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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휴가'도 보낸다…"387조 손실 볼 바엔" 英·美기업 파격복지 [세계 한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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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결혼 휴가는 있는데 이혼 휴가는 왜 없나요?"

올해 초 영국에서 '긍정 육아 동맹(PPA)'이라는 단체가 제기한 질문이다. 별거·이혼한 이들의 자녀 양육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PPA는 기업들에게 이혼 과정을 겪는 직원에게 '이혼 휴가'를 주고 유연 근무·심리상담 기회 등을 제공하라고 호소했다.

PPA의 제안에 기업들이 화답했다. 유통기업 테스코, 회계컨설팅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메트로 은행, 유니레버, 보다폰 등은 "이혼이 가족 사망·중병 등과 동일한 지위를 갖도록 인사 정책을 수정할 용의가 있다"며 관련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답변했다.

이처럼 세계 각국에서 이혼으로 어려움을 겪는 직원을 지원하려는 기업이 늘고 있다고 BBC가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BBC에 따르면 결혼·장례 등 경조사나 임신·출산·육아 지원 등과 달리 이혼 직원에 대한 지원은 영국의 고용주가 좀처럼 간여하지 않던 영역이다.

영국 긍정육아연합(PPA)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0%는 이혼이 업무 성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응답했다. 이미지 픽사베이

영국 긍정육아연합(PPA)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0%는 이혼이 업무 성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응답했다. 이미지 픽사베이

PPA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기업들은 이혼한 직원이 한 부모가 되어 자녀 양육 부담이 커질 경우, 유급 휴가를 주거나 유연 근무를 할 수 있도록 사내 정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또 이혼에서 느낀 좌절감 등을 전문가 등과 상담할 수 있는 지원 서비스도 제공할 계획이다.

이혼으로 인한 생산성 하락, 연 387조원 추정

미국에도 맞춤형 사내 지원책을 마련한 기업이 등장했다. 포브스에 따르면 미국은 결혼한 부부의 절반, 재혼 부부의 67%가 이혼하는 '이혼 대국'이다.

미국 출판기업 허스트는 지난해 9월 부모를 위한 양육비 관리 앱인 서포트페이와 파트너십을 맺고 직원 1만2000명을 위한 이혼 서포트 프로그램을 내놨다. 별거·이혼 등을 겪은 직원은 앱을 통해 무료 심리 치료, 법률 상담 지원 등을 받을 수 있다. 심지어 부부가 헤어진 후 결혼 당시 함께 키우던 반려동물 관리도 앱으로 가능하다.

자신의 이혼 경험을 바탕으로 서포트페이를 설립한 셰리 앳우드 대표는 현지 매체에 "난임 치료·난자 냉동 등 혼인 관련 지원은 있지만, 이혼에 대한 지원은 거의 없다는 점에 착안했다"며 이혼 직원을 지원하면 결국 회사에도 이득이라고 주장했다.

이들 기업은 왜 이혼 직원을 챙길까. 이혼이 직원의 생산성·정신 건강 등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고용주 입장에선 비용 손실이기 때문이다. 가족 서비스 회사인 라이프 이노베이션스는 직원의 이혼으로 인한 기업 생산성 저하를 금액 환산 시 연간 최대 3000억 달러(약 387조원)로 추산했다. 이는 지난해 삼성전자 연 매출(301조1000억원)을 상회하는 수치다.

영국 긍정육아연합(PPA)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0%는 이혼이 업무 성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응답했다. 사진 픽사베이

영국 긍정육아연합(PPA)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0%는 이혼이 업무 성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응답했다. 사진 픽사베이

실제로 이혼자들은 직장 업무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PPA의 설문 조사 결과 응답자의 90%는 이혼이 업무 성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응답자 열명 중 넷(39%)은 이혼 때문에 당분간 휴직 필요성을 느꼈고, 11%는 아예 일을 그만뒀다.

미국 서포트페이와 굿 하우스 키핑의 공동 조사에서도 이혼 직원들은 생산성 하락(81%)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근이 잦아진 점(73%), 건강 악화와 수입 감소(67%)도 이혼에 따른 부작용으로 꼽혔다.

크레이그 잭슨 버밍험 시티대학 교수는 BBC에 "과거엔 직장서 프로답게 일하려면 가정사와 직장 일을 분리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이제 그런 컨셉은 사라진 지 오래다"고 말했다.
BBC는 이혼 직원을 챙기는 기업 정책이 상대적으로 비용은 많이 들지 않지만, 직원 충성도를 높이는 데 효과가 있기 때문에 '합리적인'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피터 카페리 와튼스쿨 교수는 BBC에 "특히 코로나 팬데믹 기간 후 이혼율이 증가한 일부 국가에서 이혼 직원에 대한 지원 조치는 시의적절하다"고 짚었다.

지난해 한국의 이혼 건수는 9만3000건이다. 사진 픽사베이

지난해 한국의 이혼 건수는 9만3000건이다. 사진 픽사베이

한국 지난해 이혼 9만3000건 

우리 상황은 어떨까.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이혼 건수는 9만3000건으로 매일 254건의 이혼이 성립했다.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이혼(조이혼율)은 1980년대 0.6건에서 2003년 3.4건까지 치솟았다가 지난해 1.8건을 기록했다. 한국의 이혼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38개국 중에서 9위로 높은 편이다.

가정법원 협의이혼접수실의 모습. 사진 대법원 영블로거위원회

가정법원 협의이혼접수실의 모습. 사진 대법원 영블로거위원회

그러나 현재 이혼 직원에 대한 지원 정책을 도입한 국내 기업은 찾기 힘든 상황이다.

이향미 변호사(더조은합동법률사무소)는 중앙일보에 "법원에서의 이혼 소송은 1심에만 1년 반~2년 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회사 업무에 집중하기 힘든 게 사실"이라면서 "이혼한다고 특별 휴가를 받기 어려운 직장인 입장에서 이혼자를 고려한 기업 정책이 도입되면 현실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부모 2명이 자녀를 돌보다가 이혼으로 인해 부모 중 1인이 양육을 전담할 경우, 육아 공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유연근무제 등은 자녀 돌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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