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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열세인 하마스, 인질 ‘인간방패’로 장기전 노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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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친이란 성향의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미국은 8일(현지시간) 항공모함 전단을 동지중해에 급파했다. 이스라엘은 같은 날 전쟁을 선포하면서 ‘중동의 화약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가 주변국으로 확대될 조짐마저 보인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9일 남부 가자지구 장벽 인근에서 팔레스타인 미사일을 피해 엎드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스라엘 군인들이 9일 남부 가자지구 장벽 인근에서 팔레스타인 미사일을 피해 엎드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① 미국·이란 대리전 확대 가능성=중동 전문가인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는 9일 중앙일보에 “미국의 항모 파견은 하마스가 아닌 배후의 이란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면서 “오히려 확전을 막고 상황 관리를 하기 위한 측면이 크다”고 해석했다. 박 교수는 “대선을 앞둔 조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선 공화당 대선 주자들의 비판을 의식하는 등 자국민을 겨냥한 측면도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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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쟁의 향후 전망과 관련해 성일광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 연구위원은 “이스라엘이 워낙 압도적 화력을 갖고 있어 군사적 충돌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지만, 하마스가 민간인 인질을 잡고 있어 상황을 오래 끌고 갈 수 있다”고 짚었다.

하마스는 현재 어린이와 여성을 포함한 민간인, 군 장교 등 100명이 넘는 인질을 억류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하마스가 2006년 단 한 명의 이스라엘 군인을 포로로 잡아 5년 넘게 협상한 끝에 1000명 넘는 팔레스타인 포로와 맞교환한 전례가 있다”고 전했다.

동지중해로 향하는 미국 핵항모 제럴드 포드함. [EPA=연합뉴스]

동지중해로 향하는 미국 핵항모 제럴드 포드함. [EPA=연합뉴스]

② 이스라엘 ‘피의 보복’ 수위=역대 가장 ‘우클릭’한 베냐민 네타냐후 연립 정부는 분기점에 섰다. 극우파가 목소리를 얻으면 팔레스타인 정책이 더욱 강경해질 수 있다. 이번 기회를 군과 모사드 내 반(反)네타냐후 세력을 제거하는 기회로 여길 수도 있다. 반면에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와 베니 간츠 전 국방부 장관 등 온건 성향의 야당 지도자들은 네타냐후를 향해 “비상정부 구성에 동참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만약 네타냐후 총리가 이 제안을 수락하면 정책이 극단으로 치닫는 걸 막을 수 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중동센터장은 “최악의 시나리오는 팔레스타인 대중의 지지가 자치정부에서 무장 정파인 하마스로 옮겨가고, 이스라엘은 완전히 극우로 치달아 ‘두 국가 해법’(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공존 해법)은 없다고 선언하면서 양 극단이 적대적으로 공존하는 사태”라고 우려했다.

박현도 교수는 “네타냐후 총리가 극우 연정이 무너졌을 때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판단한다면 온건 야당과 협력하기도 쉽지 않다”면서 “결국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네타냐후 총리가 있다. 사욕을 앞세운 지도자가 국가적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꼬집었다.

③ 손 묶인 사우디의 행보=미국의 중재하에 이스라엘과 수교 협상을 진행 중이던 사우디아라비아는 신중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등을 종합하면 사우디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아버지 살만 국왕과 달리 팔레스타인 문제를 실리적으로 접근한다. 성 위원은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가 갖는 입지가 있기 때문에 현 상황에서 사우디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을 지지할 수는 없다”면서 “당분간 시간을 두고 이스라엘에 접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 교수는 “하마스와 전쟁하는 와중에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수교를 강행하면 사우디 대중들은 1979년 이스라엘과 수교한 이집트의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떠올릴 것”이라고 했다. 앞서 이집트는 미국의 중재로 아랍 국가들 가운데 처음으로 이스라엘과 수교했지만, 이집트 강경파들은 이를 ‘굴욕 외교’로 치부했다. 협정을 주도했던 안와르 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은 결국 피살됐다.

7일 네게브사막에서 열린 노바 음악축제에서 총격을 피해 뛰는 참가자들. [사진 트위터 캡처]

7일 네게브사막에서 열린 노바 음악축제에서 총격을 피해 뛰는 참가자들. [사진 트위터 캡처]

④ 개입설 부인한 이란=8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일 이란이 하마스의 기습작전을 사전에 승인했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반면에 이란은 즉각 유엔 대표부를 통해 관여설을 공식 부인했다. 실제 이란이 이번 일을 배후에서 지휘했다면 핵합의(JCPOA) 위반과 관련한 미국의 고강도 제재를 풀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이스라엘과 전쟁을 불사했다는 얘기가 된다. 박 교수는 “가시적으로 얻을 게 없는 상황에서 이란이 먼저 계획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란은 하마스에 의해 이스라엘의 국내 방어선이 뚫렸다는 것만으로도 흡족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⑤ 스텝 꼬인 바이든의 대중동 외교=바이든 정부의 이스라엘-사우디 중재 외교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NYT는 딕 체니 전 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 존 해나를 인용해 “개가 짖어도 캐러밴은 간다”며 대세에 지장은 없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반면에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현실적으로 휴면 상태가 됐고, 언제 재개될지도 모른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국내 전문가들도 ‘일시 멈춤’에 대해선 대체로 동의했다. 성 위원은 “잠시 멈출 수는 있어도 빈살만은 사우디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는 만큼 다시 추진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박 교수는 “진전 여부는 전적으로 이스라엘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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