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라바」의 현장 일 남부촌 백제관준공식 참관기(하)…정연희<소설가>|백제혼 살아 숨쉬는 일인들 "문화의 고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일본 구주의 깊고 깊은 산골 마을. 거기에 천년 넘는 세월을 두고 이어져온 이 제사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백제인 정가왕과 그 아들을 신으로 받들어, 한해를 오직 그 축의를 위하여 살듯 정성을 다하여 바치는 이 행사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신문신사에는 지금도 신처럼 모시는 서른 세개의 동경이 있다. 그리고 마령, 칼, 한뼘 크기의 동상과 대형 항아리가 보존되어 있었다.
정가왕이 백제를 떠날 때 가져왔을 것이 분명한 이 물건들은 백제인 정가왕 일행이 누렸을 문화를 실감 있게 전해주고 있다. 토착민들이 그 백제인을 만났을 때 그 놀라움은 신비스럽기까지 했을 것이다. 백제인들에게 농경기술도 배웠을 것이고, 병 고침도 받았을 것이고, 온갖 삶의 지혜를 전수 받았을 원주민들이 정가왕 사후에 그를 신으로 섬기게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궁기(미야자키)현 지사 송형우요씨에게 『남향촌에 백제리를 다시 가꾸고 이제 백제관을 준공하는 것으로 그곳에 다 백제의 재현작업을 시작하셨는데 백제정신의 무엇을 이어 받을 것이며, 무엇을 남기고 싶으신 것입니까』하고 물었을 때 지적 분위기를 소탈하게 다듬어놓은 듯한 지사는 밝고도 흔쾌히 이런 대답을 했다.『백제가 나라를 잃은 7세기경, 백제인은 상당한 문화수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제왕족이 이곳으로 흘러들어 왔을 때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그들의 문화나 품성을 접하면서 경탄을 넘어서서 경외심을 가졌었겠지요. 백제의 미의식, 섬세한 감각·기술, 친절하고 싹싹한 품성 등 토착인들에게는 생의 혁명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발자취를 더듬어 찾아내고 문화의 고향을 기려야하지 않겠습니까.』중의원의원 대원일삼씨도 한반도에서 건너온 문화의 향기에 대해 거듭거듭 선선한 찬양을 아끼지 않았다.
백제를「구다라」(쿠다라)라고 발음하면서 백제문화와 백제인을 그리워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그들이 「쿠다라」라는 말까지도 한국의 고대어라는 것을 알고는 있는지. 요즘 『또 하나의 만섭집』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이영희님은 「쿠다라」라는 말도 고타야(커다라·삼국유사)라는 우리말이라고 했다.
안동·진주·거창 등 옛날 육가야 때의 도읍이 있던 평야를 고타야(커다라)라고 불렀고 백제의 도읍지인 부여도 「커다라」라고 불렀을 것이며 크고 넓은 곳을 가리키던 그 말이「쿠다라」로 발음되어 왔을 것이라고 했다.
어찌되었든 남향촌에는 백제의 넋이 심어져있고 백제혼이 심어져 천년을 지켜온 남향촌은 이제 우리의 마음에 한자리를 차지하게되었다.
「오사라바」. 남향촌을 떠나올 때 정가왕 가솔의 목멘 전송은 하늘과 들과 바다를 흔들며 한국 땅에까지 이어지는듯 했다. 현지인들은 「오사라바」를 「사랑하다」의 「사랑」을 뜻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으나 그것은 사랑이라는 개념보다 훨씬 더 절실하고 쓰라린, 목숨의 무게가 실려있는 외침은 아니었을까.
「오」는 멀어지는 거리를 두고 소리쳐 부르던 간투사의 한가지였거나, 일본어의 높임말 앞에 붙는 말이었을 것 같고 「사라바」는 「살아봐」「살아서 보자」「어떻든 살아보자」「살아서 다시 보자」는 절규와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남향촌의 「오사라바」가 일본 사무라이들의 인사법으로까지 이어져갔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번 남향촌 백제관 준공식에 참석한 우리는 국경을 넘어갔다가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구름과 바람과 햇빛과 안개를 헤치고, 백제의 넋이 떠돌고 있는 따뜻한 남향촌으로 「오 살아봐…」「살아서 만나러 왔노라」「살아서 보러 봤노라」하고 백제의 넋에 얹혀서 다녀온 길이었다. 「오사라바」의 여운은 우리의 가슴에서 국경을 지워버렸다.
1천수백년 「오사라바」의 여운으로 감싸인 남향촌은 남의 나라 땅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가슴속에 살기를 바라며 지금까지 「오사라바」로 질기게 이어져온 것이다.
국경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집단이익을 위한 공동방어선이 그 첫째 뜻이요, 그 방어선 안에서 힘이 넘치면 방어의지에서 침략의지로 바뀌게 마련인 것이 국경이라는 것의 생리는 아닐까.
그러나 목숨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자리와 그 목숨보다 더 애절한 사랑에는 집단이익을 뛰어 넘는 보다 절실한 진실만이 남겨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역사의 왜곡문제를 놓고 시비를 벌일 일도 없고 그 시비에 말려들어서도 안되겠다. 우리들 삶의 발자취를 사랑하고 그 자취를 정성껏 더듬어 찾아가노라면 진실이 우리를 만나줄 것이고, 그 진실은 우리에게 더 깊고 많은 삶의 지혜를 가르쳐 줄 것이다.
역사는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것도 아니겠고, 진실이란 오직 사랑 속에서 숨쉬는 것이 아니겠는가. 문제는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는가에 있다고 본다.
「오사라바」남향촌은 우리의 마을이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