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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계 "당지도부도 물러나라" 친명 최고위 "이재명 지킬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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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2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왼쪽 둘째) 등 의원들이 대화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2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왼쪽 둘째) 등 의원들이 대화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총선을 200일 남짓 앞두고 현직 당 대표가 구속될지 모르는 최대 위기를 맞았다. 168석 거대 야당의 리더십의 변화 가능성에 따라 총선 구도도 요동치게 됐다.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단식 22일째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 본인과 당 지도부의 “부결시켜 달라”는 거듭된 호소에도 불구하고 최소 29명 의원이 가결표에 가담해 체포동의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기권·무효표를 포함하면 40명 안팎 의원이 이 대표 체제에 반기를 든 셈이어서 친명-비명계는 사실상 내전 상태에 돌입했다.

이르면 추석 전 열릴 이 대표의 영장실질심사에서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할 경우 민주당은 초유의 리더십 공백 상황을 맞게 된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을 둘러싼 당내 갈등은 사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껴안고 총선을 치를 거냐”는 질문에서 비롯됐다. 검찰 수사가 편파적이라는 데 당내 이견은 없었지만, 등락을 반복하는 지지율에 “총선까지 ‘이재명 체제’로 치르면 필패”라는 주장이 끊이지 않았다. 이 대표의 단식이 장기화하면서 “그래도 당 대표를 지켜야 한다”는 여론이 반등했지만, 전날 이 대표 스스로 공언한 ‘불체포권리 포기’를 석 달 만에 뒤집으면서 기류가 또 급변했다. 근본적으로는 “체포안을 부결해 ‘방탄 야당’의 이미지가 굳어진 상황에서 이 대표 간판으로 총선을 치를 경우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야권 비주류의 인식이 이탈표의 배경에 깔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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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선포 후 민주당 의원들의 침통한 모습.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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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에 앞서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이 대표가 입원한 녹색병원을 찾아 이 대표와 따로 면담했다. 전날 밤까지 ‘더좋은미래’와 ‘민주주의4.0’ 등 각 계파 의원들의 의견을 모은 일종의 ‘절충안’을 제시해 이 대표로부터 “편향적인 당 운영 의사는 전혀 없다”는 당내 의견 수렴 기구 설치 등 약속도 받아와 최종 부결 설득에 나선 것이다. 결과적으로 박 원내대표의 시도는 실패했다. 비명계 의원 상당수가 “통합기구 설치는 마치 ‘김은경 혁신위’처럼 당 대표 마음대로 하겠다는 거로 들렸다”며 의구심을 나타내면서다.

친명계는 예상 밖 결과에 격분해 공개 보복을 천명했다. 조정식 사무총장은 페이스북에 “오늘의 가결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이 뒤따를 것”이라며 “이 대표와 민주당을 끝까지 지켜내겠다”고 적었다. 김병기 사무부총장도 “역사는 오늘을 민주당 의원들이 ‘개가 된 날’로 기록할 것”이라며 “(찬성한 의원은) 결국 독재 검찰과 국민의힘 주장에 동조하고 내통한 것”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말미에 “대표님, 이제 칼을 뽑으시라”고 했다.

김영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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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본회의 이후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비명계 박광온 원내대표 등 원내 지도부 사퇴를 요구하는 연판장을 돌렸다. 이 대표 체포안 가결의 책임을 박 원내대표에게 묻는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다. 친명계의 보복 공세에 비명계 의원들도 의총에서 당 지도부 총사퇴 연판장을 맞불로 돌리며 맞섰다. 상황이 고조되자 한 의원은 “(분위기가) 살벌하다. 누구 하나 죽일 것 같다”고 말했다. 심야까지 양측이 격돌한 끝에 박 원내대표와 조정식 사무총장 이하 정무직 당직자가 동반 사퇴하기로 결론냈다. 최고위원회의도 “이 대표 체포안 가결은 용납할 수 없는 명백한 해당 행위”라며 “이재명 대표를 끝까지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친명계가 박광온 원내대표에게 화살을 겨냥한 건 당헌상 이 대표가 구속된 뒤 사퇴할 경우(대표 궐위 시) 박 원내대표, 정청래 최고위원 순으로 대표직을 대행하게 돼 있어 당권을 놓지 않으려는 포석으로 분석된다. 대신 비명계로선 이날 공천 보복을 시사하는 메시지를 낸 친명계 핵심인 조정식 총장과 부총장단을 물러나게 했다.

이 대표가 구속된 뒤에도 대표직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근거도 있다. 민주당 당헌 제80조 제1항은 ‘당직자가 뇌물이나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 관련 혐의로 기소되면 사무총장이 그 직무를 정지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제3항에서 ‘정치 탄압 등 부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될 경우 당무위원회 의결을 거쳐 달리 정할 수 있다’고 예외를 뒀기 때문이다. 최진 대통령리더십 연구소장도 “이 대표가 옥중공천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전망이 현실화될 경우 내년 4월 총선은 ‘옥중의 이재명 체제’로 치러질 수 있다.

일각에선 “총선을 앞둔 상황인 만큼 이 대표가 구속되면 결국 스스로 물러나 조기 전당대회를 치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경우 중간지대 의원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당 대표 후보를 낼 가능성도 열려 있다. 이와 관련,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이날 오후 전남 장성군 장성문화예술회관에서 강연 직후 취재진과 만나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에 대해 “좀 여러 가지를 생각해 봐야 할 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추후 관련한 공식 입장 발표가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그 부분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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