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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군함' 北 연합훈련?…푸틴에 '동북아 군사개입' 명분 준다

중앙일보

입력

북한과 러시아가 무기 거래에 이어 해상 연합훈련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군사적 긴장을 한층 끌어올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유럽의 안보 위기가 한반도 주변으로 단번에 확장하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해상 전력이 열세인 만큼 훈련을 갖더라도 군사적인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그럼에도 일단 훈련을 실시하면 러시아가 동아시아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명분을 요구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고 비판한다.

북한과 러시아가 동해상에서 연합훈련을 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한반도 주변의 군사적 긴장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9월 15일 중국과 러시아 해군 함대가 태평양에서 연합훈련을 하는 모습. 타스=연합뉴스

북한과 러시아가 동해상에서 연합훈련을 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한반도 주변의 군사적 긴장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9월 15일 중국과 러시아 해군 함대가 태평양에서 연합훈련을 하는 모습. 타스=연합뉴스

이와 관련, 14일(현지시간) 미국 국방부는 “북·러 연합훈련이 미·한·일의 북한 핵미사일 억제 능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브리나 싱 미 국방부 부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그들의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말할 수 없다”며 “(북·러 연합훈련 가능성이) 한국이나 일본, 혹은 미·한·일 3국의 연합훈련을 어떤 식으로든 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처럼 미·한·일 동맹(삼각협력)이 강력한 적은 없었다”며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에서 본 것과 같이 3국 정상은 상호 방어와 국민 안보를 위한 매우 야심 찬 계획을 세웠고,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지원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한국 국방부는 이날 “(북·러가 동해상에서 연합훈련을 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예의주시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북·러가 연합훈련에 나설 경우엔 “(한·미·일 간 미사일 방어훈련 실시를) 합동참모본부에서 충분히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북 함정 800척 중 쓸만한 건 소수 

상당수 전문가는 현 단계에서 북·러 연합훈련의 현실화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는 분위기다. 당장 북한이 먼바다에서 운용할 함정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국방백서 2022』에 따르면 북한의 함정 수는 잠수함 70여척을 포함해 총 800여척으로 한국 해군(140여척)의 약 5.7배에 이른다. 하지만 대부분 함정이 노후화가 심각하고 체급이 작아 연근해에서만 운용이 가능한 '깡통 군함'이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 해군이 동해 먼바다에서 운용할 수 있는 함정은 신형 호위함인 ‘압록급’(1500t급) 1~2척 말고는 찾아보기 어렵다”며 “말이 연합훈련이지, 사실상 러시아 단독훈련에 북한이 합류하는 수준에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합동참모본부는 지난달 2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동해에서 함대함 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고 밝혔다. 시험발사에 동원된 함정은 북한 해군의 신형 군함인 압록급(1500t급) 호위함이다. 뉴스1

합동참모본부는 지난달 2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동해에서 함대함 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고 밝혔다. 시험발사에 동원된 함정은 북한 해군의 신형 군함인 압록급(1500t급) 호위함이다. 뉴스1

과거 북한이 대남 해상 공세에서 ‘치고 빠지기’ 식 기습 공격을 주로 구사했던 이유도 이같은 전력적인 열세 때문이란 평가도 있다. 1998년과 2002년 두 차례 연평해전 당시에 북한은 작은 경비정을 이용해 빠른 속도로 서해북방한계선(NLL)을 넘나들며 공격했다. 또 북한은 2010년 3월 잠수정을 몰래 보내 백령도 앞바다에서 어뢰로 천안함을 격침했다. 모두 함대 단위의 정면 대결을 피하면서 경계 사각지대를 노리고 허를 찌르는 기습 도발이었다.

북한이 70년간 지켜온 “외세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대외 방침을 깰지도 주목된다. 북한은 1953년 휴전 이후 단 한 차례도 외국과 훈련을 가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러 연합훈련 실시는 북한이 새로운 군사문법을 쓰는 것”이라며 “북한은 냉전 시기에도 중·러를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라며 멀리하고 ‘주체’로 형상화된 자주 노선을 걸었는데 이마저도 깨겠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 내부를 설득해야 할 만큼 굉장히 새로운 시도”라고 부연했다.

2010년 5월 25일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 천안함 침몰사태 규명을 위한 특별조사팀(SIT)’ 관계자들이 국방부에서 천안한 폭침에 사용된 북한 어뢰 ‘CHT - 02D 추진부 잔해를 살펴보고 있다. 중앙포토

2010년 5월 25일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 천안함 침몰사태 규명을 위한 특별조사팀(SIT)’ 관계자들이 국방부에서 천안한 폭침에 사용된 북한 어뢰 ‘CHT - 02D 추진부 잔해를 살펴보고 있다. 중앙포토

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예측불허 리더십이 이런 금기를 허물고 ‘보란 듯’ 동해에서 북·러 연합훈련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미 연합훈련과 한·미·일 연대에 맞대응하는 차원에서다. 이에 대해 양 위원은 “북·러 군사협력을 공식화하고 동맹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메시지를 낼 수 있다”고 짚었다.

"북·중·러 연합훈련 가능성은 더 낮아"

박용한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도 “북한의 핵무기 탑재 잠수함은 근해에서만 운용이 가능한데, 북한은 러시아가 지리적으로 근접한 만큼 러시아 태평양 함대 전력을 한·미·일의 군사적 방어 능력을 차단하는 지렛대로 보여주려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러시아가 동해에서 군사적 영향력을 대거 확대하도록 자극하는 수순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 14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러시아 태평양함대 군항에 해군 장병들이 정복 차림으로 사열 예행연습에 분주하다. 박성훈 특파원

지난 14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러시아 태평양함대 군항에 해군 장병들이 정복 차림으로 사열 예행연습에 분주하다. 박성훈 특파원

중국이 참여하는 북·중·러 3자 훈련에 대해선 “현재로선 가능성이 더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중국 입장에선 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 3국이 훈련에 나서면 실익 없이 국제사회로부터 부정적인 이미지만 강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이 그간 러시아와 연합훈련의 범위와 강도를 높여온 만큼 장기적으론 북한을 끌어들여 미·중 전략 경쟁에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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