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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우린 싱글맘 싱글대디 <5·끝> 엄마 아빠의 새 짝 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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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싱글맘 박소원씨

삐걱거렸던 가정사 이야기하다
상대남 "아들은 아빠가 키워야 …"
처음 본 맞선 보기좋게 거절당해

"이번 주 토요일에 선보지 않을래?"

어느 날 예전의 직장 선배가 주말 스케줄을 물어왔다. 20~30대에도 선이라곤 본 적이 없는 나에게 다 늦게 선이라니. 그래도 싱글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운 기회가 아닌가 싶어 주말엔 반드시 아들과 함께 지낸다는 원칙에 금을 내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토요일, 약속장소로 나간 나는 머리카락은 조금 빈약하고 배는 매우 풍부한 모습의 그분을 만난다. 인사와 함께 서둘러 선배는 빠지고 우리 둘만의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됐다.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별 다를 바 없는 대화로 시작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결혼과 이혼이라는 주제로 흘러갔다.

이혼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삐걱거리는 가정사가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그분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이혼했고, 비슷한 기간 동안 싱글로 살아왔다. 두 아이가 장성해 외국 유학 중이라니 자유로운 싱글 라이프를 살아온 셈이다. 이야기를 나누다 갑자기 그분은 "그런데, 애는 왜 맡으셨어요?"라고 묻는다. 잠시 당황한 나는 "제가 더 잘 키울 수 있으니까요"라고 대답했다.

"그래도 아들인데 아빠가 키우게 하시지." 마침 때를 맞춰 아들로부터 '삐리리~' 전화가 걸려왔다. "언제 올 거야? 엄마. 빨리 와~"

"응, 응, 곧 갈게." 그리곤 슬슬 자리는 파하는 분위기가 된다.

"집에서 아이가 기다리는데 그만 가시죠."

그렇게 헤어진 이후 그분은 예의상의 전화도 한 통 없으셨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본 맞선에서 보기 좋게 거절당한 나는 '아니, 내가 어때서? 아직 꽤 착한 몸매에 서글서글한 성격에, 뭐가 부족해'라며 스스로 위안하려 애썼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나는 깨달았다. 몸매도, 성격도, 능력도 모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는 강적을 물리칠 수는 없다는 교훈을. 특히 아들은 대를 잇는 존재라는 한국적 정서에서 아들을 키우는 싱글맘은 순위가 밀려도 한참 밀린다는 사실을.

저녁기도를 하고 있는 아들 옆구리를 쿡 치며 말했다. "아들, 멋진 새 아빠를 좀 보내 달라고 기도해줘." 아들이 살짝 눈을 뜨고 대답한다. "아빠는 영원히 하나야!" 명백한 거부 의사를 표현하는 아들을 껴안으며 다시 말했다. "그럼 새 아빠 말고 엄마의 새 남편은 어때?" "그건 엄마가 기도해!"

우문현답을 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지금, 이곳, 이 상황이 가장 소중하고 완전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박소원

***싱글대디 정일호씨

그녀와 외식 나갔던 딸 아이
모녀지간 오해받자 샐쭉해져
그래도 아빠 애인으로는 "인정"

"스웨터에 그게 뭐예요! 구멍났잖아요. 다음에 그 옷을 벗어 가지고 오세요. 제가 꿰매줄게요."

정기적 사진 모임이 있던 어느 날 내 스웨터 앞자락을 만지작거리며 한 당돌한 아가씨가 다가왔다.

"정말요? 몰랐네. 오랜만에 꺼내 입었는데…."

변명 아닌 변명을 둘러대며 쭈뼛거릴 수밖에 없었지만 내 마음은 덜컹거렸다.

그렇게 그녀와의 설레는 만남은 시작됐고, 지난해 12월 어느 날 딸아이와 그녀는 북적거리던 코엑스에서 처음 만났다. 둘은 어느새 친해져 내 흉도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처음 보는 사람과 낯을 가리곤 하던 아이였는데 만나자마자 그녀와 친해지는 모습에 나는 안도했다.

그리고 그해 연말 옛 직장 동료를 만난 자리였다. 옛 동료의 아내가 집으로 초대를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조건이 있었다. 애인을 데리고 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곁에서 듣고 있던 딸아이가 "아빠, 진이 언니와 친하니까 애인하면 되겠다"라며 거드는 게 아닌가. 아이의 반응에 뜻하지 않게 난 무척 흥분했다. 그녀를 아빠의 애인으로 인정해줬구나 싶어 무척 기뻤다.

그 뒤로 그녀와 우리 부녀는 자주 만나게 됐고, 딸아이는 그녀를 '언니'라고 부르며 잘 지냈다. 하루는 셋이 집 앞 음식점에서 고기를 구워먹었다. 딸아이는 급한 마음에 고기를 마구 헤집었다. "엄마가 하게 둬요." 주인 아저씨의 말에 딸아이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순간 우리 셋은 말을 잃었다. 딸 아이는 자신이 알고 있는 '엄마'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같은 '엄마'의 이름으로 채워지는 것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딸아이를 숙제하러 보내고 복잡한 내 표정을 읽은 그녀가 말했다. "엄마의 자리는 신우가 원하는 대로 채워주는 것이 맞아요." 그러면서 자신은 딸아이와 기쁘고 슬픈 일, 화나거나 속상한 일을 함께할 수 있는 친구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유독 어려 보이는 그녀와 또래보다 한 뼘은 더 큰 딸아이를 대동하고 외출하는 길에 간혹 모호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하지만 작은 일에도 잘 웃고 이것저것 단속도 잘하는 야무진 그녀, 그런 그녀를 아빠의 애인으로, 자신을 아껴주는 언니로 따르는 딸아이, 이 두 여인을 벅찰 만큼 사랑하는 나는 분명 행복하다.

정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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