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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보 사이렌 하나도 안 울렸다…하와이 산불 ‘인재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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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주 마우이섬 라하이나 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새까맣게 불에 탄 자동차와 건물 잔해만 남아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주 마우이섬 라하이나 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새까맣게 불에 탄 자동차와 건물 잔해만 남아 있다. [AFP=연합뉴스]

하와이 산불 사망자가 12일 밤(현지시간) 현재 93명으로 늘어나면서 미국에서 한 세기 만에 최악의 산불로 기록됐다. 앞서 2018년 캘리포니아 북부 패러다이스 마을에서 발생한 산불로 85명이 숨졌고, 1918년 미네소타주 북부 칼턴 카운티 등을 덮친 산불로 453명이 사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산불 발생 닷새째인 이날 하와이주 마우이 카운티 경찰을 인용해 현재 사망자가 최소 93명으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조시 그린 하와이 주지사는 이날 “사망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파손된 주택은 2200채에 달하며 피해 규모는 60억 달러(약 8조원)에 육박한다”고 밝혔다. 그는 “하와이는 물론 미국 역사상 최악의 화재”라고 말했다.

현지 언론 “이재민 수 1만 명 넘어”

집을 잃고 대피한 이재민은 4500명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라하이나 주민 1만2702명 중 상당수가 친지 등의 집에 머무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재민 수가 1만 명을 넘을 거라는 현지 언론 보도도 나온다. 이날 여전히 재확산 위험은 있지만 큰 불길이 잡혀가면서 화마가 할퀴고 간 참상이 드러나고 있다. 현재까지 화재 면적은 총 2170에이커(약 8.78㎢)로, 서울 여의도 면적(약 2.9㎢)의 약 3배가 피해를 보았다. 피해가 집중된 마우이섬 북서쪽 해안도시 라하이나는 폭탄을 맞은 듯 폐허가 된 모습이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리처드 비센 마우이 시장은 “지금까지 나온 희생자들은 건물 밖에서 발견됐다”고 말했다. 잔해 수색을 본격화하면 피해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주 당국은 연락이 끊기거나 소재 파악이 안 된 실종자가 약 1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당국은 라하이나 지역을 중심으로 구조 및 사체 수습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구조대는 수색이 끝난 주택에는 밝은 오렌지색 ‘×’ 표시를, 유해 발굴 장소에는 ‘HR(Human Remains, 시신 있을 가능성)’을 표기하며 구조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13일 외교부에 따르면 한인 동포나 관광객의 인명 피해는 보고되지 않았다. 현지 동포 커뮤니티에 따르면 한인 피해 규모는 주택 4채, 사업장 12곳, 한인 소유 건물 2~3채 등이다. 최은진 전 마우이 한인회장은 “하와이에서도 지상낙원으로 여겨진 마우이섬이 이렇게 타버려 다들 충격이 크다”며 “인구밀도가 높아지고 기후변화도 컸는데 카운티나 주 정부에서 대비를 못 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하와이주 당국은 산불 초동단계 부실 대응 논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앤 로페즈 주 법무부 장관은 이날 “마우이섬 산불 전후에 있었던 주요 의사결정과 상시 대비책에 대한 포괄적인 조사를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먼저 초기 경보 사이렌이 왜 울리지 않았는지를 놓고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주 안전 경보 시스템에는 재난·재해 대비 경보용 사이렌이 약 400개 있으며, 마우이섬에도 80개의 사이렌이 갖춰져 있다. 하지만 주 재난관리청은 “화재 첫날인 지난 8일 경보 사이렌이 울린 기록이 없다”고 했다.

한인 동포·관광객 인명피해 없어

12일 하와이주 호놀룰루에서 라하이나 주민들에게 보낼 구호 물품을 준비하는 자원봉사자들. [EPA=연합뉴스]

12일 하와이주 호놀룰루에서 라하이나 주민들에게 보낼 구호 물품을 준비하는 자원봉사자들. [EPA=연합뉴스]

NBC방송 등에 따르면 지역 주민들은 경보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점을 한목소리로 비판하고 있다. 사이렌 소리를 듣지 못한 라하이나 주민들은 화염을 직접 목격하거나 코를 찌르는 연기 냄새를 맡고서야 위험을 인식했다는 얘기다.

대피 안내 보도가 제구실을 못 해 운전자들이 좁은 시내 거리로 몰리면서 도로 일대가 병목 현상을 빚었고, 도로에 갇힌 차량 내 사망자들이 늘었다는 생존자 증언도 잇따르고 있다. 주민인 네이던 베어드는 “교통체증이 심했고 아무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며 “처음에 ‘왜 이 많은 사람이 모두 불길을 향해 차를 몰지?’라고 생각했다”고 캐나다 방송 CBC에 말했다.

이미 산불 위험 경고가 있었지만 지역 당국이 위험을 과소평가한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CNN은 주와 카운티 당국의 재난대비계획 문건 분석 결과를 토대로 “지난 5년간 발표된 다수의 보고서에는 산불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며 “그런데도 지난해 하와이주의 한 보고서는 산불 인명피해 위험 수준을 ‘낮음’으로 평가했고, 하와이 재난관리청 홈페이지에는 산불 발생 시 대응 요령조차 안 나왔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2014년 민간기구인 ‘하와이 산불 관리 조직’이 당국에 제시한 산불 방지 계획안은 라하이나가 지형과 기후 특성상 마우이에서 화재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이라고 짚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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