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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일도 대충 '뚝딱'...2000억짜리 낚시터 된 '바다위 방파제' [2023 세금낭비 STOP]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5일 경북 포항시 북구 영일만항 북방파제 위에서 낚시객들이 낚시를 하고 있다. 김정석 기자

지난 5일 경북 포항시 북구 영일만항 북방파제 위에서 낚시객들이 낚시를 하고 있다. 김정석 기자

“주말에는 200~300명 정도씩 ‘뜬방’에 올라 낚시를 합니다. 과거 고등어가 줄줄이 낚여 올라온다고 소문이 났을 땐 2000여명이 몰린 적이 있어요.”

지난 5일 오후 경북 포항시 북구 영일만항 부두. 차에서 낚싯대와 용품을 내리고 있던 한 50대 낚시객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에서 그렇게 낚시를 하느냐”고 묻자 바다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육지와 연결되지 않은 ‘바다 위 방파제’가 보였다.

국가 항만시설이 낚시객들 숨은 명소로  

이 방파제는 총연장 4.1㎞ 규모로 국내에서 가장 긴 영일만항 북방파제다. 바다에 떠 있다고 해서 ‘뜬방파제’ 또는 ‘뜬방’으로 불린다. 북방파제는 해양수산부 산하 포항지방해양수산청이 1997년부터 2012년까지 15년에 걸쳐 1994억원을 들여 건설했다. 레미콘 33만㎥, 철근 2만8000t 등이 사용됐다.

북방파제에 가기 위해선 영일만항 부두 인근에 늘어선 낚시용품점 10여곳 중 한 곳에서 승선표를 사야 한다. 한 낚시용품점 업주는 “운임은 1만5000원이고 구명조끼 대여료는 1000원”이라며 “카드 결제는 안 되고 현금만 받는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영일만낚시어선협회 선박이 경북 포항시 북구 영일만항 북방파제로 향하고 있다. 배 위에 방파제로 올라가기 위해 설치해 둔 철제 계단이 보인다. 김정석 기자

지난 5일 영일만낚시어선협회 선박이 경북 포항시 북구 영일만항 북방파제로 향하고 있다. 배 위에 방파제로 올라가기 위해 설치해 둔 철제 계단이 보인다. 김정석 기자

승선표를 사면 부두에서 영일만낚시어선협회가 운영하는 작은 배를 타고 북방파제로 갈 수 있다. 이날 기자가 직접 배를 탈 때 승선명부를 적지 않았다. 배 타는 시간은 5분 정도 걸렸다.

어선협회, 현금 받고 낚시객 실어날라

주말 200~300명이 북방파제를 찾는다고 가정하면, 영일만낚시어선협회는 배 운항으로 하루 매출로 300만~450만원을 올리는 셈이다. 이 협회는 포항지방해양수산청 등에 사업허가나 운영위탁을 받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5일 경북 포항시 북구 영일만항 북방파제 위에서 낚시객들이 낚시를 하고 있다. 김정석 기자

지난 5일 경북 포항시 북구 영일만항 북방파제 위에서 낚시객들이 낚시를 하고 있다. 김정석 기자

이날 북방파제에는 평일 낮인데도 30여 명이 낚시하고 있었다. 방파제 위에 간이매점도 보였다. 발전기·LP가스와 연결한 수레 위에 음료와 간식을 팔고 있었다.

매점까지 차려진 방파제엔 곳곳 쓰레기

방파제 위에는 컵라면 용기나 빈 물병, 맥주캔 등 낚시객들이 버린 쓰레기가 나뒹굴고 있었다. 특히 방파제 위에 화장실이 없어 낚시객들은 구석진 곳에서 급한 용변을 해결했다.

사실상 거대한 낚시터가 된 북방파제는 단순한 방파제가 아니다. 설계 단계부터 파도를 막는 기능뿐 아니라 전망대·야외무대·친수시설·그늘공간 등을 만들어 ‘해양문화공간’으로 꾸밀 계획이었다. 이런 공간 조성에만 20억원 정도 썼다고 한다. 북방파제와 포항운하·호미곶 등을 경유하는 유람선 운항 계획도 있었다.

지난 5일 경북 포항시 북구 영일만항 북방파제 위에서 낚시객들을 위한 간이 매점이 차려져 있다. 음료와 간식을 실어놓은 수레에는 발전기와 LP가스가 연결돼 있다. 김정석 기자

지난 5일 경북 포항시 북구 영일만항 북방파제 위에서 낚시객들을 위한 간이 매점이 차려져 있다. 음료와 간식을 실어놓은 수레에는 발전기와 LP가스가 연결돼 있다. 김정석 기자

하지만 현재 전망대와 야외무대·친수시설 등으로 쓰려던 공간은 출입이 통제됐다. 포항지방해양수산청 관계자는 “설계 초기에는 해양문화공간으로 활용할 목적으로 지었지만, 운영을 희망하는 사업자가 없었다”며 “파도 등으로 인한 안전사고 위험에 환경 오염 문제도 있어 현재는 방파제 역할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파제가 애초 목적과 달리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안전 문제 뿐 아니라 수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이 크다. 전문가들은 방파제 ‘스토리’를 살리지 못한 채 단순히 문화공간을 짓는 것만으로 관광객이 찾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김주연 홍익대 산업디자인과 교수는 “방파제 정체성·상징성이 명확하지 않다면 (방파제를 통한) 친수공간을 찾는 사람 역시 줄어들 것”이라며 “이 경우 ‘과도한 투자’란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지역적 특성을 살린 친수형 방파제 디자인을 계획하는 게 중요한 이유”라고 지적했다.

한때 방파제 출입 막았더니 민원 쏟아져

포항지방해양수산청은 낚시객들이 북방파제를 드나드는 데 대해서는 “국가 항만시설이기 때문에 따로 사용허가 같은 걸 해줄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지만 시민들의 여가 생활을 위해 한정된 공간에 한해 개방을 하고 있다”며 “한때 북방파제 출입을 전면 금지한 적도 있었는데 민원인들이 생존권을 보장해 달라며 항의를 심하게 했다. 현재도 북방파제 전체를 개방해 달라는 민원이 계속 들어오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2021년 5월 26일 경북 포항시 북구 영일만항 북방파제 전망대와 야외무대가 오랜 기간 방치돼 쓰레기로 가득한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2021년 5월 26일 경북 포항시 북구 영일만항 북방파제 전망대와 야외무대가 오랜 기간 방치돼 쓰레기로 가득한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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