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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류’ 된 빗물, 버스 뚫은 맨홀 뚜껑…카눈 관문 휩쓸렸다[부산·울산·경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산사태가 우려되는 지역 2200여세대가 전날부터 인근 여관과 친척 집으로 몸을 피했다. 폭우의 수압을 못 이긴 맨홀 뚜껑이 폭발하듯 솟구치며 달리던 버스 바닥을 관통했다. 삽시간에 불어난 물에 대로에선 물에 잠긴 차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수십ㆍ수백 세대 단위로 산발적 정전이 이어졌다. 총력 대응에도 피해 신고가 빗발치자 소방 당국은 “비긴급 신고를 자제해달라”는 이례적 당부를 내놨다.

10일 제6호 태풍 카눈 영향으로 폭우가 쏟아진 경남 창원에서 맨홀 뚜껑이 솟구쳐 올라 시내버스 바닥을 뚫고 들어가는 사고가 발생했다. 연합뉴

10일 제6호 태풍 카눈 영향으로 폭우가 쏟아진 경남 창원에서 맨홀 뚜껑이 솟구쳐 올라 시내버스 바닥을 뚫고 들어가는 사고가 발생했다. 연합뉴

치솟은 맨홀 뚜껑, 버스 바닥 뚫었다

지난 9일 밤부터 6호 태풍 ‘카눈’ 상륙 길목인 부산ㆍ경남에선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됐다. 기상청에 따르면 태풍 카눈은 10일 오전 9시20분쯤 경남 거제 부근으로 상륙했다. 앞서 경남 산사태나 침수 위험 지역 주민 2235세대 3039명 대피 행렬이 전날부터 이어졌다. 양식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 300명도 몸을 피했다.

경남 창원 일대엔 9일 0시부터 10일 11시까지 331.4㎜의 폭우가 쏟아졌다. 역류하는 하수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창원시 의창구 대원동 차도에선 지름 65㎝, 무게 약 60㎏인 금속 맨홀 뚜껑이 폭발하듯 솟구쳐 올라 달리던 버스 바닥을 뚫는 사고가 일어났다. 다행히 맨홀 뚜껑이 관통한 곳은 버스 가운데 쪽이어서 앉아있던 승객이 다치진 않았다.

10일 오전 8시31분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에서 주택 침수로 고립된 60대 여성을 소방당국이 구조하고 있다. [사진 창원소방본부

10일 오전 8시31분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에서 주택 침수로 고립된 60대 여성을 소방당국이 구조하고 있다. [사진 창원소방본부

‘급류’ 돼 사람 덮친 빗물, 해운대선 ‘만취 입수’도  

인명 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도 많았다. 창원시 성산구 대방동에선 오전 9시쯤 횡단보도를 건너던 60대 여성이 무릎까지 차올라 ‘급류’가 된 빗물에 순식간에 휩쓸리는 사고가 일어났다. 다행히 인근에서 도로 통제 중이던 경찰이 물길을 헤치고 뛰어들어 가까스로 구조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 2명이 해당 여성과 함께 빠른 유속에 밀려 100m 가까이 떠내려가기도 했다고 한다.

10일 오전 9시3분쯤 경남 창원시 성산구 대방동 대암고삼거리에서 급류에 휩쓸린 60대 여성을 경찰이 구조하고 있다. [사진 독자]

10일 오전 9시3분쯤 경남 창원시 성산구 대방동 대암고삼거리에서 급류에 휩쓸린 60대 여성을 경찰이 구조하고 있다. [사진 독자]

10일 오전 8시쯤 경남 창원 마산회원구 내서읍 광려천 인근에 산책 갔던 주민이 불어난 강물에 고립, 소방당국에 의해 구조되고 있다. [사진 창원소방본부]

10일 오전 8시쯤 경남 창원 마산회원구 내서읍 광려천 인근에 산책 갔던 주민이 불어난 강물에 고립, 소방당국에 의해 구조되고 있다. [사진 창원소방본부]

이에 앞서 마산회원구 광려천에 고립된 노인(70대 추정 여성)과 마산합포구 산호동 침수주택에 갇힌 60대 여성도 소방당국에 의해 구조됐다. 부산에선 태풍 북상이 한창이던 오전 1시5분쯤 해운대구 송정 해수욕장에서 뛰어든 만취 30대 남성이 일찍 발견한 비상근무 공무원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오전 7시50분쯤엔 강서구 화전동 도로가 침수돼 차 안에 갇혔던 20대 남성이 소방대원에 의해 구조됐다.

10일 오전 7시13분쯤 경남 창원시 성산구 성산동 상복공원교차로 일대 도로가 물에 잠겼다. [사진 창원소방본부]

10일 오전 7시13분쯤 경남 창원시 성산구 성산동 상복공원교차로 일대 도로가 물에 잠겼다. [사진 창원소방본부]

도심 물바다… 침수·정전 피해 잇따라

창원 시내 지하차도 20곳은 물에 잠기거나 잠길 우려가 커 오전 한때 모두 통제됐다. 대로도 잠겼다. 오전 7시13분쯤 창원시 성산구 성산동 상복공원교차로 일대 도로 침수에 차체가 절반 넘게 물에 잠긴 자동차가 거북이 운행을 했다. 비슷한 시각 창원시 진해구 마천동에선 하천가에 차량이 밀려 떠내려가는 사고가 일어났다. 성산구 내동의 400여m 골목 구간은 이날 오전 6시부터 물이 차올라 오전 7시50분쯤 인근 아파트 일대가, 오전 8시15분쯤엔 아파트 지하상가가 침수됐단 신고가 소방에 접수됐다. 강한 비바람에 경남에선 벼·파프리카 등 농경지 37.2㏊가 피해를 봤다.

