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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LPGA CJ클래식 신데렐라 안시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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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돼 있었다던가. 안시현(19.엘로드)선수가 꼭 그랬다.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 대회인 CJ나인브릿지 클래식이 있기 전까지는 많은 골프선수 가운데 한명이었던 그는 대회가 끝나자 일약 신데렐라로 변해 있었다. 골프 팬들은 물론 골프를 잘 모르는 사람들조차도 집에서, 직장에서 그를 화제로 얘기꽃을 피웠다. 그는 어떤 선수일까.

#새로운 '얼짱'의 탄생

그는 예쁘다. 참하고 은은하게 예쁘다. 1m70cm의 늘씬한 체격이 만들어내는 스윙폼은 얼굴보다 더 예쁘다. 피부도 희다. 골프선수라면 야외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 피부가 까무잡잡하게 마련인데 그는 그렇지 않다.

"원래 잘 안타는 편이에요. 비결은 없어요. 자기 전에 얼굴을 깨끗이 씻고 로션을 바르는 것뿐이지요."

인터넷에는 '프로골퍼 안시현'이란 팬 카페(http://cafe.daum.net/ansihyeon)가 있다. 대회 전만 해도 70여명이었던 팬 카페 회원 수는 2일 안시현이 우승하자 열배 이상 늘어났다. 팬들은 그를 최고의 '얼짱'('얼굴 짱'의 줄임말로 용모가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 네티즌 용어)'이라고 부른다.

#톡톡 튀는 얼음공주

얼굴만 예쁘다고 스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전 세계의 쟁쟁한 프로들을 상대로 1라운드부터 3라운드까지 한번도 선두를 빼앗기지 않는 '완전 우승'을 일궈냈다. 특히 대회 마지막날에는 박세리(26.CJ).로라 데이비스(영국) 같은 최정상급 선수들과 맞대결하면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고, 위축되지도 않았다.

갤러리들은 그를 '얼음공주'라고 불렀다. 어떤 사람은 '심장을 꺼내놓고 친다'고도 말했다.

"왜 긴장을 안했겠어요. 그렇지만 저는 저보다 잘하는 선수들과의 대결을 즐기는 편이에요. 짜릿짜릿 하잖아요."

그는 틈날 때마다 자동차 드라이브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애지중지하는 승용차(밤색 싼타페)를 몰고 이른 새벽에 인천공항 전용도로에서 시속 2백㎞까지 달려본 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골프를 안했으면 연예계에 진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배우 정준호가 이상형. '정준호씨도 골프를 친다고 들었는데 같이 치자고 하면 어떡할테냐'는 질문에는 "여자니까 좀 튕기다가 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벌 김주미

그를 말할 때 동갑내기 김주미(19.하이마트)를 빼놓을 수 없다. 둘은 초등학교 때부터 잘 알고 지내는 절친한 친구이자 숙명의 라이벌이다. 김주미는 올 시즌 2승을 거두고 신인왕 타이틀까지 차지하는 등 최고의 해를 보냈다. 반면 안시현은 번번이 우승 목전에서 물러나며 좌절을 겪어야 했다.

"주미가 우승할 때마다 축하의 말을 건네면서도 마음 한쪽에선 씁쓸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어요. 이번에 우승이 확정된 뒤 주미가 가장 먼저 축하전화를 걸어왔더군요. 항상 축하만 해주다가 받으니까 참 좋았어요."

#어려웠던 시절, 그리고 스승 정해심 프로

인천 연화초등학교 4학년 때 골프를 시작한 그는 청량중-인명여고를 거치며 '차세대 유망주'로 성장했다. 그러나 경제적 이유로 골프를 그만둘 뻔했던 아픈 과거도 있었다. 외환위기 때 아버지 안원균(45)씨가 경영하던 사업체가 부도나면서 가세가 기울었던 것이다.

"당시 아버지에게서 '돈이 없어 더 이상 골프 못시키겠다'는 말을 들었어요.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지요."

그는 "정해심 프로님이 '내가 뒷바라지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영광도 없었을 것"이라며 정 프로에게 거듭 고마움을 표했다. 아버지 안씨의 막역한 친구로, 인천 영종도에서 아이제이(IJ) 골프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정해심(44)프로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안시현을 가르쳐온 스승이자 캐디다. 그는 정프로의 지도로 매일 오전 6시30분부터 오후 10시30분까지 하루 2천개가 넘는 볼을 때려왔다. 그의 말대로 숟가락만 놓으면 골프채를 잡았다.

어머니 안정옥(45)씨는 최근 부인과 질환으로 수술을 받은 뒤에도 몸을 아끼지 않고 안시현을 뒷바라지한다. 같은 안씨지만 본은 다르다. 그는 이번에 받은 상금으로 어머니에게 김치냉장고를 선물하겠다고 말했다.

#더 높은 곳을 향하여

안시현은 이번 우승으로 내년부터 당장 미국 무대에서 뛸 수 있게 됐다. 그는 한번도 미국에 가본 적이 없다. 당연히 미국 비자도 없다. 그러나 그는 "미국 무대에서도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낯선 곳에서 적응을 잘하는 편이거든요. 이제 틈틈이 영어공부도 해야겠지만 말이 안 통하면 어때요. 표정과 몸짓으로 하면 되죠"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문득 이번 대회 기간 계속해 리더보드의 윗자리를 지켰던 안시현의 이름을 가리키며 미국 선수들끼리 주고받던 말이 떠올랐다. "쟤도 미국에 온대?"

제주=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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