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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5위 부동산업체 디폴트 위기, 채권 10종 거래중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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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중국의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인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가든)이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를 맞으면서 세계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중국 부동산 시장은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차지한다. 이 거대한 중국 부동산 시장이 흔들리면 이미 경고등이 켜진 중국 경제가 더 비틀거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블룸버그는 12일(현지시간) “비구이위안이 중국 경제에 새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비구이위안은 14일부터 역내 채권 가운데 최소 10종의 거래가 중단된다. 2021년과 2022년 선전과 상하이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회사채 9종과 계열사 사모채권 1종이다.

비구이위안은 지난 7일 만기가 돌아온 액면가 10억 달러 채권 2종에 대한 이자 2250만 달러(약 296억원)를 갚지 못하면서 10일부터 주가가 급락하기 시작했다. 30일간의 유예기간에도 상환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디폴트에 빠지게 된다. 비구이위안의 상반기 순손실은 최대 550억 위안(약 10조원)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19억1000만 위안(약 3479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비구이위안의 위기는 대형 부동산업체 ‘헝다(恆大)’와 대형 개발업체 완다(萬達)그룹의 불안으로 이미 침체한 중국 부동산 시장을 더 가라앉힐 수 있다.

비구이위안 충격파…부동산업계 ‘도미노 디폴트’ 우려

세계적인 외환거래 업체인 오안다의 에드워드 모야 수석시장분석가는 “중국에서 가장 큰 부동산 업체 중 하나인 비구이위안이 무너지면 신뢰 위기가 발생해 부동산 시장 자체가 폭락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크리스티 헝 블룸버그인텔리전스 분석가는 “비구이위안이 헝다(에버그란데)보다 4배나 많은 프로젝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회사의 디폴트는 중국 부동산 시장에 더 큰 파장을 낳을 것”이라고 했다. 비구이위안은 매출 기준으로 지난해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 중 1위였고, 올해 상반기에도 5위를 기록했다.

중국 소비자 · 생산자물가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국가통계국]

중국 소비자 · 생산자물가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국가통계국]

중국 부동산 업계의 도미노 디폴트 가능성까지 나온다. 중국 주요 부동산 업체의 채무 상환 능력이 비구이위안보다 떨어지기 때문이다. 현금 수입으로 부채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현금보상비율’을 보면 비구이위안이 지난해 말 기준 93%였다. 이보다 현금보상비율이 낮은 위안양(遠洋·시노오션·12%)은 지난 2일 20억 위안(약 3650억원) 규모의 채권을 갚지 못했다. 유동성 경색이 지속하면 현금보상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다른 부동산 업체들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100대 업체, 7월 주택 판매액 33% 급감

이미 중국 부동산 시장은 부진의 늪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의 주택 구매자들이 주택 가격 하락을 예상해 집을 사지 않고 기다린다”며 “이는 경제를 되살리려는 중국 당국의 노력을 복잡하게 만든다”고 전했다. 실제 중국 100대 부동산 개발업체의 올해 7월 신규주택 판매액은 전년 동기 대비 33.1% 급감했다.

중국 부동산 시장의 위기는 최근 ‘D(디플레이션)의 공포’가 현실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달 중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0.3%)와 생산자물가지수(PPI·-4.4%)는 2020년 11월 이후 처음으로 전년 동월 대비 동반 하락했다. 중국의 청년 실업률(6월 21.3%)은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런 중국 경제 상황은 세계경제에도 적신호로 해석된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중국 경제의 약화는 브라질산 대두, 미국산 소고기, 이탈리아산 사치품 등 주요 상품에 대한 수요가 위축하고 있다는 신호”라며 “석유, 광물 및 기타 산업품에 대한 수요도 줄었다”고 보도했다. 호주 투자은행(IB) 맥쿼리의 래리 후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경기 후퇴는 글로벌 경제 전망에 분명히 영향을 줄 것”이라며 “중국은 세계 1위 상품 소비국이기 때문에 그 영향은 아주 클 것”이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국 경제를 ‘시한폭탄’에 비유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미 유타주에서 열린 정치자금 모금 행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이 똑딱거리는 시한폭탄(ticking time-bomb)이라는 데 많은 사람이 동의하고 있다”며 “중국은 곤경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이어 “중국은 연간 8%의 성장률을 유지해 왔지만 이제는 연간 2%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악당들(bad folks)은 문제가 생기면 나쁜 짓을 한다”며 지난 6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독재자”라고 지칭한 데 이어 다시 중국 정부를 비판했다.

그러자 중국 신화통신이 논평을 통해 “바이든 정부는 중국을 욕하는 것을 미국 경제를 살리는 정책적 대안으로 여기는 것인가”라며 반발했다. 주미 중국대사관은 “미국이 베이징을 희생양 삼아 분열과 대결을 부채질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시한폭탄’ 발언을 놓고 중국 측이 발끈했지만 중국 바깥은 물론 내부에서도 중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12일 중국 지방정부 부채 규모가 94조 위안(1경71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국무원은 정부 예산에 포함되지 않은 부채를 확인하고 재정 악화를 막기 위해 재정 상태가 가장 나쁜 10개 성(省)에 긴급 조사팀을 파견했다.

중국 지방정부 부채 3년 만에 14%P 증가

영국 경제 매체인 아시아파이낸셜(AF)에 따르면 중국의 지방정부 부채는 GDP 대비 2019년 62.2%(75조 위안)에서 지난해 76%(92조 위안)로 3년 만에 13.8%포인트 증가했다. 올해도 부채가 계속 늘면서 역대 최대치를 갱신했다. 인프라에 대한 과잉 투자와 토지 판매 수익 급감, 코로나19 비용 급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전체 지방 부채 중 66조 위안(1경2000조원)이 인프라 프로젝트 자금을 조달하는 지방정부융자기구(LGFV)가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는 그간 지방정부가 벌여 놨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가 악성 부채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지난 7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주재한 당 중앙정치국회의에서 정부가 지방 부채 대책 마련에 나설 것이란 발표도 나왔다. 골드만삭스는 “중국의 성장 둔화로 지방 정부 자체 재정을 통한 부채 상환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부동산 위기가 확산하면 자금을 댄 은행, 아파트 선분양에 목돈을 넣었던 시민들 모두 거금을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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