10일 오전 경남 창원의 한 지하차도가 통제 중이다. [사진 창원시]

10일 오전 경남 창원의 한 지하차도가 통제 중이다. [사진 창원시]

제6호 태풍 카눈이 북상한 10일 오전 경남 창원시 성산구 내동의 한 도로에 차들이 물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제6호 태풍 카눈이 북상한 10일 오전 경남 창원시 성산구 내동의 한 도로에 차들이 물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한국전력 부산·울산본부와 경남도 등에 따르면 정전 피해도 이어졌다. 10일 오전 4시3분 수영구 망미동 일대 830호 전력 공급이 끊겼다. 한전이 복구 작업을 한 결과 전력 공급은 5분 만에 재개됐다. 하지만 오전 6시21분 일어난 영도구 일대 34호 정전은 복구 차질을 빚었다. 경남 거제·김해·양산·하동 지역 3082가구가, 울산 울주군 또한 일부 가구가 정전 피해를 봤다. 태풍 카눈 접근으로 이들 중 일부는 곧장 복구되지 못했다고 한전 측은 밝혔다.

10일 오전 9시 15분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쌀재터널 내서읍 방면 3㎞ 지점에서 산사태가 발생, 토사가 유실되면서 양방향 도로가 통제됐다. [사진 창원소방본부]

10일 오전 9시 15분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쌀재터널 내서읍 방면 3㎞ 지점에서 산사태가 발생, 토사가 유실되면서 양방향 도로가 통제됐다. [사진 창원소방본부]

주요 도로 통제, 도시철도·경전철도 멈췄다  

광안·부산항·거가·마창·울산대교 등 부·울·경 주요 대교와 지하차도는 오전 한때 대부분 통제됐다. 이날 오전 9시15분쯤 창원시 마산합포구 쌀재터널 내서읍 방면 3㎞ 지점에서 산사태가 발생, 토사가 유실되면서 양방향 도로가 통제됐다.

부산과 김해를 잇는 경전철은 강풍에 의한 사고 가능성에 10일 첫차부터 운행을 멈췄다. 이날 부산 1~4호선 도시철도 지상구간 또한 열차 운행이 중단됐다. 이 같은 사실을 미처 모른 채 출근길에 나선 시민도 많아 부산교통공사엔 민원 수백건이 빗발쳤다. 경전철과 도시철도 모두 낮 12시를 넘겨 운행이 정상화됐다.

대응 총력 소방 “비긴급 신고는 자제를”  

소방은 전날 밤부터 태풍 피해 예방과 복구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이날 부산과 경남소방엔 관련 신고 500여건이 접수됐다. 강풍에 나무가 쓰러져 도로를 막았다거나, 간판 등 구조물이 떨어질 듯 뒤흔들린다는 신고가 주를 이뤘다. 오전 6시19분쯤 경남 거제시 능포동 한 아파트에선 벽돌이 떨어져 주차돼 있던 차량 여러 대를 덮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울산 동구 방어동에선 오전 4시48분쯤 가로·세로 3m 넘는 바위가 굴러떨어져 차도를 덮쳤다. 두 사고 모두 다행히 인명피해로 이어지지 않았다.

10일 오전 6시19분쯤 경남 거제시 능포동의 한 아파트 지붕구조물이 떨어져 주차돼 있던 차량이 파손됐다. [사진 경남소방본부]

10일 오전 6시19분쯤 경남 거제시 능포동의 한 아파트 지붕구조물이 떨어져 주차돼 있던 차량이 파손됐다. [사진 경남소방본부]

10일 오전 7시27분쯤 경남 고성군 동해면의 한 주택 지하에 물이 차 소방당국이 배수펌프로 물을 퍼내고 있다. [사진 경남소방본부]

10일 오전 7시27분쯤 경남 고성군 동해면의 한 주택 지하에 물이 차 소방당국이 배수펌프로 물을 퍼내고 있다. [사진 경남소방본부]

배수 지원을 요청하거나 전선에 스파크가 튀어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는 신고도 소방에 다수 접수됐다. 부산소방재난본부는 “관련 신고가 폭주하고 있다. 긴급한 태풍 피해 신고가 늦어질 우려가 있는 만큼 비긴급 신고는 자제를 부탁한다”는 안전안내문자를 이례적으로 발송했다.

낙동강홍수통제소는 이날 경남 밀양시 용평동 낙동강 지점 홍수주의보를 비롯해 부·울·경 일대 홍수 주의·경보 13건을 발령했다. 홍수통제소 측은 “태풍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려 일부 지역에선 수위가 계속 상승할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10일 오전 7시50분쯤 부산 중구 영주동에서 강풍에 쓰러진 가로수가 인근 도로와 차량을 덮치려 하자 소방대원들이 방재 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 부산소방재난본부]

10일 오전 7시50분쯤 부산 중구 영주동에서 강풍에 쓰러진 가로수가 인근 도로와 차량을 덮치려 하자 소방대원들이 방재 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 부산소방재난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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