번 돈을 자식들에게 다 쏟아서 가진 것이 없었다.

내가 거실에 앉아 책을 읽고 있으면 설거지를 마친 그녀가 옆에 누워 코를 골았다. 순식간에 잠드는 그녀가 재미있었다. 생각하면 그녀는 내 삶의 목격자였다. 단순한 가사 도우미가 아니라 기쁠 때 함께 웃고 슬플 때 음식으로 위로하던 인생 선배 같은 친구였다.

그녀가 있을 때 내 서재는 언제나 빛이 났다. 책상은 깔끔했고 음식은 정갈했으며 내가 잠이 들면 보던 책의 갈피를 접어서 덮었다. 나는 책 접는 걸 질색했지만 나를 위해서 했던 것임을 안다. 나는 다음 생에 남자로 태어나면 ‘광주 이모’와 결혼하겠다고 농담하는 사이가 되었다.

오랜 노동으로 나이가 들면서 그녀의 행동은 눈에 띄게 느려졌다. 나는 잔소리 대신 청소기를 돌렸다. 사람과 헤어지려면 정이 들기 전에 해야 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힘이 들어서 쉬어야겠다고 그녀가 먼저 말했다. 그날 우리는 같이 외식을 했다. 전화로 가끔 안부를 물었지만, 그것도 뜸해질 무렵 그녀가 자기 집에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병원에 찾아갔지만, 그녀는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다. 아이들도 컸고 나도 사는 게 바빠 그녀를 서서히 잊었다.

몸살 기운에 한기가 들면 나는 그녀가 끓여준 국밥이 그리웠다. 부위를 알 수 없는 소고기와 냉장고의 시들어가는 채소를 몽땅 넣은, 해장국인지 육개장인지 정체불명의 국밥은 어디에서도 그 맛을 찾지 못했다. 아이들과 나는 식탁에 앉아 가끔 ‘광주 이모’를 얘기했는데 그리운 게 국밥인지 그녀인지 헛갈렸다. 식당에서 국밥을 먹으면 가끔 눈두덩이 뜨끈해졌다.

나는 강연을 할 때면 ‘말머리성운’을 처음 발견한 여자가 가사 도우미 출신 ‘윌리어미나 플레밍’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내 이야기를 듣는 싱글맘이 많기 때문이다. 그녀의 남편은 16살이나 많은 결혼 전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21살 만삭의 임산부를 버리고 떠나 버렸다. 여자가 살기 위해 가정부로 들어간 집은 하버드대 천문학 교수 피커링의 집이었다. 비록 가난해서 학교는 다니지 못했지만, 그녀는 계산 능력이 뛰어나서 그 집의 재정 관리서를 작성했다. 실력을 인정한 부부는 천문대 사무직에 그녀를 시급 25센트로 고용했다.

단순 사무직이던 그녀에게 피커링 교수가 항성 분광분석법을 가르치자 그녀는 항성의 스펙트럼에 포함된 수소 비율에 따라 항성 분류 체계를 고안했다. 그녀는 ‘말머리성운’ ‘백색왜성’과 더불어 10개의 신성, 52개의 성운, 310개의 변광성도 발견했고 미국 여성 최초로 영국 왕립 천문협회 명예 회원이 되기도 했다. 누구나 그녀처럼 운이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정직했고 자기가 잘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최근 나처럼 하늘의 별을 좋아하는 싱글맘이 책을 내고 작가가 되었다. 처음 망설이는 그녀에게 내가 한 말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정직했고 그녀가 잘하는 일은 진솔하게 글을 쓰는 일이었다.

나의 ‘광주 이모’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국밥을 내게 끓여 준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평생 잊히지 않는 사람도 괜찮은 생을 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시대는 달랐지만 정직했고 가장 잘하는 일을 하며 살았던 사람이었다. 나는 그녀처럼 남의 살림에 반짝반짝 광을 내준 이를 본 적이 없다.

김미옥 작가·문예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