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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산 뿐' 괴산 230억 수산단지...식당주인 "월 20일 논다" [영상] [2023 세금낭비 STOP]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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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달 30일 충북 괴산군 괴산읍 수산식품거점단지 내 식당 앞에 빈 수조가 놓여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달 30일 충북 괴산군 괴산읍 수산식품거점단지 내 식당 앞에 빈 수조가 놓여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역발상 ‘내륙 자갈치 시장’…5년째 직판장 없어 

지난 7일 충북 괴산군 괴산읍 대덕리 수산식품산업거점단지. ‘횟집’ ‘매운탕’ 등 간판이 달린 식당 6곳 중 3곳은 문이 닫혀있었다. 한동안 손님이 찾지 않은 듯 식당 앞에 놓인 수조는 텅 빈 곳이 많았다. 점심시간임에도 식당 안으로 들어가는 손님을 볼 수 없었다. 주민 김모(85)씨는 “교통이 불편하고, 읍내에서도 한참 떨어져 있어서 밥 먹으러 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특별히 볼 것도 없고, 수산물 판매장도 없어서 외지인 발길이 뜸하다”고 말했다.

이 단지는 충북도가 내륙 ‘자갈치 시장’을 목표로 2019년 5월 만들었다. 준공 당시 역발상 행정으로 주목받았다. 바다가 없는 내륙에 부산과 인천에서나 볼 수 있는 수산물 가공업체를 유치해 지역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수산물 직판장에서 민물고기 등을 팔겠다는 구상이었다. 관광객 유치 시설로 민물고기 전시관을 계획했다.

충북도는 개장 당시 “신선한 수산물을 현장에서 소비, 체험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으로 꾸미겠다”고 홍보했다. 단지 조성에 23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썼다. 이 중 40%는 국비이고, 나머지 60%는 지자체 예산이다. 연면적 7만5623㎡ 규모 부지에 수산물 가공 공장동 4곳과 식당 6곳, 내수면연구소 사무실, 쏘가리 양식 연구동 등을 갖췄다.

충북 수산식품산업거점단지는 '내륙 자갈치 시장'을 목표로 2019년 문을 열었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북 수산식품산업거점단지는 '내륙 자갈치 시장'을 목표로 2019년 문을 열었다. 프리랜서 김성태

“이런 곳에 왜….” 관광객 발길 없어 

개장 4년이 지난 현재 수산식품산업단지는 사실상 애물단지가 됐다. 당초 계획했던 제2 가공·유통시설은 개장 3년 만인 지난해 하반기에 건립됐지만 비어있다. 2층으로 지은 유통시설은 1500㎡ 규모에 31억원을 들여 지었다. 일부 공간은 수산단지에 입주한 A사가 임시 사무실로 쓰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22억원을 투입해 준공한 2층짜리 수산물직판장도 아직 업체가 입주하지 않았다. 1층 한쪽 공간을 A사가 자재창고로 사용했고, 2층은 아직 개점하지 않은 카페가 들어서 있었다. 단지 한쪽에서 아쿠아리움 건립 공사가 한창이었다. 수산물 가공 업체는 3곳에 불과했다. 1곳이 김 제조 업체, 2곳은 해물다시팩·황태 등 수산물 가공업체다.

수산단지는 괴산에서 충주 수안보면·경북 문경으로 가는 34번 국도에 있다. 피서철에 쌍곡계곡 등 괴산 관광지를 찾는 시기를 제외하면 유동 인구가 적은 편이다. 문경에서 온 박모(65)씨는 “자주 지나가는 길인데도 수산단지가 있는 줄 전혀 몰랐다”며 “수산물직판장을 개장한다고 해도 도시와 많이 떨어져 있어서 물고기를 사러 오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온통 산뿐인 마을에 수산단지를 만들면 어떡하냐. 이게 다 세금인데….”라며 안타까워했다.

괴산 수산식품거점단지 안에 있는 수산물 가공 공장동. 프리랜서 김성태

괴산 수산식품거점단지 안에 있는 수산물 가공 공장동. 프리랜서 김성태

“생계 어려워 노점상 나간다” 식당 절반 문 닫아 

단지 활성화를 믿고 입주한 식당 주인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횟집 주인 이모(61)씨는 “충북도가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대표 관광지로 만든다기에, 그 말을 믿고 들어온 게 후회된다”며 “애초 계획했던 아쿠아리움도 없고, 덩그러니 식당만 있는 외진 곳에 누가 오겠냐”고 하소연했다.

이씨는 매출이 거의 없어서 최근 전기료를 4개월 정도 밀렸다고 한다. 그는 “회를 먹는 사람이 없어서, 1인분에 8000원 하는 백반을 팔아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아쿠아리움 공사장 인부가 일주일에 서너번씩 백반을 먹는다. 공사가 끝나면 백반도 팔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5년째 식당을 운영하는 정모(33)씨도 처지가 비슷했다. 정씨는 “괴산읍에서 식당을 하다가 수산식품단지가 들어온다고 해서 도청 직원 권유로 준공 직전 입주했다”며 “한 달 중 20일은 논다. 한 달 매출이 200만원이 채 되지 않아 식당 문을 닫고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일용직 일을 하며 근근이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정씨는 올여름 인근 쌍곡계곡에 가서 노점상을 운영하기로 했다.

괴산 수산식품거점단지 내 일부 부지는 공터로 남아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괴산 수산식품거점단지 내 일부 부지는 공터로 남아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북도, 112억 들여 아쿠아리움 추가 건립 

충북도는 수산단지 활성화를 위해 유통시설 입주와 수산물 직판장 개장을 서두르고 있다. 올 하반기부터 제2 유통시설 건물에 카페와 편의점·식당 등을 추가 입점시킬 계획이다. 수산물직판장엔 해조류와 가공 수산물 등 품목을 판매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즉석 김구이 체험장, 농수산로컬푸드직판매장도 고려하고 있다. 112억원 투입해 짓는 아쿠아리움은 지하 1층, 지상 2층에 1440㎡ 규모로 내년 3월 개관 예정이다. 수산물 가공업체 2곳은 추가 입주가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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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도 관계자는 “수산물 가공공장과 판매장, 아쿠아리움 등 관광시설, 식당이 한 번에 갖춰져야 수산식품단지 활성화를 기대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엄태석 서원대 교수(복지행정학과)는 “요즘은 교통이 좋아져서 1~2시간이면 내륙에서도 수산물을 손쉽게 유통할 수 있고, 굳이 생선회를 먹으러 괴산까지 갈 수요도 없는 것 같다”며 “기발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사업성과 적시성을 고려하지 않고 밀어붙인 대표적인 예산 낭비 사례”라고 지적했다. 엄 교수는 “지자체 예산 낭비 사업은 정책적 과오였다거나, 단체장이 정치적으로 위축된다는 이유로 책임을 묻지 않을 때가 많다”며 “예산 심의 과정에서 사업 지속성·적절성 등을 판단해 줄 수 있는 지방의회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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