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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두 남자 중 누구를 남편으로? 순간의 선택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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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남편 고르기

하진 지음, 왕은철 옮김

현대문학, 338쪽, 9000원

'결혼적령기 여성을 위한 남편 고르기 지침서'라는 편견은 접어두자. 제목이 주는 오해일 뿐이다. 보스턴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중인 중국인 작가의 소설집이다. 단편 중 제목으로 뽑힌 '남편 고르기'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홍이란 미녀가 핑과 펭 두 남자를 두고 고민한다. 둘 중 누가 집단농장 부위원장이 될지 저울질하느라 청혼 승낙을 미루자 중매쟁이는 "부위원장 발표가 나기 전에 결정해야 사랑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압력을 가한다. 결국 제비뽑기로 잘 생긴 팡을 고르지만 펭이 부위원장이 된다. 부아가 난 홍은 팡에게 성대한 결혼식 연회를 요구한다. 팡이 어마어마한 빚을 지고 성대한 연회를 준비한 결혼식 날, 펭은 의용군과 홍위병을 풀어 연회를 금지한다. 과도한 결혼 연회는 불법이라는 이유였다. 음식을 못 먹은 하객들은 축의금을 내지 않고 돌아간다. 홍은 빚더미에 앉았다는 절망감과 창피함에 우물로 뛰어들지만 물이 너무 얕고 벽은 미끄러워 죽지도, 나가지도 못한다. 홍은 자신이 죽으면 마을 사람들이 '우물물을 못 먹게 됐다'며 욕할까봐 고민한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아이러니와 유머가 적절히 뒤섞인 단편 9편이 실렸다. 소설의 배경은 주로 수십 년 전 중국의 작은 마을이다. 골목대장의 싸움 실력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되는 동네 꼬마들의 이야기 '우리들의 황제' 등 크고 작은 권력 변화에 따라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 내리락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흥미진진한 인생 이야기가 흐른다. 중국 공산당 체제를 풍자하고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이들도 공감할 이야기들이다. 거기나 여기나, 어차피 사람 사는 곳이니까.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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